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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 사건...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읽지않으신 분들을 위해-
역사/고전 관련 |
2008/02/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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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트님 이글루스에서 목걸이 사건 영화 관련 포스팅을 읽다가, 혹시 초유의 명작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장비라고 오타치고 순간 굳었네요) 못 읽으신 분들을 위해, 그리고 목걸이 사건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약간 정리해 봅니다. 목걸이 사건은 괴테가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같은 진실"(진실보다 더 진실같은 거짓말이라고했던가요? 아무튼.)이라고 칭하기도 했는데요, 사실 진실이 너무 간단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인 사건입니다. 일단 여러분께는 당시 프랑스 인들이 알고 있던 버전을 먼저 들려드리고, 진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절 믿으세요. 그게 더 재미있습니다.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마리아 안토니아)는 사치에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60만 리브르(대강 1리브르=요즘으로 치면 5~10만원권 정도?)에 해당하는 사치스러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고 싶어할 정도로 병적인 사치 환자였습니다. 이 목걸이는 원래 루이 15세의 애첩 마담 뒤바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하필 목걸이가 거의 다 만들어졌을 무렵 루이 15세가 사망하는 사람에 보석상은 큰 곤란에 처해 있었습니다. 대금을 전부 지불받고 만든 것이 아니므로 막대한 다이아몬드 구입비용이 큰 부담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갖고 싶었던 왕비는 욕심은 많았지만 동시에 세상의 이목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발루아 왕가의 마지막 후손인 잔느 드 라모트 백작부인을 끌어들이기에 이릅니다. 특별히, 그리고 은밀히(......) 친했던 그녀를 시켜 루앙의 대주교에게 '목걸이를 구입하고 싶으나 세상의 이목이 두려우니, 당신의 이름으로 구입하면 그 돈을 갚아줄 뿐 아니라 할부 잔금 또한 치러주겠다' 고 지시합니다. 대주교는 증거로 왕비와 자신을 만나게 해 줄 것을 부탁했고, 왕비는 잔느 드 라모트에게 지시하여 밤에 조용히 대주교와 독대합니다. 그 곳에서 들은 왕비의 지시를 철석같이 믿은 루앙의 대주교는 서슴치 않고 목걸이를 구입하지만, 정작 목걸이를 받은 왕비는 처음부터 돈을 낼 생각 따위는 없었으므로 그대로 입을 씻고 루앙의 대주교를 상대도 하지 않습니다. 계속 보석대금 지불을 독촉받아 답답해진 루앙의 대주교는 몇번 왕비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왕비는 철저히 개무시로(......)일관합니다. 결국 견디지 못한 그는 왕에게 직접 탄원하기에 이르고, 왕비가 서명한 목걸이 구입 계약서류를 본 왕은 오히려 이 서류가 조작이라며 추기경을 체포하기에 이릅니다. 왜냐, 서류에는 평소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용하는 서명이 아닌, 다른 방식의 서명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처음부터 왕비는 이 사태를 노렸던 것이지요. 당연히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던 왕비는, 오히려 노발대발하며 자신을 위해 애써준 잔느 드 라모트와 루앙 대주교를 범죄자라며 단죄합니다. 잔느 드 발루아는 결국 왕비를 위해 애썼지만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불쌍하게도 편파적인 조작재판 끝에 여성의 몸으로 공중 앞에서 태형을 받고 도둑에 대한 처벌로 낙인이 찍히는 벌을 받게 되는데, 낙인은 무려 이마에 찍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억울하게 갇힌 그녀를 형무소에서 도피시켜 주었고, 그녀는 자신을 배신하고 전락시킨 왕비에 대해 비망록을 출판하게 되는데, 물론 날개돋친듯 팔렸습니다. 얼마 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잔느는 프랑스 혁명의 아이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럭저럭 런던에서 지내고 있던 그녀는 오를레앙 공이 보낸 왕정 복고주의자들의 침입을 피해 도망치다 큰 부상을 입고, 회복되지 못한 채 죽고 맙니다. ------------------------------------------------------------------------------------------ 이것이 바로 그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목걸이 사건의 진상]입니다. 꽤 그럴싸한 이야기지요.
문제는 이것이 완전히 잘못 알려진 버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너무나 거짓말 같아서 아무도 당시 사람들이 믿지 않았던 진상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 less..
사실 왕비는 문제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입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째, 애시당초 그 목걸이는 마리가 몹시 싫어했던 마담 뒤바리를 위해 디자인된 것이었고, 왕비는 하필이면 [그 여자 따위]를 위해 만들어진 목걸이를 목에 걸 생각이 없었습니다. 둘째, 당시 사람들에게서 이미 "마담 드 적자" 라고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마리가 이미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황태자비 시절부터 귀족클럽에 드나들며 카드놀이와 비싼 간식과 사치스러운 놀이에 익숙했던 그녀지만, 그래도 여론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보석상이 구입을 제안했을 때 그녀는 마침 나름의 "자숙 기간"중이었고, 당연히 거액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입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세째, 목걸이는 600개가 넘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화려한 것이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가 선호하던 패션은 오히려 "폴란드의 양치기 소녀 컨셉" 혹은 "영국 시골 피크닉풍 컨셉"등의 소박한 타입이었습니다. 물론 옷감/재단사/레이스등은 당대의 최고들을 동원했으니 엄청난 거액의 드레스가 되었지만 적어도 패션 컨셉은 그랬다는 겁니다. 당연히 야단스러운 콩알 줄줄인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나름 유행을 선도하던 그녀에게는 맘에 안 드는 물건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목걸이를 구입하지 않는 바람에, 목걸이를 만든 보석상이 큰 곤란에 처하게 된 것을 사기꾼 잔느 드 라모트 백작부인이 알게 된 것입니다. 잔느 드 라모트 백작부인-잔느 드 발루아는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앙리 2세의 사생아의 자손으로, 고로 부르봉 이전에 프랑스의 왕가였던 발루아 왕가의 마지막 자손이었습니다. 실제 그녀는 동네 신부에게 부탁해 자신의 족보를 확인받았고, 그것을 근거로 왕가 자손에게 나오는 연금을 신청해 거액은 아니지만 모친과 오빠, 여동생이 근근히 먹고 살 정도의 돈은 마련하게 됩니다. 오빠는 군인이 되어 생 루이에서 근무하다 죽었고, 여동생은 수녀원에 들어가 소용히 살았습니다만, 잔느는 수녀원에 들어가 살 마음 따위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곧 자신이 왕가의 자손이라는 점을 이용해 귀족출신인 라모트와 결혼하게 됩니다. 라모트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이렇다 할 재산은 커녕 당장 생활비도 제대로 못 대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나마 유유상종이라고 둘은 서로 별로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사기에서는 제법 그럴듯하게 쿵짝이 맞는 커플이었지요. 그녀는 곧 남편과 함께 백작-백작부인이라는 칭호를 적당히 만들어 붙였으며, 어쨌건 라모트는 귀족이었고 잔느는 발루아 왕가 자손이라고 했으니 주변 사람들은 대강 아 쟤들 백작인가봐, 하고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뭐 잔느는 이걸 기화삼아 말쑥하게 차려입고 베르사이유에 자주 드나들며 어떻게든 왕비의 눈에 들어보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럴듯한 빽 하나 없는 듣보잡 그녀가 왕비와 대화조차 할 수 있을 리가 없었지요. 그러나 당시 베르사이유의 정원에서 왕비의 얼굴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이 때 왕비의 얼굴을 잘 보아둔 잔느는 이 경험을 나중에 아주 뼛속까지 우려먹게 됩니다. 얼마 뒤, 그녀는 목걸이를 만든 보석상이 재정적 곤란에 처해 판매처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울러 루앙 대주교가 왕비에게 미움을 사서 절박한 처지라는 것을 이용해 한몫 크게 건질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법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루앙 대주교에게 자신을 왕비의 절친한 친구로 얘기하며 접근해, 왕비가 사실 그 목걸이의 할부 구입을 강렬히 원하고 있으나, 왕이 반대하여 구입을 못 하고있어 곤란해 한다는 거짓 정보를 슬쩍 흘린 겁니다. 아울러 만일 이 일을 도와주면 왕비가 당신을 총애할 거라는 암시를 넌지시 하면서요. 루앙의 대주교는 당장 "이 떡밥은 내꺼야!"를 외치며 덥석 낚이게 됩니다. 그러나 물론, 적어도 대주교를 하고있는 인간이니만치 잔느에게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두가지였는데, 일단 왕비가 직접 서명한 계약 서류, 그리고 [왕비와의 직접적인 만남 주선]이었습니다. 사기꾼 잔느는 두말없이 오케이를 날리고는, 대담하게도 주교에게 거짓 편지와 서류를 만들어 넘겨줍니다. 아무리 계몽주의 시대라고는 해도 나름 왕과 왕비의 권위 자체는 하늘을 찌르던 프랑스였으니, 주교는 설마 이것이 가짜 편지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채 얼씨구나 하고 좋아하며 서류들을 챙겨두게 되지요. 자,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왕비와의 직접적인 만남]이네요. 이건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위에 말했듯 잔느는 베르사이유 뜰을 들락거리며 왕비의 얼굴을 봐둔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당장 파리의 극장과 사창가를 뒤져 그럭저럭 왕비를 닮은 여자를 골라냅니다. 혹자는 그녀가 사창가의 창녀였다고 하고, 혹자는 그녀가 극장의 싸구려 여배우였다고도 합니다만, 공통되는 언급은 그녀의 이름이 "니꼴"이라는 것입니다(성은 양쪽이 다 다릅니다). 잔느는 니꼴에게 제법 그럴듯한 드레스를 입히고, 그녀에게 단 한 문장만 말하라고 단단히 지시합니다. 그리고는 최대한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야밤의 정원에서 둘을 만나게 하지요. 물론 주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황태자비였던 시절 얼굴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꽤 오래전이지요. 왕비에게 미움을 산 뒤로는 왕비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을 뿐더러, 시감은 깜깜한 밤에 어두침침한 정원에서 사람을 만나놓으니, 일단 닮아보이기는 한데 긴가민가...하다 결국 왕비라고 믿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상대를 진짜 왕비라고 믿고 깊이 절하는 대주교에게, 가짜 왕비 니꼴은 장미 한송이를 건네며 잔느에게 지시받은 단 한 문장만 말했습니다. "그대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겠지요?" 자, 이것으로 대주교는 당신의 노예~(빠악) 대주교는 즉시 보석상에게 왕비와 계약했음을 알리고 자신이 선금을 지불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리고 선금이 지불된 목걸이는 곧장 잔느 드 라모트의 손에 들어가지요. 잔느는 곧장 목걸이를 알 단위로 낱낱이 해체해 일부는 자신의 액세서리에 박아 숨기고, 일부는 런던으로 건너가 팔아치웠습니다. 그리고 무려 프랑스로 돌아와 정신없이 사치스러운 생활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글쎄...요즘 사기꾼들 같으면 일단 팔아치웠으면 다른 나라로 넘어가 돌아오지 않을텐데 말이지요? 잔느 드 라모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기는 잘 쳐도 뒷정리를 못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무튼 그렇게, 마담 뒤바리를 위해 만들어지고 고객을 애타게 기다리던 목걸이는 누구의 목에서도 빛을 보지 못하고 마치 사냥된 매머드마냥 해체되어 버리고 맙니다. 한편 대주교는, 왕비가 목걸이를 받았는데도 왜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지, 왜 자기 보직이 더 좋은 곳으로 변경되질 않는지, 무엇보다도 대체 왜 나머지 할부금은 커녕 자기가 지불한 선금에 대해서조차도 아무 보상이 없는지 모르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대주교라지만 160만리브르에 달하는 목걸이 대금을 지불할 능력은 없었고, 그래서 보석상도 왕비에게 청구서를 보내고 자신도 왕비에게 제발 저 좀 구해달라고 왜 이러시냐고 애원하는 편지를 보내고 있었건만 베르사이유에서는 그저 묵묵부답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더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생각한 어느 날, 루앙 대주교는 딴에는 결사적인 마음으로 왕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기 직전 어리둥절해 하는 왕 앞에 증거서류들을 내밀며, 특히 왕비가 직접 서명한 계약서를 들고 왕비님이 내돈 안줘요 징징을 하게 된 것입니다만...서류를 읽어본 왕은 오히려 매우 분노하여 즉각 그를 체포하게 됩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왕비의 얼굴은 알아도 왕비가 어떻게 서명하는지 몰랐던 잔느가 제멋대로 적어둔 서명이 실제 왕가 사람들이 하던 서명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서류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드 프랑스(프랑스의 마리 앙트와네트)"라고 적혀있었습니다만.;;; 왕족은 실제 "드 프랑스"를 전혀 붙이지 않았거든요. 자, 드디어 사건은 세간의 눈에 드러나게 되었고, 동시에 대단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대주교의 증언에 따라 잔느 드 라모트가 범인임이 밝혀졌고, 곧장 체포됩니다(하지만 이미 그녀가 각종 증거서류들을 다 불태워버린 뒤였지요). 국왕 부부는 매우 분노했고, 이 파렴치한 사기꾼을 잡았으니 정의가 밝혀지리라고 생각해 곧장 재판을 열었습니다. 심지어 세간에서는 잔느 드 라모트가 마리 앙투아네트와 레즈비언 관계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고, 이에 격분한 국왕 부처는 절대 이 사기꾼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지요. 그리고 그들은 실제 재판에서는 이기고, 여론 재판에서는 참패하게 됩니다. 잔느 드 라모트는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중요한 증거 서류들은 모두 깔끔히 태워버렸습니다. 루앙의 대주교는 속아서 바보짓한 1차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밤에 만난 것이 왕비였고, 잔느 드 라모트가 왕비의 지시를 받고 행동했다고 단단히 믿고 있었습니다. 왕비의 사치벽은 국가적으로 다 알려진 얘기였고, 세간에 퍼져 있는 사악하고 음란하고 방탕한 왕비의 이미지에 이 사건은 정말 딱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대주교와 보석상은 모두 "자신들이 계속적으로 편지를 보내 왕비에게 문의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고 했고, 사람들은 이것을 왕비가 일부러 그들의 탄원을 무시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즉, 만일 그녀가 정말 무죄였다면, 사지 않은 목걸이 대금을 청구하는 보석상의 편지와, 자신을 제발 좀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루앙 대주교의 편지를 읽고 어리둥절해서라도 사정을 알아보았어야 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도 어떤 기관에서 내가 사용한 적 없는 무언가에 대한 거액의 대금 청구를 한다면, 대경실색해서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왕비는 왜 그저 침묵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대주교와 보석상이 자신에게 청구해 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중요한 순간 자신의 여자애인이었던 잔느 드 라모트에게 모든 누명을 덮어씌우려 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입니다.
왕비에게는, 맘에 안 드는 편지는 모두 제대로 읽지 않고 태워버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득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자신이 구입한 적도 없는 보석상의 대금지불 청구 편지를 받고는 "어마, 이게 뭐람? 꺄르륵 얘들 웃긴다" 이러고는 화르륵 편지를 불태워 버렸고, 할부금을 치러주십사 호소하는 루앙 대주교의 편지를 받고도 "어머나? 나 얘 좀 싫더라. 꺄르륵" 이러고는 불 속에 던져버렸던 것입니다. 당연히 왕비 측에서 제시할 수 있는 증거란 없는 것이지요. 결국 남는 것은 정황증거뿐인 것입니다. "난 잔느 드 라모트라는 여성을 만난 적이 없소!" "난 대주교를 만난 적이 없소!" 이 진실은 사악하고 방탕한 왕비의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실제 사기꾼인 잔느는 오히려 왕비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한 뒤 버려진 불쌍한 여인이 되고, 프랑스 왕실의 체면은 완전히 땅바닥에 떨어져 버렸으며,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프랑스 왕실은 불쌍한 백성 상대로 사기나 쳐 대는 한심한 범죄집단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잠깐 중간정리를 해 보자면, 이 사태가 주는 교훈은 두가지입니다. 1. 평소 주위에 평판작업을 좀 잘 해 놓자.
2. 메일은 끝까지 꼼꼼히 읽자. 특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청구서를 주의할 것(......) 어쨌건, 사기꾼들은 각자 형을 받게 됩니다. 나름 피해자였던 대주교는 일단 무죄가 되지만 분노한 국왕에 의해 수도원으로 쫓겨나고, 잔느에게 협력했던 사기꾼들도 나름의 벌을 받게 됩니다. 잔느에 대한 왕실의 분노는 매우 커서, 잔느는 태형과 더불어 도둑으로서 어깨에 낙인이 찍히는 형을 받게 되는데, 형을 받기 전 왕실 반대파가(......) 그녀를 감옥에서 탈출시켜주게 됩니다. 잔느는 당당히 비극의 피해자가 되어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에서 무려 자신의 비망록을 냈습니다. 비망록에는 왕비에 대한 악의적인 중상모략과 제멋대로 지어진 허위사실이 가득 실려 있었는데, (그 책에 실려있는 진실이라면 아마 "난 왕비랑 얼레리꼴레리한 사이 아니었다능!" 하나 정도일 겁니다) 영국과 프랑스 양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심지어 그 책이 프랑스 혁명을 앞당겼다고 이야기될 정도니 이 사건으로 인해 사실상 "절대적이고 신성한 왕"이라는 이미지는 프랑스에서 완전히 끝장나게 되는 것이지요. 아, 위에 적어두었던 오를레앙 공의 부하 운운도 진상은 참 어이없습니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혁명의 아이돌이 되건 말건 라모트 부인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일삼았고, 결국 비망록을 판 돈도 모두 소진되어 집달리들이 찾아오기에 이릅니다. 잔느는 쳐들어오는 집달리들을 몸으로 막다가, 안되겠다 싶자 재빨리 도망쳐 창문 밖으로 빠져나가 지붕으로 올라가려 하는데요, 이 때 실수하는 바람에 3층 밑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당시는 여름이었고, 추락으로 인해 심한 부상을 입게 된 잔느는 두달 정도 병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앓다가 결국 죽게 됩니다. 그게 진상의 전부죠. 이 모든 것은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아주 잘 나와 있으니, 그 만화를 읽으신 분이라면 이런 부가설명은 사실 필요없겠지만, 그래도 생각난 김에 정리해 두고 싶어서 이렇게 올려봅니다.
자, 그리고 이제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들을 올리겠습니다. 그녀가 어떤 패션을 즐겼고, 어떤 액세서리에 돈을 부었을지 한번 상상해보셔도 좋을 겁니다.
 황태자비 시절의 마리. 보통 그녀의 스타일이라고 인식되는 전형적인 로코코 패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화려한 머리장식과 스커트, 그에 비해 수수한 목장식
 프랑스 왕비로서 왕실 문장이 들어간 드레스를 입은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그림의 얼굴부분 확대. 타조깃과 진주, 다이아몬드를 활용한 머리장식에 비해 목에는 아무것도 없다.
 레이스와 리본을 적극 활용하는 편이었다.
 마리는 타조깃 광이었고, 이 그림이 가장 화려한 목걸이를 건 그림이다. 타조 지못미.
 한창 화려함을 추구하던 마리는 폴로네즈 스타일을 끝으로 요란함보다 칸츄리함에 눈뜨게 된다.
 좀더 자연소재를 추구하고, 여전히 모자엔 공을 들이지만 점점 소박해진다.
 당시 귀족들은 이걸 영국풍이라고 생각했다.(....왜?!)
 모자에 쓰인 것은 고급 타조깃이지만 패션은 자연미가 더 강해진다.
 비슷한 자세와 구도를 취한 초기시절의 화려한 드레스와 비교해 볼 것
 소재는 여전히 최고급이지만 이젠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이쯤 되면 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마리의 패션에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어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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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비를 위한 즉위식
역사/고전 관련 |
2008/01/3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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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만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_=
요즘 죽음과 사랑의 이미지에 묘하게 신경이 쓰이고 있던 차에, 몇가지 이야기가 손끝에 걸렸습니다. 하나는 끔찍하지만 어딘가 아름다운 중세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끔찍한데다 기괴하기까지 한 현대의 이야기입니다. 후자는 혐짤이 너무 많아 자제하고(.....) 좀더 낭만적이고 슬픈 사랑이야기에 가까운 전자를 얘기해 보려고요.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슬픈 사랑이야기들은 대략 다음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1. 우리는 신분이 차이나서... - 너무 많아서 짜증남. 그래도 예를 들다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2. 빌어먹을 수도원 ;ㅅ; (혹은 수녀원) -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등등등등등...
3. 집안이 대립중이라 OTL - 로미오와 줄리엣 등등등...
4. 남자새끼가 고집불통이에요 ;ㅁ; -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등등...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실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전설, 로미오와 줄리엣은 말이 많지만 대강 추스려 보면 "아마 그 비슷한 얘기가 있어서 그게 입을 타다 설화가 되면서 이 사람 저사람 추가해서 지금의 구조가...운운"... 어쨌건 중세에서 사랑이 좌절하는 방식은 대강 저렇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할 이야기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두 남녀는 신분의 차이로 역경을 겪고, 정치 문제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남자가 고집불통이라 결국 집안싸움이 나서, 마침내 기괴한 방식의 승리를 거두게 되니까요.
less..
1320년, 포르투갈의 왕가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납니다. 국왕 알폰소 4세와 까스띠야의 베아트리체 사이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나중에 "정의왕(o Justiceiro = the Just)" 페드로 1세가 됩니다.
페드로 1세가 태어났을 당시 포르투갈은 각 주변국과 귀족세력들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을 타듯 정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왕정 시대의 정치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혼인. 페드로 1세의 혈통을 보면 아라곤, 까스띠야, 시칠리아, 헝가리 등등이 아주 고루고루고루 섞여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당시 정세란 참 복잡한 것이었지요.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페드로는 당연히 정략 결혼을 하게 됩니다. 첫 혼약 상대는 다섯살 위인 까스띠야의 공주 블랑카였지만 페드로가 13살일때 취소되었고, 정식으로 결혼한 것은 1340년으로 상대는 역시 까스띠야의 공주인 콘스탄자였습니다. 당시로서는 흔치않게 신랑과 동갑으로 스무살이었던 신부, 아마 그 어린 왕자비의 불행이라면 자신이 데려온 시녀 중에 마찬가지로 20세의 젊음을 빛내고 있던 아름다운 금발의 이녜스 데 카스트로가 있었던 것, 혹은 그녀를 보자마자 암투가 난무하는 궁정에서 맘붙일 곳 없던 왕자가 곧장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었을 겁니다.
 이녜스 페레즈 데 카스트로
역사 속에서 초상화로 당당히 남는 것은 왕비나 혹은 왕의 인정받은 정부 뿐입니다. 당연히 고작 왕자비의 시녀일 뿐이었던 이녜스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공통되는 언급은 그녀의 금발이 매우 풍성하고 사랑스러웠다는 것, 발랄하고 선량한 성격이었다는 것, 그것조차도 사실은 구전일 뿐 거의 실체로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될만큼 희미합니다. 그녀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것은 그녀의 묘 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요.
어쨌건 페드로는 부인의 시녀인 이녜스를 깊이 사랑했고, 후계자로서의 의무에는 충실하여 콘스탄자에게서 곧 죽어버린 첫 아이를 비롯하여 세 명의 아이를 보았지만 그 뿐. 콘스탄자가 살아있을 때부터 이녜스를 가까이 하여 결국 태어나자마자 죽긴 했지만 첫 아들 알폰소까지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1349년 9년간의 쓸쓸한 결혼생활을 뒤로 하고 콘스탄자가 죽자 이녜스를 왕자비로 맞아들일 생각까지 하게 되지요.
그러나 당연히, 사정은 그렇게 넉넉하게 돌아가 주질 않았습니다. 당연히 아들의 외도를 몰랐을리 없었던 알폰소 국왕은 전혀 이녜스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꽤 주말드라마의 "그런 신분의 여자는..."운운 같지만, 사실은 좀더 복잡한 이유도 있었지요.
아까 열거한 혈통과 혼처에서 보아도 알 수 있듯, 당시 포르투갈은 까스띠야와 주로 혼사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혼사의 미묘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정략결혼의 대상자라고 해서 반드시 그 나라의 힘이 궁정 내에서 강해지는 것이 좋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무슨 얘기인고 하니, 대대로 합스부르크가의 공주들이 프랑스에 시집왔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프랑스 인들이 오스트리아 권력가들을 매우 환영했다"는 의미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략결혼의 양면적인 면이랄까요. 나라간의 교류가 확대되는 결과도 가져오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인질"의 역할을 하는 것이 또 정략결혼이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부담스러운 대상인 까스띠야인데, 하필이면 그 까스띠야인 시녀와 왕자가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늘 그렇듯 이녜스에게는 오라버니들과 아버지까지 있었고, 사랑에 눈먼 페드로는 이녜스의 친척들에게도 궁정 출입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뜩이나 까스띠야 세력이 강해질까 싶어 신경을 곤두세우고있던 알폰소 국왕과 포르투갈 귀족들의 신경질을 돋운 것이지요. 게다가 죽은 콘스탄자가 낳은 아들인 페르디난도는 너무 어렸고, 왕자비, 이어 왕비가 될 이녜스가 페르디난도를 몰아내게 된다면? 귀족들로서는 자신들이 정립해 놓은 세력 판도가 흔들리는 것은 조금도 반가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돌아가서 1349년, 29살의 나이로 콘스탄자가 죽자 알폰소 국왕은 다 알면서도(......) 다른 혼담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페드로는 결혼은 왕비랑 하고 사랑은 애첩과 한다는 당시로서는 매우 일반적인(...) 윤리관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녜스는 이미 페드로의 아이까지 낳았던 몸. 페드로는 그녀 외의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고 버티기 시작하고, 아마 못지않게 외곩수 성격이었던 것 같은 알폰소 국왕은 그 대가로 이녜스를 궁정 밖으로 추방해 버립니다.
아마도 국왕은 못 보게 되면 사랑이 식을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시녀 한둘 건드리는 거야 누구나 하는 일이고, 서자 한둘쯤 낳는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요. 천한 계집 따위 빨리 내쫓아 버리면 왕자가 정신 좀 차리고 새로운 왕자비에게 관심을 둘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참 신기하지요? "세상을 오래 살아 알만큼 안다"는 어른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재미있게도 마키아밸리가 지적했던 "지나치게 논리적인 자들의 실수"와 동일합니다. 상대가 얼마나 비논리적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행동하리라 믿다가 무섭게 뒤통수를 맞는 것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넵! 여러분이 예상하신 그대로 페드로의 사랑은 전혀 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역경을 만나는 바람에 더더욱 기름을 끼얹은 듯 불타올라 버렸습니다. 왕자는 무려 이녜스를 별궁 근처의 작은 집에 머물게 하며 계속 그 곳을 들락거렸습니다. 아니, 들락거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35세의 나이가 될때까지 페드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녜스가 머무르는 작은 집을 찾아갔고, 그 집에서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아이의 수는 무려 셋이 되었습니다! 사냥 등등을 핑계로 페드로는 늘 밖으로 나돌았고, 이녜스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자신의 "진짜 집"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외도도, 첩질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콘스탄자가 살아있을 때부터, 페드로에게 자신의 부인은 이녜스 단 한명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이었지요. 곧 밀려드는 혼약을 계속 거부하는 35세의 왕자가 대체 누구의 집에 찾아가 머무는 것인지가 귀족들의 입을 통해 알폰소 국왕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이쯤 되었을 때 알폰소 국왕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들의 이녜스에 대한 애정이 결코 한때의 열정이나 어리석은 연애놀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왕은 결정을 내립니다.
좀더 극적인 이야기꾼은 얘기합니다. 왕이 직접 이녜스를 만나러 갔노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이녜스는 임금님이 자신을 보러 왔다는 이야기에 드디어 자신이 인정받을 날이 온 것이라고 믿고 손주들을 보여드리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다가가 무릎을 꿇고 왕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고도 합니다.
 물론 훨씬 후대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그러나 실상, 왕은 세 명의 귀족을 보냈을 뿐입니다. 그들은 페드로가 없는 틈을 타 이녜스에게 가서 그녀를 죽여버렸습니다. 그 뿐입니다. 서른 다섯의 어머니가 되어있던 그녀가 칼에 찔려 죽었는지 목이 졸려 죽었는지, 어째서 그녀는 죽었는데 아이들은 살았는지도, 그 아이들을 누가 보살펴 주었는지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1320년 태어났던 이녜스 데 카스트로가 1355년 살해당했다는 것 뿐이고,
곧이어 서른 다섯살의 황태자가 예순 넷의 아버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 뿐입니다.
1355년부터 1356년에 걸친 전쟁에서 페드로는 사실 별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사실상 졌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인 1357년 아버지가 서거하게 되는 바람에 그는 왕이 되었습니다.
왕비 외의 여성과 바람을 피운 왕과 왕자들은 많습니다. 아니, 정실 외의 여성과 바람을 피우지 않은 왕은 쑥맥으로 유명했던 성왕 루이 9세를 제외한다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애첩을 두고 애첩의 자식들을 돌봐준 왕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 여성 때문에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그녀의 죽음을 이유로 내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친아버지에게 반역하여 왕이 된 것은 페드로 뿐일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케이스는 페드로 하나 뿐입니다.
왕이 된 그는 너무나 당연히도 죽은 이녜스를 위해, 혹은 살아남아 버린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강구합니다. 즉각 그는 이녜스를 죽인 세 명의 귀족을 수배합니다. 그 중 한 명은 낌새를 채고 재빨리 도망쳐 끝내 잡을 수 없었지만, 두 명은 수배 후 결국 끌려오게 됩니다. 페드로는 자신의 '왕비'를 죽였던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고, 전해지는 말로는 산채로 그들의 심장을 도려냈다고도 하고, 손으로 뜯어냈다고도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심장을 씹었다는 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강조된 후대의 윤색 냄새가 나지만, 어쨌건 그들이 결코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피의 복수를 한 후, 페드로는 곧 그녀에게 주었어야 할 것을 주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그는 자신과 이녜스가 이녜스가 죽기 전 해인 1354년 사제 앞에서 비밀 결혼을 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가톨릭에서는 왕과 왕비의 결혼이건 필부들의 결혼이건 "사제 앞에서"이루어지면 정식 결혼으로서 동등한 효력을 지닙니다. 즉, 페드로는 어떻게든 이녜스를 "정실 왕비'로 만들어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혼인에 대한 증거는 국왕의 주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래서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페드로는 끝내 이녜스를 교황청에서 인정한 정식 왕비로 만들어주진 못했습니다. 이녜스의 아이들 또한 원래 후계자였던 페르디난드의 후계자 자리를 갖지 못했지만, 적어도 왕자 공주로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며 지체높은 귀족들과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페드로는 교황청의 인정과 관계없이, 이녜스를 왕비로 선포하고 "즉위식"을 거행합니다. 죽은 왕비의 즉위식에 참석한 것은 바로 왕비의 관 속에 들어있던 시신이었다고 합니다. 왕비의 예복을 입은 시신이 옥좌에 안치되었고, 생전에 그녀를 인정하지 않던 귀족들은 모두 그녀의 부패한 손에 입을 맞추어야 했다고 하지요. 이것은 그야말로 '전설'. 이 죽은 왕비의 즉위식에 대해서는 상상력이 넘치는 그림들과 이야기들이 존재할 뿐 아무것도 입증된 바 없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합니다. 페드로는 코임브라에 묻혀 있던 이녜스의 시신을 이장하여 자신의 관이 놓일 곳 맞은편에 안치합니다.
 왕비로서 묻힌 이녜스
그렇습니다. '맞은편'입니다. 부부의 관을 나란히 안치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페드로의 관은 저 이녜스의 관 맞은편에, 서로 발을 맞댄 형태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 이색적인 안치 형태에는 매우 기독교인다운 이유가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날, 부활하자마자 서로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과연, 아가사 크리스티의 말 그대로입니다.
 "사랑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요.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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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한 낙서들
역사/고전 관련 |
2007/07/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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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여행 이야기, 라는 제목만 보면 가벼운 산문 같지만, 의외로 진지하게 고대의 여행형식과 여행성향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는 좋은 책입니다. 읽은지는 꽤 되었는데, 오늘 아는 분에게 얘기하다 문득 뒤적이게 되어, 마음에 드는 [낙서]를 옮기며 관련 애기를 해 볼까 합니다.
벽화 말고, 즉각적으로 벽에 그리는 그림-낙서-을 [그라피티](긁기)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고대부터 인간들이 낙서를 할 때 주로 사용했던 것이 철필이었기 때문입니다.
붓을 사용하는 문화였던 동양에서는 관광지 낙서는 붓으로 합니다만(......), 서양인들은 회벽이나 무른 돌로 마감된 벽에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 낙서한 탓입니다. 이런 낙서들은 말 그대로 즉흥적이고, 단순한 착상에서 나온 잡문 - 말하자면 요즘의 리플이나 가벼운 블로깅같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주로 6줄 이내로요.
아울러, 편지도 있습니다. [편지]-조각 종이-라는 단어에는 종이사용이 오랫동안 몹시 당연했던 우리의 문화가 녹아 있는데, 생각해 보면 이에 해당하는 영어는 Letter - [글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종이가 일반적인 문자 전달 수단이 될때까지 꽤 시간이 걸렸던 서양의 경우에 양피지(가죽), 리넨/아마지(천) 파피루스등의 다양한 매체에 [글]을 적어보내는 것이 편지였던 데다 더 고대로 올라가면 아예 토판에 글자를 긁어 적은 뒤 굳혀 보내는 습성을 지니고 있던 흔적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중 중요한 것은 바로 토판입니다. 가죽과 천은 긁어내거나 빨아서 재활용되고, 파피루스는 건조한 곳에서 보존되지않는한 쉽게 썩어버리는 데 비해 [토판]은 건조한 기후에서는 매우 견고하게 남기 때문에 수천년전의 편지가 생생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종이도 잘 보존한다면 천년 넘게 남고, 아마지나 양피지도 꽤 오래 갑니다만, 일단 경고성에 대해서는 토판이 최강인 듯 합니다. 게다가 재활용이 안되니까 한번 어떤 용도로 쓴 토판은 영원히 그 모습대로 남고 말이지요.)
예를 들면, 이 편지를 보십시오.
- 13년 전에 당신들은 아슈르를 떠났습니다. 당신들은 보증금을 내지 않았으며, 이후 우리는 은 1셰켈(1세겔=11.2그램)도 받은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신을 그 일로 힐난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쪽으로 가는 대상이 있을 때마다 서판을 보낸바 있습니다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기원전 2000년, 아슈르의 두 상인이 지불을 미루는 세 명의 손님에게 보낸 글)
13년이라는 무시무시한 시간은, 당시 여행이라는 것이 도보 속도 - 혹은 기껏해야 나귀나 말, 낙타의 속도를 능가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연락을 넣는 사이 흘러간 시간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지금으로 치면 독촉장 비슷한 겁니다. 요즘도 꽤 쓰이는 아주 평범한 얘기들이죠. 이미 기원전 2000년(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 중동 지역에는 대상이 존재했고, 그들을 통해 지불을 독촉하는 상인들이 있었고, 그 상인들은 은으로 대금을 지불받았으며, 둘이 이름이 한꺼번에 기재된 것으로 보아 [동업자] 개념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시대에도 먹튀는 여전했습니다.(.............)
그 중 제 뒤통수를 가장 멋지게 친 것은 다음의 편지입니다. 필자는 젊은 여성, 수신자는 그 여성의 아버지뻘 되는 남자입니다. 뭔가, 감이 오지 않으시나요?
-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값비싼 물건을 편지로 당신에게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내 아버지처럼 해 주신다면 구슬이 많이 달린 아름다운 머리장식을 나를 위해 구해주세요. 그것을 당신의 인장을 봉인하여 이 편지를 가져간 사람에게 전해주세요. 그렇게 하면 그가 내게 전해줄 것입니다. 만일 근처에 없으면 땅 속을 파서라도 제게 보내주세요. 나는 그것이 몹시 갖고 싶습니다. 부디 제게 그것을 주기를 거절치 말아주세요. 당신이 진짜 아버지처럼 저를 사랑해주시는지 어떤지, 이것으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거기 가격을 붙여 서판에 적어 제게 보내주세요. 제가 보내는 젊은이에게는 그 머리장식을 보여주어선 안됩니다. 거기에는 구슬이 아주 많이 달려 있고, 꼭 아름다워야만 합니다. 만일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되돌려 보낼 테니까요!
전에 말했던 망토도 보내주세요.
(기원전 1800년 전, 아다드 아붐으로부터 현재의 바그다드 북부 에눈슈나의 우잘룸에게 간 편지)
.......비싼 물건 안 원했다면서 망토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으로부터 3800년 전에 이 아가씨가 썼던-혹은 대서인에게 불러주었던-편지는 정말 사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었다는 생생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요 바로 밑의 골아픈 편지도요.
- 아빠, 정말 너무하세요! 저를 함께 도시로 데려가주시지 않다니! 만일 절 알렉산드리아에 데려가 주시지 않으면 아빠한테 편지도 안 쓰고, 말도 안 할 작정이에요. 인사도 안 할 거에요. 만일 아버지가 그냥 알렉산드리아로 가신 거라면, 이제부터 전 악수도 안 하고 인사 같은 것도 절대 안 할 거예요. 만일 절 데려가 주신다면 그런 일도 없겠지요. -중략- 아버지는 정말 너무하셨어요! 게다가 저한테 보내주신 물건들! 몽땅 잡동사니 뿐이에요! 아버지가 출발한 12일엔 모두가 절 속였다구요. 제발 부탁이니 절 데려가 주세요. 그렇지않으면 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안 마실 테니까요. 아시겠죠!
(2세기 말 혹은 3세기 초, 테온이 자기 아들에게서 받은 편지)
또한,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기도구였던 날카로운 철필로 유적지에 신나게 낙서를 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당연히 [누구누구 여기 왔다간다. 와 멋있다.]가 절대주류입니다. 그런데, 고대인들에게도 [관광]이란 분명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 관광객들이 보이는 거의 모든 행동양식을 그들도 보이고 잇었습니다. 3000년 전의 사람들이 무엇을 관광했는가 하면, 4000년 전의 사람들이 세워놓은 것들을 관광했지요. 그들에게도 그것은 [1000여년 전부터 있었던 매우 위대한 유물]이었으니까요.
그 결과, 쿠푸왕의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아부심벨 사원이나 트로이 유적지에는 관광객들이 놀러간 자취가 선명합니다. 그들이 남긴 낙서는 요즘의 리플놀이 비슷한 흐름을 보입니다. 물론 대세는 등수놀이입니다(......) "토트신(주- 따오기 머리를 한, 이집트의 서기 신)의 유능한 손 서기 아무개가 여기 왔다감"이라고 쓴 낙서는 셀 수 없이 많은데, 무려 이 중에서는 **학교 애들 전원의 앞에서 남긴다, 는 말도 있습니다. 기원전 13세기의 글이니까, 지금으로부터 3300년쯤 전 서기학교 애들은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를 구경하러 단체수학여행을 했던 셈입니다. 네, 패턴은 변하지 않는 겁니다. 장담하건대, 만일 고대 이집트에서 미성년자에게 맥주가 금지되어 있었다면 저 학교 학생들은 틀림없이 선생님 몰래 마을에서 차갑게 식힌 맥주단지를 공수해 밤에 마셨을 거라는데 은화 1드라크마를 걸겠습니다(빠아아아악)
어쨌건 리플 대세는 등수놀이와 잘난척. 그리고 거기 다음과 같이 태클을 건 싸나이가 있었습니다.
- 손가락이 뛰어난 서기가 왔다. 멤피스에는 어깨를 겨룰만한 이가 없는, 바로 서기 아메넴헤트이다. 나는 말하고 있다. '이 말을 좀 해석해 달라'고 말이다. 나는 그들이 한 일을 보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 꼭 생각이 없는 여자가 쓴 것 같다. 그들이 신전을 보러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그들을 막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추태를 보았다. 그들은 절대 토트 신이 가르치고 이끈 서기는 아니다.
(약 기원전 1300년, 조세르왕의 피라미드에 새겨진 낙서)
요즘 말로 하면 -초딩즐, 얘들 대체 뭔 말을 썼는지도 모르겠네요. 토트신의 손가락이라니, 님들 지금 토트신 무시하나효. 아놔 회원제 하든가 하지?- 쯤 될 겁니다.
어떤 인간은 이집트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적중 9개의 유적에 자기 이름과 밑에 그리스어로 짧은 어구를 남겨서 최다낙서왕으로 이름이 남고(......) 어떤 사람은 상형문자 앞에다 "어떡해, 나 나름 학잔데 여기 글 하나도 모르겠어ㅠㅠ" 라고 좌절해 놓고(그거야 당신이 그리스인이니 당연하지), 그 밑에는 어떤 사람이 "어이, 너무 좌절하진 말아" 하고 격려해 놓고, "니들 부모님이 니들 여기서 이러는거 아니?" 라는 매우 시대초월적인 구문까지 적혀 있습니다.
이런 낙서덕분에 알게 되는 역사적 사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멤논의 거상은 (사실은 아멘호테프 왕의 석상이지만요) 로마의 세베루스 황제가 수리한 다음부터 이름의 원인이 된 [새벽이면 멤논이 어머니인 새벽의 여신을 부르며 흐느끼는 소리] 라고 알려진 유명한 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그 정까지는 관광객들이 앞다투어 "우와! 나 멤논이 우는 소리 드러써염!" 이라고 남겼거든요. 트로이 유적은 로마시대까지만 해도 관광자원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앞다투어 거기 자기 이름을 새겼죠. "헥토르 광빠 ***우스가 왔다감" "난 아킬레우스가 좋더라" 등등 말입니다. 물론 후대로 가면 기독교인들도 이 낙서대열에 합류합니다만, 글을 아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는지 자기이름만 묵묵히 적어놓거나 십자가를 그리는 정도로 끝납니다.
개중에는 - 특히 그리스나 로마 인들이 - 시시껍절하게 호메로스를 흉내내서 적어놓은 짧은 단문들이 있습니다. 딴에는 멋진 구절이랍시고 긁적거렸는데, 요즘 기준으로 보면 "광빠가 쓴 범작팬픽" 정도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개중에는 꽤 멋드러진 단문을 써 놓은 경우도 있지만, 아래와 같이 찡한 낙서도 있습니다.
나는 피라미드를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오빠, 당신이 함께 없음에,
나는 이곳에서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을 마음에 간직하며,
나는 여기에 이 한탄의 말을 적습니다.
(로마인 여성이 남긴 짧은 라틴어 시)
이것은 말 그대로 발췌한 낙서들...[고대의 여행 이야기]라는 책에 나온 조그만 예제들일 뿐입니다. 책은 이런 예시와 함께, 각종 여행기와 당시 자료들을 인용해 가며(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집트 관리 웨나몬의 엄청난 모험기 부분입니다만, 긴데다 끝부분이 소설되어 있으니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고대의 여행이 어떤 경로로,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통해, 어떤 행정제도 밑에서 어떤 길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책을 넘겨준 친구에게 매우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이런 식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부분이 좋습니다. 나폴레옹도 요강을 애용했고 연개소문도 [숟가락]으로 밥과 국을 떠먹었으며,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넘어서 패션 리더가 되는 여성은 국왕의 애첩이거나 고급 창부 혹은 고급 기생들- 지금으로 치면 연예인이었다는 점이라던가, 그래서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경향을 따라가는 여성들의 패션을 손가락질하고 잔소리하는 꽁생원 남자들이 나타났다는 거라던가, 이집트인들이 모래 든 보리빵을 너무 먹어 치주염을 자주 앓았으며, 에스키모 여자들은 실 대용으로 쓰이는 바다표범 힘줄을 너무 씹어 이가 닳았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이, 제가 역사를 하게 된 원인입니다. 이런 게 지금도 너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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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걔들은 어떤 애들인가.
역사/고전 관련 |
2006/06/0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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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밑의 발작을 가라앉히기 위한 몇가지 포스팅을 기획했습니다. 일단 전공과 관련있는 걸로 하는게 내가 쓸때 편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삼총사로 해 보겠습니다.
흠흠, 그러니까 이전부터 삼총사 완역본을 읽은 뒤 한번쯤 정리를 할 생각을 하고 있던 바가 있어서 해 보려는 겁니다. 왜냐하면, 흠흠-
그러니까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코카인을 하는 셜록 홈즈"에게 익숙하지 않죠. 왜냐하면 요즘 나오기 전의 옛날 번역본에서는 그가 코카인을 한다는 사실을 다 지웠기 때문이었어요. 하긴, 뽕맞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탐정을 하겠냔 말이죠(......). 또 하나, 의외로 엘큘 포와로는 요즘 사람이에요.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포와로를 홈즈와 연속으로 보아서 고전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포와로는 당연히 석탄을 태워 벽난로를 때던 홈즈때와 달리 중앙난방 장치가 저택들에 한창 설치될때 살고 있죠. 홈즈때엔 길거리에 가스등이 있었고, 포와로 때에는 전구가 사용되고 있지요. 홈즈는 기차에서 내리면 당연히 마차를 탔지만, 포와로는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헤이스팅스에게 잔소리를 해 댑니다. 방금 포와로 말년에는 에스컬레이터도 등장한다고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의 팬인 지인이 알려주네요.
위의 인식들은 사실 저자가 기도하지 않은, 최초의 역자, 혹은 당시 사회의 상황 혹은 이런저런 사정으로(포와로의 경우, 제대로 삽화가 들어간 책은 꽤 오래 없었죠) 만들어진 "2차 스테레오 타입"입니다. 이유없이(사실은 홈즈를 주제로 만든 연극 소품이 그 옷이라서지만) 굳어버린 갈황색 체크무늬 망토와 모자가 홈즈의 소품으로 굳어서, 훗날 BBC드라마에 잘 빠진 검은 양복을 입은 홈즈를 본 제가(긍정적 의미로) 쩡 굳었다던가, 시대가 또 미묘하게 다른고로 거의 현대식인 양복을 입고 비행기를 타는 프랑스 드라마의 뤼뺑을 보고 쩡 굳어버린다던가 하는 것 말입니다.
이러한 2차 스테레오 타입이 가장 굳게 인식되고 무려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것이 바로 삼총사입니다. (씨익) 예, 이것이 바로 오늘의 본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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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리슐리외 추기경과 안 도트리슈에 대해 죽 훑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총사대"와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와 제 4의 총사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인 달타냥입니다.
총사는 銃士 입니다. 뭔 소린고 하니 검을 쓰는게 검사, 도를 추구하는 인간이 도사, 싸우는 인간이 전사,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찍사(빠악)...아니 뭐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총을 다루는 이"가 총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총을 다루는게 총사라면 그럼 이놈들은 총잡이Gunner냐, 아닙니다. 영어원제를 보시면 Musketeer입니다. 머스킷티어, 가 되겠죠.
우리는 워낙 헐리우드나 기타등등에서 매체화하면서 만들어진 총사의 이미지에 익숙해서, 총사, 하며 일단 펜싱검부터 들려야 속이 시원합니다. 그리고 야단스러운 깃털이 달린 큰 모자를 씌우고, 당시 유행이었던 무릎위 부분을 꺾어내린 장화와 스페인식의 짧은 망토(혹은 웃옷), 어깨로 내려오는 큰 칼라에 약간 아기들 옷 같은 겉옷을 입히죠. 물론 그 겉옷은 프랑스의 왕가의 문장과 유사하게, 푸른 바탕에 은빛으로 수놓인 십자고 말입니다.
자 그럼 실제 총사를 한번 보죠.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강 그때쯤의 총사입니다.
옷차림을 보니 삼총사때보다는 쬐끔 전이지만, 일단 같은 17세기의 총사입니다. 분명 우리가 보아 익숙한 레이피어도 차고 있긴 하지만, 뭔가 괴이한 막대 같은 것(물론 총입니다)와 진짜 길쭉한 막대를 들고 있습니다. 잘 보시면 허벅지쯤에 네모진 무언가를 차고 있는게 보일 겁니다. 그리고 왼손에는 뭔가 상당히 쓸데없어 보이는 줄이 달려 있지요. 손에는 뭔가, 도로시가 나무꾼에게 기름쳐줄 때 쓸 것 같은 작은 병을 들고 있고요.
총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걍 장전하고 방아쇠 당시면 나가는 편리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총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 포였고, 최초의 총이란 사실 "총"이라기보다는 "손포"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거기부터 시작합시다. 물론 전 무기사를 정면으로 한 인간은 아니니 세부사항은 틀릴 수 있습니다.
포는 기본적으로 (아주 간단하고 무식하게 설명해서) 둥근 원통에 화약을 쟁여놓고 꾹꾹 누른 뒤, 거기 포탄을 굴려넣는 겁니다. 그리고 뒤쪽에 미리 꽃아둔 심지에 불을 붙여서 그 불이 포 안의 화약에 닿아 터지면 그 반발력으로 포탄을 적 편에 날리는 것이지요. 초기의 포탄은 "폭탄"이 아니었습니다. 즉, 터지는 탄이 아니라 커다란 돌덩이나 쇠공을 적에 날리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괴력이었습니다. 말마따나, 투석기로 돌 공을 던지는 것보다 직격으로 포탄을 쏘아대는게 훨씬 타격이 컸지요. 게다가 세균은 몰라도 병 옮기기 개념은 있던 당시 사람들은 페스트에 걸린 시체 등을 쏘아보내던가 하는 만행도 자주 했으니까 포는 참 유용한 병기였던 셈입니다. 성 깨기에도 도움이 되고요.(일단 직각으로 선 성벽에 직빵으로 포탄을 쏘아박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것은 좀더 작게 만들면 들고 다니며 쏠 슈 있는 유용한 병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소형포를 개발했습니다. 초기엔 정말 그 포 원통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바보같은(......) 물건들이 나왔습니다만, 머리굴리기는 굴릴수록 가속력이 붙는 법이라 곧 핸드 캐넌이라 할 만한 것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제대로 된 총이 나오게 됩니다.
이 당시 총의 발사기작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것이어서 다 설명해야 하나 싶은데, 역시 무식하게 간단히 말하자면, 최초의 총들은 화약을 넣게 되는 곳 - 약실에 화승(지금 저 남자가 허리에 차고 있는 줄)을 달게 됩니다. 화승이란 무엇인고 하니, 불이 붙는 심지입니다. 아주 초기엔 그 화승에 불을 붙여(우리나라 포수들이 쓰는게 가아끔 사극에 나오죠. 불땡겨! 하면 옆에서 조수가 화승에 불을 붙이고 말입니다) 화승이 다 타 들어가면 화약에 불이 붙어 발사가 되는, 마치 포와 같은 방식이었습니다만, 역시 이것으로는 2인 1조로 발사를 해야만 하고, 발사 시점을 정확히 조절할 수가 없으니 조준도 어려울 뿐더러 재수없게 비라도 오면 화승불이 꺼지거나 화약이 젖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으니 이래저래 곤란했습니다. 후일 방아쇠가 발명되면서, 방아쇠를 당기면 화승의 불이 약실에 떨어지는 방식으로 개선되어 좀더 자유로운 조절과 조준은 가능해졌지만 그래도 꽤나 다루기 까다로웠지요.
그래서 결국 새로운 방식이 개발되는데, "부싯돌"방식입니다. 이것의 효과는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런 격발장치를 갖춘 놈들이 나온 거죠.
에 이게 뭐야? 하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삼총사 영화에서 그들이 극히 희귀하게 총을 쏠 때 걔들이 불씨 가지고 노는걸 보신 분들은 없을 겁니다. 16세기 중반까지 총을 다루는 자들 - 총사 - 들은 화승에 붙이기 위한 불씨를 굉장히 소중히 보관해야 했습니다. 슬프게도 라이터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발명되었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어 있었죠. 뭐, 넘어가서. 라이터 얘기 나온 김에, 부싯돌식 라이터 - 시중에서 제일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놈들 - 을 갖고 계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라이터를 킬 때 부싯돌이 돌면서 불꽃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바로 거기 착안해서,
1. 일단 매우 긴 꼬질대로 깨끗이 총신을 한번 밀어주고(지난번 발사때 남은 그을림을 닦아주기 위해)
2. 거기 딱 한번 분량만큼 미리 포장된 화약포를 뜯어 화약을 넣은 뒤
3. 꼬질대로 화약을 쭉 눌러주고
4. 납으로 된 동그란 총알을 총구에 도로록 굴려넣은 뒤
5. 화약에 갖다박아주기 위해 꼬질대로 다시 밀어주는 센스를 발휘한 뒤
6.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원래는 이 한줄에 파생으로, 화약접시에 화약을 조금 담고 미리 적당한 길이로 잘라 둔 화승을 단 뒤 화승에 불을 붙이고...가 있지만 부싯돌의 발명 덕에 한 줄로 줄어드는 놀라운 기술의 발전을 이뤘으니 넘어가죠)
7. 부싯돌에서 불꽃이 번쩍 튀면서 약실의 화약에 불이 붙어 탄이 발사되는 겁니다!
자, 이 얼마나 놀라운 기술의 발전입니까! 장전시간이 "매우 숙련된" 총사의 경우 1분 30초로 줄어드는 놀라운 하이테크놀로지입니다!
이 놀라운 기술의 개발로 인해 총사들은 몇가지 매우 유리한 점을 갖게 되었는데, 일단 화약접시가 사라지면서 연기와 불꽃 때문에 적의 눈에 띄는 불상사가 덜 생겼다는 겁니다. 물론 연기는 나지만, 이전의 화약접시-화승방식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거죠.
게다가, 이쯤 되면 총신이 계속 길어지고 이런저런 기술의 발달로 제법 쓸만한 전력이 되어가기 시작한 겁니다. 물론 탄알을 총신 뒤쪽으로 넣는 요즘의 후장식(....어째 어감이...) 과는 달리, 앞으로 넣어주는 전장식 총이었으므로, 그러니까 다시 말해 뒤로 넣을 수 없어서 엎드리면 안되니까, 앞으로 넣기 위해 서서 하거나 누워야 했던 불편점은 있지만 아무튼 총이란 점차 전장에서 더 쓸모있는 병기가 되어가는 거죠.
다만 역시 이때의 총이란 총만으로 전투를 커버할 수는 없을만큼 장전이 느리고 불편해서, 총을 다루는 자라면 검도 어느정도는 해 두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17세기의 전장에서는 클레이모어나 브로드소드가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었거든요.
자아, 바로 이것이 - 총사, 라는 것이 검사와는 다른 카테고리를 형성하는데 대한 설명이 된다고 전 생각합니다. 즉, 머스킷을 다룰 수 있는 전력은 궁수, 검사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구분되었던 겁니다. "머스킷을 다루는 자" 들이 바로 총사(머스킷티어)인 겁니다. 전혀 우리가 흔히 삼총사를 보며 가졌던 "국왕 친위대를 총사라고 하는군"과는 다른 것이지요. 물론 삼총사에서 트레빌이 대장으로 있는 총사대는, 당시 왕이 군대를 지휘했던 프랑스에서 "국왕 폐하의 총사대"로서 국왕을 위해 봉사하지만, 그건 한국의 군 통수권자가 대통령이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지라, 정식 군인이라고 보기엔 좀 어설픈, 요즘 기준으로는 좀 느슨한 군 조직이었던 겁니다.
예를 들면 - 소설에서 추기경의 친위대라 나오는 이들도 충분히 총사일 수 있습니다. 트레빌의 총사대건 추기경의 친위대건 다들 칼을 들고 싸우다 보니(어깨 으쓱) 그들의 총을 다룬다는걸 잊기 쉽지만, 뒤마는 라로셸 공방전에서 총사들의 활약을 꽤 명확하게 다룹니다. 명중도가 좀 거시기했던 당시, 깃발에 일곱개의 총구멍이 나는데도 진지에 버티고 서서 포도주를 마셔가며 총격전을 벌이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사실은 그것이 그들의 본업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여담입니다마, 그나마 아이언 마스크는 딴건 몰라도 당시 머스킷의 명중률에 대해서는 대략 나쁘지 않은 묘사를 했습니다(그리고 놓치기 쉽지만, 걔들 총쏠때 부러 눈 감고 쏘더이다). 그러니까 삼총사가 단번에 카드 눈을 맞추거나 하는 일이 거의없는 것도 당연하고 (100미터에서 사람 맞추면 칭찬듣습니다) 장전이 오래 걸리는 총이니 매트릭스식이나 람보식 투타타 액션도 보여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 총 부분은 영화에 거의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화에서는 늘 총사 이름표를 붙인 삼검사들을 보게 되는 거고요(후우)
아무튼 총사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 그렇다면 과연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 달타냥은 요즘으로 치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20-30대 프리터 백수요.
..........정말입니다 -_-; 어쩐지 총사=국왕친위대검사들=당연히 잘먹고 잘살 것이다, 라는 인식이 굳은 듯 한데, 전혀 아닙니다. 이건 그냥 완역판을 읽어보시면 될 겁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건 거의 완역판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실 수 있는 사실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는 해 보죠(생긋)
1. 그들의 이름은?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의 이름은 모두 산 이름입니다. 셋다 본명이 따로 있는데, 나름의 사정상 가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명이 모두 사실은 산 이름이라, 삼총사 완역본에 보면 그들이 이름을 말할 때마다 비웃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물론 거의 5초 뒤에는 댓가를 치룹니다) 하지만 전 저들이 웃는 이유가 이해가 갑니다. 왠 총사 차림의 사내가 와서는, "난 한라라는 사람인데, 여기 내 친구 백두와 금강이라고 하오." 라고 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2. 아토스는 어떤 사람인가?
그나마 2차 스테레오 타입이 제일 정상인에 가까운(...) 아토스부터 시작합시다. 아토스는 본디 라 페르 백작이라는 고귀한 신분의 소유자로, 지금은 사정상 - 이라기보다 사실 꽁 해서 - 가명을 쓰며 밀라디 덕에 얻은 여성혐오증을 가진채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삼총사에 비해 나이가 좀 있는 쳔이라 "달타냥, 난 자네를 내 아들과도 같다고 생각한다네" 따위의 말도 하는 인간입니다. 적어도 그가 삼총사 가운데 비교적 전략적 사고를 하는 사람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아토스도 달타냥에 비한다면 전략적으로 번뜩이는 타입은 또 아니랍니다.
그의 여성 혐오증은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영화에선 어째서인가 잘 표현되지 않습니다만), 오죽하면 달타냥이 사정상 여장을 하고 숨어들었을 때(혹은 콩스탕스를 숨겨줄 때일 겁니다. 기억이 영 -_-;) , "그 여자는 누구냐"는 다른 사람의 질문에 "아토스의 애인입니다"라고 하자 정말 불 붙은 듯 펄쩍 뛰면서 "나의?!" 라고 외치죠. 물론 교활한 달타냥이 "응, 자네의!" 라고 해서 넘어가지만요.
3. 달타냥은 열혈 바보인가?
천만에요. 아토스가 귀족이라는 것 때문인지, 아토스의 우아하고 지적인 면을 강조하느라 (아무래도 그래서 그의 지독한 여성 혐오증이 숨겨진 것 같습니다만) 밸런스 때문에 뇌가 퇴보해서 그렇지, 사실은 달타냥이야말로 삼총사의 브레인입니다! 그가 어느정도로 머리회전이 빠른가 하면, 다른 총사들은 이해를 못해서 갸웃갸웃하는 책략을 제안하자, 아토스가 달타냥을 직시하며서 "언젠가 자네가 총사대장이 될때 내가 자네의 부하라면 더없이 좋겠다"고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상식적으로, 그 무시무시한 밀레이디를 농락하고 격침시킨 남자가 과연 열혈바보일 수가 있나요? 달타냥의 밀레이디 꼬시기를 보고 있으면 야 사내놈들이 이래서 도둑이구나 싶을 정도로 교묘합니다. 게다가 밀레이디에게 접근하기 위해 자신을 연모하는 하녀 케티를 이용하는 기술을 보고 있으면, 프랑스 남자 주변에는 별로 접근하고싶지 않아질 정도죠. (다행히, 얼굴과 몸매가 무기인 제게는 프랑스 남자 쪽에서 알아서 피해줄테니 다행이지 말입니다) 사실 둘이 동침한 뒤 밀레이디에게 자기 정체를 밝힐 때, 밀레이디가 단도 들고 죽이려고 덤벼들 만 합니다. 저라도 그럴 거에요. 아니 세상에 이런거 저런거 그런거 다 해 놓고 작업 정석 다 밟아 놓고, 그게 뻥이었다는걸 정사 후 쉬는 자리에서 밝히다니 이런 싸가지 같으니.
하지만 그는 정말 머리가 좋습니다. 게다가 추기경이 얼마나 무서운가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고, 실제 그 앞에서 자신의 총사대 대장으로 들어오라는 리슐리외의 스카웃 제의를 의리때문에 거절해 놓고는 "나 이거 분명히 후회할 거야 엉엉 ㅠㅠ" 하는 녀석이기도 합니다. 세상 무서운건 아는 녀석이죠. 처음의 결투사태야, 아무리 머리가 여우라도 워낙 촌여우라 벌어진 일이고요.
4. 아라미스는 바람둥이인가?
단적으로 말해, 아닙니다. 물론 아라미스가 고운 미모를 가진 남성인건 맞아요. 서생처럼 보이는, 어딜 보아도 군인이라던가 총이나 검과는 거리가 먼, 요즘 감각으로 치면 곱상한 대학생같아 보이는 외모인 게죠. 이 아라미스는 예쁜 남자, 아니, 그러니까 꽃돌이라는 것, 그리고 처음 달타냥과 마주칠때 여성의 손수건에 대한 실랑이 때문에 결투하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자꾸 바람둥이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영화를 만들 때에도 그게 더 화려하고 캐릭터 배분이 좋죠. 열혈 달타냥, 지적인 아토스, 잘생긴 바람둥이 아라미스, 그리고 뚱뚱하고 호남형에 먹보인 포르토스.
하지만 아라미스는 사실 대단히 일편단심에 끈기는 있되 수줍어하는 타입의 남성입니다. 그가 달타냥에게 화를 낸 원인은 그가 사랑하는 단 한명의 여성(!)이 방금 떨어뜨린 손수건을, 그녀의 이니셜이 알려지면 곤란하기에 동료들이 지나가면 주우려고 밟아서 감추고 있었는데 그걸 달타냥이 주워버려서입니다.
말하자면 -_- 고등학교에서 좋아하는 여자애가 준 쪽지를 슬쩍 밟고 친구들이랑 얘기하는데 지나가던 전학생이 그걸 주워서 펴서는 "3학년 6반?" 이거 당신 거에요?" 라고 한 겁니다 -_-; 달타냥이야 선의였겠지만 아라미스로서는 빡도는 일이죠. 게다가 그 직후 동료들에게 다연히 놀림받았으니, 결투를 할 만한 일인 겁니다.
게다가 그 연모의 대상은 공작부인으로, 왕비의 친구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아라미스는 필요할 때 "궁중의 친구"에게 삼총사가 알아낸 것들을 전하곤 하는데, 그 "친구"가 언급될 때마다 수줍어하는 것은 이루 볼 수 없을 정도로 귀엽습니다.
게다가 전력도 보통이 아닙니다. 사실 아라미스는 원래 신학생이었고, 사제가 되는 것에 특별히 불만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당연히 총사 같은 것(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가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이 될 일은 없었지요.
그러나 어느 날, 여자를 끼고가던 한 검사가 아라미스에게 무례한 모욕을 합니다. 아마 얼굴이 이쁘다 보니 "어이 거기 언니, 거시기는 달렸어?" 정도의 가벼운 인사였겠지만(...) 얼굴 고운 만큼 끈기도 집념도 넘쳤던 아라미스는 그 원한을 깊이 새기게 되지요. 특히, 상대가 검을 가진 자였기에 모욕을 당하고도 변변한 응수 한 마디 못해주고 도망쳐야 했던 것은 끝없이 분한 일이었겠지요. 여자분들 중 지하철 치한 만나 소리쳤더니 오히려 이죽이죽 놀림당한 기억이 있는 분들, 대강 그 기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이야 경찰 외엔 방법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결투라는 수단이 있지요. 분노한 아라미스는 신학생이고 나발이고 집어치우고 복수하기 위해 검술을 배우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 검술 선생이 포르토스였던 것입니다. "아니 그 먹보 뚱뚱이가 무슨 검술을?" 하시는 분들, 요 다음의 포르토스 항에서 봅시다(싱긋) 아무튼 2년인가 3년 뒤, 무서운 집념으로 검술을 익힌 아라미스는 결국 상대에게 결투를 신청해 복수를 하게 됩니다. 상대를 해치우고 복수를 마쳤으니 다시 신학생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총사가 되어 남게 됩니다. 사실 하인이 정말 불쌍하게 되었지요. 아라미스의 하인은 사제의 하인이 되는게 꿈이어서 신학생인 아라미스를 모시는 건데, 주인어른이 도박 폭음 계집질을 일삼는 무리 가운데로 들어가 버렸으니 말입니다. 셋중 어느쪽도 잘 하진 않지만(......)
아무튼 아라미스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얌전하고 예쁜 청년입니다.
5. 포르토스는 왜 먹보인가 -_-;
사실 포르토스야 말로 가장 왜곡된 인물입니다. 불쌍해 죽겠어요.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은 전부 진실입니다 -_-
포르토스는 대단히 남자답게 잘 생긴 미남입니다. 청년 고위장교라던가 귀족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잘난 사람이라, 사실 정말로 여자를 후려 등쳐먹는건 바로 이 포르토스입니다(!). 포르토스의 애인은 늙어빠진 대서소 주인의 비교적 젊은(30~40대) 마누라인데, 당시 이런식으로, 젊었을 때 돈을 벌어 부자로 나이든 뒤 자신보다 20살 이상 어린 신부를 맞는 일이 꽤 흔했다고 하니, 그렇게 팔려온 여자들이 딴눈을 파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많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포르토스는 이 아줌마를 꼬신 뒤 필살의 "나같은미남은당신말고도갈데많아"전략으로 늘 성공적으로 남편 몰래 돈을 빼내는 아주머니의 재정 지원을 받아냅니다. 한번은 대략 처참하게 실패하지만 다시 수단을 부려서 성공적으로 말과 마구를 받아내지요.(...여기서 뭔가 수상하신 분,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게다가 그는 삼총사 중에서 가장 검술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위에 말했듯 아라미스에게 검술을 가르친 것이 포르토스였을 뿐 아니라, 사실은 아토스도 처음 총사대에 들어왔을 때 포스토스에게서 검술을 배울 정도로 포르토스는 뛰어난 검술가입니다. 슬프게도 캐릭터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그는 매력없고 사람좋은 뚱보 먹보로 그려지지만, 사실은 가장 호남아에 미남에 여자 벗겨먹기에 뛰어난 검술에, 정말 보통이 아닌 캐릭터지요.
심지어, 그는 엔딩도 상당히 행복합니다.(....20년 후라던가 철가면 얘기는 아닙니다...;; ) 삼총사에서 그는 사실은...
대서소 노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차서 오지요(.....) 이제 자신이 기둥서방으로 들어앉으면 대서소 돈은 다 자기거거든요. 물론 사업체 망하는 거야 포르토스 알 바 아니지 않겠습니까. 돈 많은 과부는 오히려 부잣집 외동딸보다 더한 로망이거든요. 외동딸에게는 아빠나 오빠나 삼촌이 있지만, 과부에겐 그런게 의미가 없으니 말입니다.
대강 캐릭터만 보아도 이 정도로 차이납니다. 사실 영화적으로는 스테레오 타입들이 배치하기 매우 좋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 삼총사들에게는 또다른 매력이 있어서, 그것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슬픈 일이기도 해요. 그것은 바로...
이들이 한량없이 찌질한 가난청춘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월급이야 쥐꼬리만큼 들어오죠. 그러나 하루가 멀다하고 계집질 해야죠, 도박 해야죠, 술도 마셔야죠, 그뿐입니까, 훌륭한 마구나 무기도 질러야죠. 사방팔방 지름신은 청년들을 부르는데 월급은 쥐꼬리니까, 가끔 국왕이나 왕비에게 공을 세우고는 그 댓가로 보석반지를 받아서는...
그걸 전당포에 팔아먹어서 그걸로 생활 유지합니다.
절대 농담이 아니랍니다. 심지어는 밀레이디가 달타냥에게 주었던 보석반지도, 아토스에게 굴러들어가 잠깐 지난날의 사건을 늘어놓게 되었을 뿐, 곧장 전당포로 흘러들어가게 되지요. "어차피 내력이좋은 반지도 아니니까, 팔아도 될 거 같아" 였던가요. 그걸로 무기를 구입할 겁니다.
그런 식입니다. 이들은 정말 가난해요. 라로셸 전투에 참가해 공도 좀 세우고 해야 짭잘하겠는데, 거기 가져갈 말과 마구와 무기 마련에 골몰하는 겁니다. 지금 군대와 다르니 자기 무기는 자기가 챙겨야 하고, 자기 말이나 마구도 다 자기가 마련해야 하는 거죠. 근데 얘들이 원래 신분도 숨기고 총사지하는 마당에 돈이 딱히 있을리가 없으니까, 왕비전하가 주신 반지를 팔아먹거나(괜찮아, 왕비 전하를 위해 쓰는 거니까 전하도 이해하실 거야), 국왕이 준 포상금을 써서 생활을 유지하는 거죠.
그러니 결국 아토스는 백작님으로 돌아가고, 아라미스는 다시 신학생이 되어 사제가 되고, 포르토스는 제법 돈줄 있는 과부와 결혼하고, 달타냥은 총사대 부대장이 되는 엔딩은 의외로 상당한 해피엔딩인 겁니다. (저기 죽어있는, 달타냥과 바람났던 유부녀 콩스탕스 보나슈 부인은 무시한다.)
"이렇게 다 해어지다니!" 라고 하는 달타냥에게 아토스가 그러죠.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날이 오겠지."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 같지 않나요? 예, 바로 "내일은 해가 뜬다"의 가사입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비온뒤 아침에는(불확실) 해가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로 흐르는 바로 그 가사 말입니다. 내일은 해가 뜬다, 는게 이 찌질이 청춘들의 인생모토고, 그게 이루어지는게 삼총사거든요.
기껏 공을 세운 목걸이 사건 후 버킹엄이 준 네 마리의 최고급 준마와 마구를 도박과 낭비로 홀라당 다 날려먹고, 구르고 구르다 전공 세워서 겨우 입에 풀칠하고, 추기경의 음모에 직접 맞서 싸우는 고귀한 국왕파 영웅같은건 없더란 말입니다. 어쩌다보니 트레빌 대장따라 왕비파가 되어있는 불행한 네 청춘의 삽질기죠.
그러니 엔딩에서 추기경이 달타냥을 너그럽게 보아넘기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맞상대 레벨이 아닌 겝니다. 그리고 어차피 안 도트리슈가 아들 하나 딸랑 낳으면 홱 돌아서서 추기경이랑 같은 노선을 걸을 건데 뭐 따로 으르렁댈 필요나 있나요.(먼산). 삼총사들이 특별히 스페인을 옹호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_-
그래서 삼총사는 걸작입니다. 읽어보면 이 시대의 찌질이 청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거든요. 저도 프리터 노릇하며 근근히 입에 풀칠하면서 이래저래 경제 사정으로 마음고생 심할때 보았는데,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느낌이었냐구요? 아하, 1630년대의 찌질이들이나, 2000년대의 찌질이나 다를 건 없구나.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이하생략)
그래서 이들은 몹시 사랑스럽습니다. 남 얘기 같지가 않거든요. 가난과 고생과 자신들의 찌질함을 낙천적으로 슬슬 넘어가며 지내는 게 참 남의 얘기가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고전은 세월을 초월해 살아남는 게지요(뭔가 핀트가 틀리다)
이전부터 이 관련으로 죽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Dana님의 블로그에서 총사에 대한 얘기를 보고는 흠 남기려 했는데 지금이라도...하고는 남기게 된 겁니다. 근데 말이죠, 그런 헐리우드식의 열혈-지적-바람둥이-먹보 라인도 꽤 캐릭터 균형이 잘 맞고 귀여워요. 포르토스가 좀 불쌍하긴 하지만요(먼산) 이래저래, 뒤사마는 최고의 대중문학가입니다. 정말 멋지다니까요.
읽느라 지루하셨죠, 수고하셨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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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valon의 감자밭 2006/06/03 12:14 x
제목 : 추기경님과 왕비에 대한 잡상
예, 우베 크뢰거씨가 주연한 그 뮤지컬 삼총사 얘기에요. 별건 아닌데, 고기님 블로그의 멋진 포스팅에 덧글에 쓰려니 너무 길어져서 여기 옮겨두는 김에 이것저것 잡설도 더 붙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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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S<3>
역사/고전 관련 |
2006/05/0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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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
여기 한 실패한 건축학도가 있다. 그것도 진짜 안습인 이유로 실패해 버렸다. 그 청년은 정말 어렸을 때부터 건축학도가 되고 싶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너무 엄격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하급 공무원이었고, 자신의 안정적인 삶에 너무 지나치게 만족한 나머지 아들도 그러한 길을 갈 것이라 진실로 의심해 마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 공무원이 된 뒤에야 자신보다 훨씬 어린 부인을 맞아들였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자신이 누리고 있는 안정적인 일상을 물려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뭐 흔한 일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도 공무원인 공무원 아들, 교사인 교사 딸은 정말 흔하다.
다만, 이 아들은 당연히(...라는걸 보면 나도 꽤 비뚤어졌지만) 그런 아버지의 뜻에 전혀 따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럼 이 녀석 꿈이 뭐였느냐, 가수? 배우? 서커스 연기자? 노노, 천만에. 지금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건전한 꿈이었다. 그는 그냥 건축가가 되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다만, 그가 받았던 교육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교육과정과 전혀 달랐다. 당연히 공무원 용이었던 거다 OTL
이전부터 독일 등지의 교육과정을 들었을때 강렬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 아이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정하기 전 휙 분류하는 전통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였다. 지금도 그런가 모르겠는데, 몇년 전까지만 해도 중등교육 교사가 "얘는 멍청해서 김나지움(간단히 말해서 대학진학용 엘리트코스 고교)못가삼" 이러면 걍 끝이었거든. 근데 걔가 머리는 떨어져고 가고 싶어하면 어쩔 건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했다가 실패하는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인생에 있어 엄청난...아니, 이게 왠 국민학교 훈화같은 소리야 -_-
아무튼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드디어 반항할만큼 머리가 큰 우리의 아돌프(...웁스)는 자신이 건축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엄청 좌절했지만 그래도 그림그리는 건 할 수 있으니 화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무려 아빠랑 대판 하고 빈으로 가출해 버린다.
그렇다. 이것은 히틀러의, 안습없이는 볼수없는 삽질기이다. 그를 지나치게 괴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는 사실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불행한 청춘이었을 뿐인 것이다.
이번에 통신 쪽으로 히틀러의 그림이 돈 적 있다. 히틀러는 물론 예술계통의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역시 교육과정도 틀렸을 뿐 아니라 - 그 그림들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는데 - 그림을 잘 그리긴 했지만 딱 예쁘장하니 엽서로 써먹기 좋은 화풍으로 그리고 있었다. 당시 미술? 피카소를 봐라, 모딜리아니를 봐라, 그들의 미술이란 18세가 되어 "아 그림을 그리고 싶어" 라고 해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이고, 미술교육을 받으며 자라다가 자기 세계를 쌓아나가고, 세계를 다르게 보는 눈을 키워 욕을 먹건 말건 자신의 세계를 담아내는 것이 예술가다. 우리의 아돌프는 그러기엔 너무 늦게 시작했고, 기술적인 성숙도도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다.
꿈을 안고 상경하면 뭐 하나, 빈은 예술과 유흥과 타락의 도시였지만 그 곳으로 흘러와 기념용 엽서나 간신히 그려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던 아돌프의 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타락 뿐이었다.
그는 나의 투쟁에서 자신의 당시 처지를 그나마 한껏 부풀려 말하고 있다. 그는 사실상 백수 건달이었던 자신을 일하고 먹고 산 노동자라 소개하며, 자신이 지내던 사실상 비참한 슬럼을 가난한 동네 정도로 포장하고 있는데, 당시 아돌프가 벌었을 수입을 추산해서 살 만한 동네를 뒤져보면 그게 개뻥이라는걸 알 수 있다는게 연구가들이 얘기다. 엽서 그림을 그리면서 일이 있으면 먹고 일이 없으면 굶는 사람, 일용직 노동자, 그 사람이 사는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는 정말 어렵잖게 추측할 수 있다.
나는 안다. 사람들은 가난에 대해 온갖 추상적인 말들을 떠들어대길 즐기며 가난한 이들이 인간적 존엄과 따뜻한 정을 유지하길 원하고 있다. 불행한 부자와 행복한 가난뱅이는 만민에게 사랑받는 주제다.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따스하게 잘 사는걸 보면, 자기가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만족하고 살 수 있거든. 그러나 만일 당신이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보다 좀더 따뜻하고 밀착되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가난을 겪어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가난'이라는 말에서 당신의 월셋집에 세를 내는 것을, 그리고 다음 상의 반찬을 고민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가난을 제대로 겪지 못했다. 가난이라는 것은 - 이것조차도 바닥은 아니지만 - 집주인과의 전투스킬을 나날이 올려가며 매일매일 찾아오는 사채업자와 빚쟁이들과 사투를 벌이는 것을 의미하며, 먹을 것을 사들이기 위해 이웃에 돈을 빌려야 하는데 돌아가며 다 빌려 이젠 그러기도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을 의미한다. 가난해진 가족들 중 왜 집단자살하는 가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진짜로 가난해지면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한다. 적어도 돌려받을 반찬이있다는 확신이 들때 맛있는 반찬을 나눠주는 것이 90% 이상의 인간이므로.
또한 가난이라는 것은, 부자들이라면 호들갑을 떨여 병원으로 달려갈 큰 병에 걸리면 그대로 방치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식으로 하루 하루 죽어가는 가족을 보면서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일손이 줄어 먹을 것을 예전처럼 벌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그 순간이다. 옆집 여자가 자기 딸을 남자들에게 내돌려 그 남자들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냈다는 말을 들을 때,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그 집엔 돈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가난이다.
사실상 슬럼가에서 살아가게 된 아돌프의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넘쳐났다. 사회복지도 없던 시절 아닌가.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될 수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귀처럼 서로를 뜯어먹고 살아가면서 아둥바둥하는 곳에 던져진 꼴이다. 물론 고작해야 중하급 공무원의 자식이었던 히틀러에게 그 처참상을 외면할 정도의 뻔뻔함이나 웃어넘길 정도의 잔인함은 없었다. 그는 자신 주변의 모든 것들에 충격을 받았고, 그 자신의 처지에 비참함을 느꼈으며, 그리고 증오를 쌓았다.
히틀러는 그 뒤 내내 빈을 증오했다. 빈은 그에게 있어 저주받은 도시였고 악마의 수도였다. 아마도 히틀러에게 저주받은 바빌론의 창녀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그는 주저없이 빈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명칭의 변화를 느끼신 분들에게 : 사실상, 히틀러는 빈의 아들이었다. 빈의 가장 어두운 구석이 그를, 그리고 그의 증오를 만든 것이니까. 그래서 오늘의 1차 교훈은 이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눈에 너무 피눈물 내는 사회는 만들지 말아라. 일정 이상 억눌리면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건 그것을 해결하려 들게 되어 있다. 특히 증오를 품는 사람은 잔인한 방식으로, 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일을 해결하려 드는 경향도 함께 가진다.
아무튼 히틀러가 본 빈은 말 그대로 악의 소굴이었다. 그 주변의 사람들은 크게 몇 종류의 인간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피빨리고 있었는데, 이 때의 원한이 그에게 자신의 이후 적들을 지목하게 만들었다. 히틀러는 빈의 무능한 독일(게르만)계 관료들을 증오했으며, 지나치게 자신의 민족을 감싸는 것으로 보이는 슬라브계 관료들을 증오했다. 그는 자신 주변의 슬럼에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돌아다니는 - 그러나 사실상 아름다운 말 뿐 뭐 하나 해놓는게 없는 - 사회주의자들을 증오했으며, 혁명을 외치며 사람들을 꾀려 드는 공산주의자들도 증오했다. 그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빈의 향연에 빠져든 자들 - 게이들, 유흥문화의 향유자들, 재즈 애호가들 - 도 증오했으며, 그리고 이 모두와 함께 유태인을 증오했다.
이러한 히틀러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괴물같은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라. 그가 당신이 하지 못할 생각을 했는가? 한 적 없었던 반응패턴을 보였는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볼 것이다. 한번 위로 올라간 화교는 화교만 챙긴다지?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쓸데없이 그들에게 기회를 준단 말야. 여성부는 여성만 생각해. 남자들에 대해서는 적대할 뿐인 무뇌아 집단이야. 평등한 사회? 말은 좋지만 그래서 사회당이 한게 뭐가 있는데? 게이는 정신병자 변태들이야. 그들이 많아지는건 이 사회가 망해간다는 징조라구.
(어깨 으쓱, 히죽) 사람들은 히틀러에 대해 수많은 전설들을 얘기하기 좋아한다. 아마 그는 22세기에 가장 강렬하게 기억된 20세기의 인물일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간디, 헬렌 켈러와 마더 테레사를 듣고는 교개를 갸웃할 사람들도, "히틀러"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할 것이다. '아 그 학살자요!' 그리고 사람들은 전설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전설도 있다. 히틀러의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히틀러 어머니가 유태인 사채업자에게 몸을 팔았다더라, 그래서 그렇다더라. 히틀러의 새아버지가 유태인이었다더라, 정도는 어쩌다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분명, 인간의 보편적 마음에 있다. 히틀러 밑에는 그의 의견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히틀러"라는 간판 밑의 그들을, 그리고 그들과 히틀러가 공유했던 감정을 잊는다면 역사 속에는 모두를 미치게 만든 괴물 한 마리만 남을 뿐이지만,
그와 우리는 그다지 다르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 같은 인간이거든(웃음)
얘기가 대판 샜는데, 원래 줄기로 돌아오자. 아무튼 우리의 너저분한 엽서화가 군은 그렇게 빈 밑바닥을 굴러다니다가 1차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사실 히틀러에 대해 이건 인정해야 하는데, 그는 전장에서 전혀 겁쟁이가 아니었다. 당시 주변인의 증언을 조합하면, 히틀러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으며 눈에 띄게 말이 없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말을 열렬한 기세로 하곤 했다 한다.(이런 인간들이 일 치기 쉽다. 입다물고 생각하다가 그걸 화르륵 쏟아내는 타입들인지라 -_-) 병영생활은 그럭저럭 성실한 편이었고, 전투에서도 영웅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성실하게 잘 싸운 모양이다. 그러다 훈장도 하나 받았는데, 동료를 구해내서 받은 훈장이니 상당히 명예로운 훈장이긴 하다. 그는 하사로 하사관으로 진급하고, 그래서 히틀러에겐 일생동안 "오스트리아 하사"라는 별명이 붙어다니게 된다.
1차대전은 말 그대로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소모전이었다. 우스꽝스럽게도 당시 열강 중 가장 경쟁적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선 오히려 평화가 유지되었고 사실상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사이에서 전쟁이 난 셈인데, 이에 대한 배경 설명은 1, 2편에서 줄줄 했었으니 조금은 감이 올 것이다. 범 슬라브주의를 우기던 러시아와 범 게르만주의를 우기던 독일계 사이에서 일어난 충돌이 유럽 전체로 퍼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1)촉발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가 자기 나라를 방문하자 빡오른 범 슬라브주의자 청년이 방아쇠를 당긴 거고,
2)거기에 즐을 외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내친 김에 세르비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자,
3)슬라브도 다수 있던 세르비아의 "보호국" 운운하던 러시아 곰팅이가, 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란 맞붙었다간 지는거야 시간 문제, 세르비아를 잃으면 눈독들이고 있던 발칸반도 전체를 잃으니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4) 당연히 동맹으로 묶여 있으면서 범 게르만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던 독일이 으잉? 하고 뛰어들고
5) 일이 이쯤 되자 평소 러시아와는 화기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던 영국과 프랑스도 아무튼 동맹은 동맹이어서(......) 마찬가지로 동맹이라 끼어든 바보 이탈리아랑 같이 뛰어든 것이다. 참고로, 이 때 저 나라들이랑 동맹 맺은 나라들도 무늬상 선전포고는 해 뒀다. (예를 들어 전투 한번 한 적 없는 전투 한번이 고작으로 사상자 1500으로 끝난 일본이라던가 -_- 아쉬운게, 저 때 일본이 독일편 들었으면 한국은 1918~9년 독립되었을 거다 -_- 쩝)
.....그리고 이것이 유럽 전쟁이라고 안 불리고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것은, 저 나라들의 식민지도 다 뛰어들어 버렸거든 -_- 물론 쥔님에게 목줄 끌려서 말이다.(......)
다들 오랜 세월 대전쟁이 없어서 좀 심심하긴 했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이니 뭐니보다도 사람들의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던 전쟁은 끽해야 크림 전쟁이었다. 크림전쟁에 갔다온 여러분의 지인으로는 나이팅게일(빠악!) 아무튼 넘어가서, 셜록 홈즈의 영원한 사랑(빠악)...아니 콤비, 왓슨(이 다녀온 건 2차 아프간 전쟁이다. 민혁님의 지적으로 오류 수정) 을 들 수 있다. 보면 알겠지만 왓슨은 그다지 자신이 겪었던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라던가가 없다. 물론 돌아온 뒤 군인 연금을 탕진하며 좀 방탕하게 살긴 했는데, 왓슨이 방탕해봤자...(풉)
.......넘어가서, 그러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줄줄이 사탕으로 다들 전쟁에뛰어들어 군대도 왕창 보냈는데, 문제는 이게 생각보다 개삽질이었던 데다 무기등의 양상이 이전의 전쟁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는 데 있다. 1차대전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만, 그걸 얘기하려 들었다가는 3편짜리(...가 가능할까는 지금 써 봐야 알겠지만) 시리즈가 아니라 겉핥기만 해도 단행본 나올 정도로 엄청나니 걍 넘어가자, 넘어가.
자자, 중요한건 1차대전의 결과다. 히틀러는 살아남아 귀환병이 되었고(췟), 유럽은 사상 초유의, 오래 전 30년 전쟁의 피해를 능가하는 - ...독일의 경우엔 더 적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일 사람들은 30년전쟁때 너무 많이 죽었거든. - 대전쟁의 폐허를 맞닥뜨리게 된다. 다들 이런건 겪은 일이 없다. 7년간의 전쟁에서 사라진 인적 물적 손실은 이제껏 그들이 겪었던 어떤 전쟁보다도 거대했다. 저기 먼나라 가서 피부 까만 애들 좀 밟아주는 것과는 격이 틀린 전쟁이었다. 대략의 아주 "간략한", 그리고 이 포스팅의 주제와 걸맞는 변화만 적어보겠다.
1. 러시아는 몸도 성찮은게 덩치 크다고 전쟁했다가 개판났다. 혁명이 일어났거든 -_- 그래서 중간에 깨갱 하고 독일과 평화조약을 맞는 바람에 제대로 된 승전국 대접을 받지 못했고, 부동항도 손에 넣지 못했다. 쯧쯧. 아무튼 공산주의 국가 등장(하암)
2. 프랑스와 영국은 순식간에 유럽 최대의 맹주님아로 부상하셨다. 문제는 이쪽도 상처를 깊이 입어서 체면을 구기셨다. 그래서 영국은 무려 남자들 전쟁간 동안 탱크만든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고, 프랑스는 눈에 불을 키고 빚쟁이 모드가 돼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이지메하기 시작했다.
3. 이탈리아는 중간에 슬쩍 열차를 바꿔탔다. 원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기기 힘들 것 같으니까 슬쩍. 그러나 그 대가로 이탈리아는 이권은 하나도 못 챙기고 승전국들에게 경멸어린 시선을 받았을 뿐이었다 -_- 그래서 아예 비뚤어지기로 작심한다.
4. 우크라이나는 독일군과 협력해 정권을 세웠다 러시아 애들에게 개박살(빠악!!!!!!!!!!!!!!!!)......알겠어요 잘못했어요 안그럴게요(훌쩍)...넘어간다 ㅠㅠ <- 공과 사는 여전히 구분되지 않는다.
5. 독일은 개발살났다? 우와아아아앙?...은 농담이고. 독일 제국은 말 그대로 절딴났다(......) 해군 오타쿠 빌헬름 2세는 꼬리를 내리고 사라지고, 모두가 잘 알듯 찢어지게 가난한 경제공황이 모두를 맛가게 만들었다. 그건 쫌있다 자세히 적자.
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말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건 독일도 마찬가지인데,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말 그대로 영토의 거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뿐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황실은 결국 오스트리아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여기에 대해선 요 밑에 자세히 말하겠다(...아무래도 3편으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젠장 -_-)
이전에 독일사를 공부하다가, 1차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잃어버렸던 영토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 기가 막혀 입이 쩍 벌어졌던 적이 있다. 나라도, 나라도 정말 피눈물이 나겠더라. 그렇게나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해진 알자스 로렌 지방이 얄미운 프랑스의 손에 넘어간 것은 물론이고, 설움받던 약소국을 독립시켜 준다면서(.....이쉐이들 한국엔 관심도 없었다) 여기저기 다 찢어버리고...그러고 보니 생각난 건데, 폴란드는 1차대전시 최대 수혜국이다. 이자식들은 자기들은 싸우지도 않은 주제에 영토가 엄청 늘었다! 당연히, 그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영토다! 그렇다고 폴란드가 내내 "설움받는 약소국"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이 놈들 우크라이나 서안 갈리치야를 점령해서 (빠악!!!!!!!!!!!!!!!!!!!!!!!!!!)
...아, 예. 공사는 구분하겠습니다 -_- 걍 이것만 알아두자. 피해자연하는 국가들 중 진짜 피해자는 흔치 않다. 마지막 수업 보면 자기들이 무슨 식민지배를 당하는양 온갖 피눈물 시위는 다 한 프랑스가 사실 최대의 제국주의 국가였고 -_- 마리 스클로도프스카야(또는 마리 퀴리) 전기 덕에 아주 걍 러시아로부터의 압박과 설움을 한몸에 받은 것마냥 구는 폴란드도 우크라이나 등 다른 국가들을 지배하고 산 "제국"이었다. 노동자 농민의 혁명을 일궈낸 러시아? 흥! 네놈들이 죽인 우크라이나 인 수가 2차대전 유태인 사망자보다 많잖아! 그것도 배 단위로! <- 단단히 삐졌다. 게다가 사실은 -_- 우크라이나 정부도 현재 분리독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일부 카자흐를 탄압하고 있다지.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어깨 으쓱)
당시 독일인의 마음이 되어보자(여기서 독일인이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게르만계 전반을 아우른다) 한마디로 열.받.는.다. 열.받.아.서.견.딜.수.가.없.다. 아니 솔직히, 전쟁이라는게 진 놈이 악역이 되는 거 아닌가. 근데 지자마자 사방 팔방에서 영토는 찢어가지, 프랑스는 엄청난 전쟁보상금을 책정해 놓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 갚으라고 악악대면서 공장지대 압수해가지, 어제까지 식구던 녀석(헝가리)은 이제 전쟁에 져서 재정지원 안될 것 같으니까 약삭빠르게 독립선언이나 하고 앉았지, 이전까지 행님요 하던, 슬라브 게르만 짬뽕국가들 다 등돌리고 앉아 나몰라라 하지, 근데 유태인들은 오히려 그 김에 투기를 해서 돈을 벌며 망하지도 않지 <-이거 사실임 -_-
원한이 쌓일만 하다. 여기에 질문 하나. 절망과 원한과 될대로 돼라와 아예 모든걸 포기하고 맛가버린 사람들을 경멸하는 소시민적인 태도에 좁은 세계관과 가난이 얽히면?
예, 여러분, 드디어 나치스의 탄생입니다!
사실 나치스같은 단체가 독일 하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들 나치스나 파쇼만 생각하는데, 민족주의라던가 국가제일주의를 외치며 샤쓰입고 나온 놈들의 수는 매우 많다. 영국에도 나치가 있었고 프랑스에도 불의 십자가(크루아 드 푸아)라는 단체가 비슷한 짓을 했다. 무려 미국에도 은색셔츠단인가가 있었다(....누가 양키 아니랄까봐 센스하곤 정말 -_-) 그리고 전통이 KKK가 있지 않은가.
다 달라 보여도 비슷비슷한 놈들이다. "우리와 다른 자들" "순수하지 못한 자들" "국가에 어긋나는 자들"을 몰아내고, 기치를 세우자는게 개들 주장이다. 저 중 프랑스는 죽어라고 불의 십자가가 전체주의 단체가 아니라고 우기고 있지만, 할거 다 했다 -_- 사실 프랑스 애들이 민감하게 구는 이유는, 저 단체 소년단에 미떼랑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지만, 마, 프랑스놈들의 올바른 역사에 대한 인식은 결국 저 불의 십자가에 대해 저거 전체주의 집단이었다고 글을 쓴 역사가를 법정에 기소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본다 -_-
뭘 우겼냐고? 간단하다. 사실 나치스를 놓고 불편해하는 민족주의의 심정은 이해는 간다(싱긋)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 나치스를 인종주의에 놓고, 그것을 민족주의와 자꾸 분리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같은종이의 앞뒷면"이더라. 나치스 얘기는 한마디로 아리안족(이라는 가상의 민족으로서, 게르만족의 분파라 우긴다)은 조낸 우월하고 잘빠지고 새끈하고 뛰어난데, 그런 아리안 인이 여기저기 섞여서 혼탁해졌으니까 피를 순수하게 지켜내며 아이를 씀풍씀풍 낳아 수를 불리고, 그 아이들이 먹고 살 땅을 만들어주기위해 열등한 애들 땅좀 뺏아서 걔들 부리고 잘사는 한가로운 얘기다.(끄덕끄덕)
당연히 이런 아리안족은 독일과(씨익) 오스트리아, 그리고 북유럽 등지에 퍼져있고, 그 중 독일이 가장 아리안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으셨던데다 잘나셨댄다. 근데 지금은 타락하셨다나. 그러니까 슬라브 애들과 같이살거나 유태인을 존중할 생각 같은걸 하면 바보라는 거다.
왜냐하면 걔들은 우리 아리안족에게 나쁜 짓이나 하고 앉아있는 놈들이고, 하등 상대할 가치가 없는 애들이거든. 태생적으로(풉) 질이 낮아서 걔들과 피를 섞는건 조낸 범죄다. 고저 민족의 혈통은 순수해야 하는 것이당.
그러므로 각종 열성인자들을 차출해내어 없애야 한다. 아리안의 피를 이어받은 건강한 게르만 여자는 적어도 아이를 넷 이상은 낳아야 가하다. 안 그러면 돼지새끼마냥 줄줄 애를 싸대는 슬라브를 당해낼 수 없다. 그렇게 수를 퍼트려서, 순수한 게르만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동유럽 등지에 퍼져 있는 우리의 형제들, 그 곳에 살고 있는 게르만족은 빨리 우리가 새로이 한 강대한 모국의 품에 안아주어야 한다. 물론 슬라브인이야 걸맞게 부려먹고 말이지.
그러면 열성인자에 들어가는 유태인이나 슬라브인 라틴들을 좀 치우면, 게르만은 다 좋은가? 아니다. 물론 타락한 게르만이라는 것도 있다. 동성연애자, 재즈를 즐기는 자들, 유태인과 협력하고 피를 섞는 것을 기꺼워하는 자들은 매국노이며, 동족을 팔아넘기는 자들이며, 또는 더러운 자들이다. 정신병자와 기형아, 유전병이 있는 자들도 사회에서 소거되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같지 않은가? 모르겠다면 용어들이 좀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다시 찬찬히 읽어봐라. 개인적으로 나는 민족주의가 한발 잘못 딛으면 딱 저꼴 난다고 우기는 바이다.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의 독자성"을 뿌리에 두고 있으며, 그 독자성을 우월성의 근거로 보는것을 당연히 여긴다. 우월? 개뿔이(풉).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고, 기질은 다를지언정 누구나 나름의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 능력이란 사람따라 모습은 달라도 나름의 꽃을 피운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민족이 아무리 우월하다고 콧대세워 봐야 우리가 안 좋아하는 애들에게서도 위인이 나온다. (본인의 예를 들자면, 프랑스인을 싫어하지만 위고와 뒤마와 졸라와 리슐리외 등 몇몇은 분명 존경하징낳을 수 없다. 중국은 예로 들 것도 없다.) 그런 경우 그것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말살하기를 외치기 쉬워지는 것이 민족주의다. 한민족의 것들을 사랑하려면 외국의 것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정말로 접해본 적 없는가? 외국어간판이 그렇게 추한가? 사대주의는 멀리해야겠지만, 사대주의라는 말부터가 한자인건 어쩔 건데? 한자는 괜찮고 영어는 안돼? 그건또 어느나라 법이야? 신토불이? 고추가 우리나라 거였나? 들어온지 500년 되는건 괜찮고 50년 되는건 안된다는건 어디 법인데?
뭐 이런 거다. 지금도 국민의 소리 네이버에 가 봐라. 장애인이 결혼했다던가 기형아를 낳앗다던가 하는 뉴스 밑의 댓글을 읽으면, 우리나라에서 진화론 교육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실히 체감하게 될 것이다.
당시 독일인들도 그닥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오스트리아 하사가 외친 것은 결국 그 자신의 기괴한 논리가 아니었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를 한 거다. 아마 첫 연재분에서인가 말했을 것이다. 전범을 일본 천황 하나로 잡는 것은 반대라고. 양식있고 예의바른 일본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마찬가지다.
당시 독일인들에게 히틀러의 주장은 사실 히틀러 하나의 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아들이며 빈의 아들이었고, 모든 불합리한 악의로 세상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가난한 독일인의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말하는 것에 당연히, 역사를 내다볼 일 없이 힙겹게 삶은 이어가는 것에 골몰하던 하층민들이 몰려들었다. 그 하층민의 상당수는 전쟁 이전에는 중산층, 혹은 안정적인 서민이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식탁에 크림치즈 종지와 검은 호밀빵 한 덩어리, 맛 좋은 맥주 한잔과 소시지 두세개가 놓여있으면 그만인 사람들이었다는 거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나오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에서, 그리고 빈에서 나왔다.
그것은 몹시 어울리며, 어찌 생각하면 순차적으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다양성에 대한 적의는 다양성을 접할 수 있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법이니까.
히틀러는 빈의 타락을 보았고, 밑바닥을 보았다. 그는 증오를 쌓았다. 공산주의/사회주의의 역사를 봐라. 부잣집 아들들이 하는 사회주의는 말 그대로 이상주의로 끝난다. 적어도 사회복지를 조금 늘려주는 정도일까? 적어도 그들의 사상과 글에서 피냄새는 안 난다. 가장 격렬한 사상을 발표한 맑스는 말 그대로 룸펜(누더기), 비참하게 살던 사람이었다. 자기 자식이 죽었어도 아이를 넣을 관을 살 수 없었고 장례비용이 없어 시신이 3일간 방치되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그는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 그의 주장을 있는 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착취당해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 극빈자들이 붙들었을 때 벌어진 일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증오를 외쳤다. 그리고 피로 수확을 거두었다.
독일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증오로 뭉쳤다. 처음에는 하층민이, 그리고 몇년 뒤에는 그 하층민과 히틀러를 한묶음으로 싸서 비웃던 상류층과 지식인들이 물들었다. 정말이다. 제3제국의 흥망을 쓴 샤일러는 그 과정이 대단히 공포스럽게 느껴졌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영국 특파원인 자신과 친근한 사람들, 그 사회의 지식인들이 처음엔 히틀러의 얘기를 말도 안되는 어린애같은 얘기라고 비웃다가, 몇년 뒤엔 다들 열성적으로 아리아인의 우등함과 유태인의 해악을 떠들고 있더라는 것이다. 괴벨스가 그랬다지, 반복이 최고라고. 우리학교 학주도 그러더라. 반복이 최고라고(웃음)
그렇다, 그것이 저 건실하고 선량한 독일인들을 미치게 만든 힘이다. 히틀러 하나가 미친놈이라서가 아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무능해서가 아니다(세계사 교과서엔 맨날 무능하다고 나오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은 현재 역사상 가장 정치적으로 올바른 헌법으로 꼽힐 거다. 내가 법학전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들었느니 -_-; )
그들은 반복적으로 스스로의 우월함과 상대의 저열함을 교육받았다. 그리고 저열한 놈들이 - 그 저열한 놈들은 사실 그 사회에서 꽤 의리없는 짓을 많이 저질렀다 - 당신들 머리 위에 앉아있는 것은 이 사회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니, 사회를 뒤집어버리면 된다고 배웠다. 이것은 공산주의나 국가주의나 똑같은 길을 걸었는데, 결국 국민들은 불합리한 증오와 함께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고 독재자에게 충성을 바친 것이다.
물론 유태인들은 정말 내가 봐도 니들 욕먹는거 당연해 하고 혀찰 짓을 해댔다. 물론 그 유태인들이 유럽 역사 내내 왕따였던 건 사실이지만, 폭력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유태인들의 선택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전쟁이후 경제적으로 붕괴되었을 때, 유태인 자본가들은 적대적인 M&A로 세를 불려 거대해진 부실기업을 국가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돈만 들고 튀었다. 독일에서 법조계와 재정계에 거대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유태인들은 일자리 창출과 복지보다는 자신의 돈을 더 불리는데 급급했다. 우크라이나의 유태인들은(이건 관련 얘기다! 우크라이나는 독일군이 왔을때 독일보다 더 열심히 학살했단 말이다! 거기서 죽은 유태인이 90만이라고!) 더했다. 짜식들은 소련이 우크라이나 인들을 무책임하게 굶겨죽이던 때, 자기자식을 잡아먹을 수 없어 옆집 애와 교환해 먹던 우크라이나인들 앞에서 (볼셰비키 혹은 지식인이었던 덕에) 빵과 우유를 배급받아 먹었고, 폴란드 점령시엔 폴란드 편에, 러시아 점령시엔 러시아편에 붙어 이득을 챙겼다. 한국같았으면 저런 애들은 애저녁에 세상 한번 뒤집렸을때 척살되었겠지(쓴웃음). 안 그런가?
그러나, 그것이 그들을 학살할 이유가 되지 않는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인권이 있고 나름의 사정이 있다. 인도주의, 객관성, 관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는가? 용서는 투쟁보다 어렵고 납득은 분노보다 어렵다. 당장 피눈물이 나고 입술이 깨물려도 한 사람의 인간인 이상 해야 하는 것이 인권 존중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증오가 쉽고, 사람들은 쉽게 그 증오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떳떳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다고.
자아, 이제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로 들어가 마지막을 장식해 보자(아싸, 3편으로 끝이다 ;ㅂ; )
히틀러의 팬이 독일에만 있었을 리 없다. 오스트리아에도 무척 많았다. 특히 슬라브인들과 어깨 부대껴가며 살았어야 했으니 그 호응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2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는 아예 총성 한방 없이 독일과 통합되었다. (그리고 제3제국이 나타난다. 신성로마제국 -> 독일제국 -> 제3제국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이 어디서 요상하게 꼬여 있는지 아젠 아시리라 믿는다) 물론 상당수의 오스트리아인들은 그것을 불길하고 기분나쁜 일로 생각했지만, 그들 뒤에는 상당히 많은 나치가, 혹은 예비 나치가 숨어있었음은 물론이다 -ㅂ-
이러한 오스트리아 나치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남았다. 독일과 달리, 오스트리아는 자정작용을 거칠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은 2차대전에 있어 빼도박도 못하게 가해자 국가, 악당, 절대악이었고, 그렇기때문에 자신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겨우 콩깍지를 뗀 독일인들은 스스로가 저질렀던 악행에 거의 패닉을 일으키며 자아붕괴 과정을 거쳤다(......)
물론 모든 나치 당원 자체를 처벌했다간 사회의 70%가 날아갈 판이었고, 그러므로 나치 "당언"들 자체는 대부분 살아남고 수괴들이 처치되었지만, 그래서 서독은 내내 동독애들한테 "나치 청산이 안된 파쇼정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지만(어째 남 얘기가 아닌게.;; ) 적어도 "우린 조낸 나쁜 쉐이들이었어 흑흑"이라는 인식은 확실히 있었다.
"우리가 나쁜 게 아니야 히틀러나 미친놈 납흔놈이었어 ;ㅁ;" 시기를 지난후 이제 와서는 대부분 "응 우리가 미쳤었어 흑흑 ㅠㅠ"의 분위기인 바, 적어도 독일 나치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제대로 되어 있다는 얘기다. 네오나치 등이 극성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네오나치들의 주 지역이 이른바 "청산이 잘 되었던" 동독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긴 한데, 그거 얘기하려면 논문이 하나 나오니까 넘어가자.(흥미 있는 분들에게 귀띔하자면, 실제 그걸 다룬 논문이 있으니 읽어보시면 좋을 거다. 한국어 논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독일인에게 "이 나치새끼"라고 하면 최악의 욕인 것이다. 히틀러를 가리키던 "퓌러"라는 말은 원래 영어로는 "리더"에 해당하는 말인데, 원래는 학급 반장부터 국가 지도자에게까지 다양하게 쓰이던 이 단어는 이제 2차대전물에서밖에 들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러시아에서 만든 2차대전 영화에서조차도 히틀러를 "퓌러"라고 부르더라. 러시아어의 독특한 어감 사이에 "퓌러"가 들어가니 어찌나 신기하던지(먼산)
아우 또 샐뻔했다. 아무튼 문제는 그거다. 오스트리아는 이러한 자정작용을 그다지 거치지 못했다.(......) 무슨얘기인고 하니, 독일에서는 나치정화작용을 본국이다 보니 좀 깨끗이 한 편인데 오스트리아는 당사국이 아니다보니, 사실 같은 언어를 쓰는 종갓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치도 사실 꽤 많았고 독일을 지지하는 인간들도 꽤 많았음에도 사회적인 정리는 제대로 되지 않았던 데다, 동독과 마찬가지로 "우리일 아니삼" 하다 보니 인식도 상대적으로 희박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90년대말 오스트리아에서는 오스트리아 잔존 나치 문제를 다룬 연극이 상연되었는데, 그에 대한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나라로 치면, 거의 요덕수용소 뮤지컬을 대하는 좌파지식인같은 반응이었다. 도대체 오래된 문제를 왜 이제 와서 새삼 꺼내 불편하게 만드냐구 불평하거나 불쾌감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말한다면(히죽)......
뮤지컬 엘리자베트에 왜 굳이 황후의 일생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우유"나 "Hass"(증오)를 작사했는지, 쿤체씨의 기분을 좀 알 것 같다는 얘기였다. (엎어진 사람들을 심드렁한 눈으로 쳐다본다. 나 빠순이인거 원래 알았잖수?)
우유는 물론 역사적인 근거가 없는 얘기다. 나도 처음엔 의아했다. 그러나 그 뒤 Hass의 번역과 장면을 보면서 헉 하고 느껴지더라. 그렇다, 쿤체씨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합스부르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합스부르크 말기에 불거지기 시작하는 민족주의와, 그것을 제대로 갈라내로 판단해낼 능력따위 없는, 피해의식에 찌든 증오에 찬 민중과 뒤얽히게 된 것이 사실상 나치문제와 연결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은 거의 틀림없이 쿤체씨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운동권 청년이었겠지(.......)
이해가 간다. 엘리자베트와 직접 연관이 없고 맥락이 없어 보여도, 이것은 유혹이다. 정말 강력한 유혹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소름끼치는 경각을 안겨주고 싶다는 것은, 나는 극을 만들거나 음악을 쓰진 않지만 분명 알 수 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유혹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관객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가! 가면을 쓴 사람들의 행군과 외침으로, 저 한 장면으로 저렇게 강렬하게 일깨워줄 수 있다니, 엘리자베트가 명작은 명작이다(히죽)
아무튼, 이로서 "대강의" 하고 싶은 말은 한 셈이다. 사실은 헝가리에 대한 얘기라던가 동유럽에 대한 얘기도 좀더 하고 싶었지만, 일단 HASS!라는 제목에는 이게 어울린다. 우크라이나의 역사에 대해서는 좀더 자료가 모이면 쓸 생각이다. 아니면 아예 개괄로 지난번 합스부르크 훑듯 훑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합스부르크의 역사는 결혼으로 씌어졌지만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피로 씌어졌거든. 그것도 "학살당한 자들"의 피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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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손에서 힘빠져 -_- 너무 긴 글을 써서 그런지 좀 지친다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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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S! <2>
역사/고전 관련 |
2006/05/0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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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뒤적) 전쟁 난 데까지 얘기했던 것 같다. 그럼 얘기를 좀 다른 쪽으로 돌려보겠다. 지난번에는 그렇게나 수업시간에 줄줄 외워야 했던(...) 범 게르만 주의와 범 슬라브 주의가 왜 충돌했는지, 그래서 당시 대강 그쪽 감성이 어땠는지에 대해 얘기한 것 같다. 간단히 요약하면, 러시아 애들과 독일 애들은 식민지를 가질 능력이 별로 없었고, 그러다 보니 하는 짓이라는게 자기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서 삽질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을 두고 슬라브니 게르만이니 하면서 끌어들이려고 했으며, 그 와중에서 서로 정말 사이가 나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황태자님이 슬라브인 청년에게 암살되면서 둘이 머리채잡고 싸우기 시작한 거다.
이번 편에서는 그것을 좀더 다각적으로 보기 위해 진짜 생뚱맞고 횡설수설한 설명을 하겠다.
less..
다들 이때 독일과 러시아엔 주목하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헷갈리거든. 그리고 다들 까먹기 쉬운 사실은, 히틀러는 독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인이며, 그의 별명은 죽을 때까지 "그 빌어먹을 오스트리아 하사놈" 이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인들도 나치 문제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독일 애들보다 더 할 말이 없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나중에 얘기할 리스트가 길어지는군.....)
독일 애들이 2차대전까지 일으키는 바람에 사람들이 독일만 독일인 지 아는데, 사실 지난번에 얘기했듯 독일 제국이라는 것부터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제끼고 지들 멋대로 통일해 버린 거라, 사실상 오스트리아 사람들로서는 꽤 빠직한 사건이었다. 근데 걔들이 왜 빠직하는 건지는 역사를 총체적으로 봐야 나오거든.
신성로마제국이란, 여기서 다 설명하자면 너무 귀찮아서 짜증날 정도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칭호였다. 딴에 정통성은 샤를마뉴(카를 대제, 카롤루스 대제)에게 두고 있긴 한데, 아무튼 요약하면
1)이놈 저놈 이나라 저나라 이왕조 저왕조 서로 패스하며 갖고 있다가
2)황제 칭호를 쓰던 왕조가 끊기면서 당연히 대박으로 패싸움 벌어진 뒤,
3)강력한 제후간의 선거로 현재의 독일+오스트리아+체코나 폴란드 등지의 부분들이라던가 이런저런 넓은 영토의 제후들을 관리할 사람을 뽑는 형태로 정리되기에 이르른 '나라' 다.
그러니까, 이것을 '나라'라고 부르면 요즘 타입의 강력한 단일정부밑의 중앙체제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어깨들 모여있는 데서 반장선거하는거랑 별로 다를 건 없었고, 그 반장 말을 애들이 잘 듣고 싶어하지 않은 것도 별로 다를 건 없었다.(......) 말하자면 왕조시대(반장을 일진회 짱이 했음) 이후 대공위 시대(반장 자리 비었음) 뒤 드디어 반장이 선거에 의해 뽑히는 시대가 왔다는 거다. 돈 많거나 공부 잘하거나 싸움을 잘하는(응?)애들로 후보가 좁혀지는건 당연하다. 그래서 나중에가면 선거후보들도 대략 정리돼서, 비텔스바흐, 룩셈부르크, 합스부르크 가문중에서 주로 뽑히게 된다.
자아, 그러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힘이 점점 세어진다. 엘리자베트 중간에 보면 "다른 나라는 전쟁할지나, 행복한 오스트리아는 결혼할지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 합스부르크가의 결혼정책을 이르는 말이다. 특히 이 결혼 정책을 제일 잘 활용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은 막시밀리안 1세인데, 본인부터가 유럽에서 제일 부자 나라에 들어가던 부르고뉴의 (당연히 외동딸인) 마리와 결혼했고, 그녀가 젊어 죽은 뒤에는 스포르차 가문의 딸과 결혼했으며, 금슬 좋았던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씀풍 씀풍 낳았던 아이들은 죄다 어느나라 공주 왕자들이랑 결혼했다. 리스트 댑따 화려하다. 사실은 그래서 우리가 합스부르크가 어떻게 제국을 건설했다는 잘 모르는 거다. 역사책에서는 전쟁으로 건설된 제국에 대해서는 한 장을 할애해 주지만, 결혼으로 건설된 제국에 대해서는 한줄로 요약하는 법이거든. 난 후자가 더 좋은데 말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아마도 기억하는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스페인 왕국은 까스띠야와 아라곤의 통합으로 첫발을 딛었으며, 까스띠야 여왕인 이사벨라와 아라곤 왕인 페르디난트의 결혼이 그 기원이다. 그런데 이 두 부부의 무남독녀 외동딸 후안나에 대해서는 알고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간단히 말해서, 후안나는 막시밀리안의 아들인 미남왕 필리프에게 시집갔다. 이 얼마나 쌈박한가. 그래서 결론만 말하자면, 막시밀리안의 손주인 카를5세는 전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는 군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부 일처제의 나라에서는 왕손이 끊어질 위험이 높은 대신, 이렇듯 잘만하면 대박을 건질 수 있다는 로또의 산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자, 이렇게 살아있는 로또가 된 카를 5세는 19세의 나이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는데, 이 얘기는 걔가 프랑스를 뺀 사실상 유럽 본토의 주인이 된다는 거였다. 이 때의 신성로마제국에는 현재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포함되어 있었을 뿐더러, 얘는 스페인 공주였던 엄마 덕에 이미 스페인 왕이었으니까. (스페인 이름은 카롤루스 1세다) 물론 그 뒤의 스페인 왕통은 카를 5세의 자손들로 채워지는데, 바로 이 살아있는 로또의 아들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만든 펠리페 2세이며, 그 아들인가가 이전에 설명한 안 도트리슈의 아빠인 펠리페 3세로서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폰 합스부르크(...)와 결혼했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 그리 리슐리외가 목숨걸고 합스부르크 대항전을 펼쳤는지 말이다.
이 로또집안의 재미있는 외견 특징으로는 "말이 힘들 정도의" 긴 주걱턱이 있다. 안 도트리슈도 보면 약간 턱이 길다.
아무튼 카를 5세 이후 합스부르크는 스페인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그리고 각 동유럽의 방계가로 나뉘게 된다. 아무튼 한가지만은 확실히 인지될 것이다. 이쯤되면 합스부르크 가문 외의 사람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는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이후,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연속 2타로 2대에 걸쳐 딸만 낳으면서, 반대 연속 2타로 2대에 걸쳐 그 집안 딸래미들과 결혼해 피를 섞은 프랑스 부르봉가 출신의 왕을 맞아들이게 된다. 단, 다른 나라들에게 졸랭 깨진 "전쟁에는 무능하기 이를 바 없는" 루이 14세는 스페인 왕위에 앉은 자기 핏줄에게 결코 프랑스 왕위를 물려줄 수 없었고, 그래서 두 나라는 다른 역사를 지니게 된다.(여기서 다시한번 결혼의 묘미를 깨닫는다. 끄덕끄덕) 그리고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위스 등의 나라들은 죄다 독립해 버린다. 빌헬름 텔이 아들 머리 위의 사과에 활을 쏘아야 했던게 바로 합스부르크 지배시의 일이다.
역사는 흐른다. 다른 지역의 합스부르크는 귀족가로 자리잡거나 왕통에서 사라져갔지만,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는 계속 줄기차게 혼인을 하고 아이들을 줄줄 낳아 다시 유럽의 왕실들과 결혼시키면서 줄기차게 신성로마제국 황제위를 이어갔다. 합스부르크 가의 결혼 중 여러분이 역사책에서 본 것만 조금씩 들어보자면, 루이 14세 자신도 합스부르크 가의 스페인 공주 마리 테레즈와 결혼했고, 15세는 무려 역시 합스부르크 가인 스페인공주와 약혼했다가 파혼했던 경력이 있으며 - 정작 왕비는 폴란드 공주였는데, 일생동안 귀족들에게 비웃음거리에 경멸당했다고 한다. 하긴 대대로 합스부르크 가 공주랑만 혼인하다 갑자기 동유럽의 "비교적"작은 나라 공주가 나오니까 황당하긴 했겠지만 말이지 -_-+ - 루이 16세는 오스트리아 공주인 마리 앙뜨와네뜨와 결혼했다.(......) 마리 앙뜨와네뜨(마리아 안토니아)는 동시에 신성로마제국의 황녀이기도했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는 바로 "카이저린 운트 쾨니긴" 즉, 신성로마제국 유일의 사실상 여황제이며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이며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여왕이기도 한 마리아 테레지아였다.
자아, 이 마리아 테레지아는 신성로마제국의 여황제로서 인정받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견뎌야만 했다. 왜냐고? 상속법에 황위는 여자한테는 못 물려주게 되어 있었거든. 문제는 저 위에 든 나라들 중 다른 나라에는 다 여왕이 있을 수 있는데 유독 신성로마제국 계승법은 살뤼끄, "살루카"법이라는 프랑크식 대통법을 따랐다는데 있다.(사실 저 법은 가짜다 -_-; 프랑크 왕국을 이끌었다는 살뤼 족의 진짜 계승법과는 연관이 없는데, 공주들을 시집보내다 보니 불안해진 나라에서 여성의 계승권을 박탈해 계승문제를 해결한 것 뿐이다.) 당연히 합스부르크의 오래오래오래오래된 독점을 못마땅해 하던 각종 나라들이 딴지를 걸고 싶어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무럭무럭 자라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대왕)가 정면 딴지를 건 거다.
프로이센, 혹은 프러시아. 바로 현재 독일의 조상님 되시는 나라다. 원래 정말 별볼일 없는, 신성로마제국 소속의(이 나라가 얼마나 널럴한 구조인지는 분명 설명했을 거다) 쪼꼬만 두 공국이 합쳐 나라를 만든 거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걸 한마디로 "삽질"이라고 부르며 비웃었는데, 무려 그 두 공국은 서로 영토가 닿아 있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와 전라도가 통합하겠다고 나선 꼴이라는 거다. 얼마나 황당한가.
아무튼 이 쬐깐한 나라는,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딴지를 걸 때까지 단 세명의 왕을 두었을 뿐이었다.
(1) 첫 왕인 프리드리히 1세 - 자손들이 하도 화려해서 임팩트가 없다.
(2) 그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 군사 오타쿠 -_- 애기때부터 아들한테 군복을 입혀 병사를 사열시키곤 한 데다, 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루트와 문학을 사랑하며 남자 애인을 사귀는 준재로(...) 자라나자, 아들의 남자 애인을 눈앞에서 총살하는 등, 친구들을 죄다 죽여버리고 아들녀석은 감옥에 가둔걸로 유명하다. 어쨌건 프로이센의 군국주의적 성향을 확실히 잡은 인간이다.
(3) 프리드리히 2세 - 교과서에 나오는 바로 그 프리드리히 대왕 - 문약한 왕이 될 거라고 다들 믿었건만, 오히려 아빠보다 더 무서웠던 놈. 아빠가 애인을 죽이자 부인에게서 계승자를 씀풍 낳은 뒤 애도 안 낳고 자기 밑의 장군을 애인삼아 즐거운 인생을 보낸 듯 하다. 상수시 궁전은 이 사람이 베르사이유를 벤치마킹한 결과다.
이 프리드리히 대왕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여황제를 하겠다고 나서자 잽싸게 딴지를 걸어 2차에 걸친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한때 언제건 끝장나면 자살하기 위해 로켓을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궁지에 몰렸지만, 결과적으로는 마리아 테레지아 남편(...)의 황위 계승을 인정하는 대신 상당히 알짜배기 영토를 얻어내게 된다. 그리고 슬슬 유럽이 혁명의 불길에 휩싸이면서, 다시 역사의 판도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왕의 목이 댕강 날아가고 어쩌고 저쩌고는 다 아는 얘기니까 넘기자, 문제는 이거 1편에서 말했든 나폴레옹이다. 그 코르시카산 깡패는 요즘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시칠리아산 깡패보다는 규모가 컸지만 별반 다르지 않는 짓들을 했었는데,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때 오스트리아는 꼼짝도 못 하고 프랑스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이다.(영화 그림형제를 보면 그게 댑따 아프게 와닿을 것이다. 내내 프랑스 억양으로 말을 해 대는 영국배우를 봐야 하다니 -_-; ) 자, 깡패가 세를 얻었으니 마누라부터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_- 나폴레옹의 첫째 마누라인 조세핀은 꽤 유명한데, 그 아저씨 둘째 마누라는 바로 합스부르크가의 공주인 루이제였다. 문화의 도시 빈에 닭내나는 프랑스 애들이 바게뜨를 들고 몰려든 셈인데, 루이즈는 나폴레옹을 대단히 싫어했다고 한다 -_- 평소엔 말도 잘 안 했다나. 반면 나폴레옹은 루이즈를 댑따 좋아했다고 하며, 그러한 점 때문에도 난 나폴레옹이 싫다.
바로 이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후, 멋대로 심성로마제국 휘하의 영방국가들을 빼내 라인란트 연방을 만들어놓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프란츠 2세는 스스로 황위를 내놓아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1세"가 된다. 그렇다, 천년제국을 말아먹은 건 바로 코르시카산 깡패였던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은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제국 황제가 그나마 갖고 있던 지배력은 더더욱 약화되는 것이다.
자, 역사는 흐른다. 조강지처 내쫒고 잘되는 놈 없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나폴레옹은 망한다. 그런데 누구한테 망했는지 생각해 보자. 바로 프로이센과 영국이다. 그리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은 진가를 발휘한다. 나폴레옹의 예측을 뛰어넘는 진군 속도로 프랑스군의 허를 찔러 나폴레옹 제국을 끝장내 버린 것이다. 당빠 루이제는 잽싸게 나폴레옹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만, 아무튼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합스부르크는 나폴레옹을 막지 못했고, 신성로마제국 - 아니, 오스트리아 황제는 한게 없다. 독일 제국(諸國)의 해방은 오히려 프로이센이 가져왔다. 어중간하게 중립으로 발 빼고 요리조리 회피하다 들어먹은 거긴 하지만 아무튼 말이다.
역시 역사 교과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빈 회의를 기억할 것이다. 나폴레옹이 유배된 뒤, 당시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빈에서 벌어졌던 "나폴레옹의 잔재를 쓸어버리자"가 주제였던 회의였다.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동이 되어 벌어졌고 별 소득 없이 끝났는데, 이 빈 체제 당시 해체된 신성로마제국을 대신해 "독일 동맹"이 출범한다. 이 동맹은 대단히 느슨한 모임이었고, 하던 가락이 있으니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주축이랄 수 있었는데, 그 뒤는 그다지 자세히 얘기할 것까지 없다. 오스트리아는 점점 몰락했다. 프로이센은 점차 강해졌다. 심지어 그때까지 간신히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던 헝가리도 민족주의의(웃음) 힘을 받아 독립하고 싶다고 찡얼대는 형편이었고, 오스트리아는 결국 헝가리 귀족과의 협상 결과로 국호를 오스트리아-헝가리로 바꾸며 다른 모습을 취하게 된다.
한편 프로이센은 점차 오스트리아와 거리가 먼 북쪽 영방국가들의 경제권을 자국 중심으로 바꾸가면서 강대해진다. 1850년 이후에는 아예 경제조차 오스트리아 제국보다 프로이센이 더 중심이 되는데, 이쯤 되면 슬슬 독일 통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 중심이 더이상 오스트리아가 아닌, 프로이센이 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게 된다.
독일 통일에 대한 논의 주의로는 대독일주의와 소독일주의가 있었다. 간단히 말해 프로이센이 중심이되는건 기정사실이고(...) 오스트리아 제국을 통일에 끼워주느나 제끼느냐 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자, 범 게르만 주의로 본다면 들어갈만 하다. (...라는 말부터가 오스트리아 사람들로서는 버럭 할 문제다. 아니 지금 종갓집이 어딘데 감히 방계가 말이지..) 그러나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기타 독일의 영방국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정도로 "혼합"되어 있다.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러시아와 나눠먹은 폴란드 일부+기타등등 소국들로 인종범벅이 되어 있었던데다, 이제껏 죽어라 타자쳐 놓은 것을 보면 짐작가겠지만 역사 내내 여기저기랑 얽혀서 아무튼 "독일 민족"이라는 걸 주장하는 애들이 보기엔 또 짬뽕도 그런 짬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독일 제국의 성립 당시 조낸 왕따를 당하게 된다.
.....고백하는데, 지금 바로 위의 저 문장 하나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OTL
안 그러면 피상적으로 "독일 제국에서 오스트리아가 왕따래, 근데 서로 다른 나라잖아, 왕따라니?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또 뭐야? 신성로마제국? 그게 1차대전이랑 무슨 상관? 근데 왜 2차대전때 오스트리아는 독일이랑 전쟁도 안 하고 통합된 거야?" 등등의 질문들이 쏟아질게 뻔하지 않은가 -_-
의미를 따져봐라. 이건 엄청난 거다 사실은 -_-; 북독일 연맹에서 독일 제국으로 이어진 "독일"과 신성로마제국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이어진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사실 이런 식으로 분리되어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둘이 같은 "독일어"를 쓰고 "독일 문화권"이라고 불리는게 괜한게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또한, 슬라브인이나 마자르인이 몹시 혼재되어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을 버리고 가면서부터, "범 게르만주의"는 "독일 민족주의"로서 다양한 민족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순수성"의 사상을 뿌려대게 되며, 이것이 바로...
한 오스트리아 출신 하사관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솔직히 회사에서 이런거 하는 것도 제정신은 아니라서 -_-; 다음편은 아마 발칸 반도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몰락과 히틀러, 그리고 그 뒤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얘기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마지막편이군.
---------------------------<계속>
덧. 질문은 환영이다. 딴지 말고 질문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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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valon의 감자밭 2006/05/04 14:38 x
제목 : HASS!
한때 독일사를 하려고 했었다. 내가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가 독일어였거나, 전공 와중에서 조금만 더 독일어 수업을 했거나, 우리 학교 독일사 담당 교수님이 조금만 더 나와 맞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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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S! <1>
역사/고전 관련 |
2006/05/0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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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독일사를 하려고 했었다. 내가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가 독일어였거나, 전공 와중에서 조금만 더 독일어 수업을 했거나, 우리 학교 독일사 담당 교수님이 조금만 더 나와 맞았더라면 난 지금쯤 영락한 미국사학도가 아니라 영락한 독일사학도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집에서 돈 떨어지는 타이밍이야 마찬가지였을 테니) 독일-영국-미국은 늘 내가 관심권에 두던 국가들이었고, 이중 독일은 어렸을 때부터 2차대전 영화 등을 적극적으로 접하면서 키운 호기심이 주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나의 투쟁이 출간되었을 때, 보자마자 얼른 집어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히틀러 평전에는 의외로 전공자가 제대로 쓴 것은 드물고, 관련 번역서적도 몇 권 정도다. 비전공자에게 한국어로 된 서적 중 추천할 수 있는 것으로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 샤일러의 제3제국의 흥망, 그리고 히틀러의 여인들, 정도가 있다. 미안하지만, 이 외에는 지나치게 군사면에 치중하고 있거나 히틀러를 오히려 우상시하고 있거나 악마로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군사면에 치중한 서적들은 사건의 전쟁사적 의미에 치중하느라 바빠 몇몇 사상적 요점을 놓치고 있기도 하다. (SS에 대해서 얼굴보고 뽑은 바보 모델집단이라고 평한 서적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 책은 분명 나름의 훌륭함을 갖고 있었기에 충분히 참고할 만한 자료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역사적인 면에 대해서는 별로 점수를 줄 수 없었다.) 그외 전쟁사 쪽 자료는, 그 당시의 역사를 모르고 읽었다간 무기제식과 전략전술에 현혹돼 정작 전쟁 자체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와 끔찍함은 다 놓칠 가능성이 크다.
부가로 추천할 만한 것에는 만화책인 "쥐"가 있다. 이쯤 되면 눈치채시는 분들이 있을 법 하다. 내가 추천한 책들은 대부분 생존자의 직접적 증언에 근거하고 있다. 히틀러 본인의 책은 말할 것도 없고(나의 투쟁의 경우 훌륭한 주석 덕분에 훨씬 더 읽을만한 책이 되었다. 히틀러가 말하는 히틀러 자신과 연구가들이 밝혀낸 그의 모습도 비교해 볼 수 있으니까.) 제3제국의 흥망의 경우 샤일러는 전시 거의 내내 독일에 주재하고 있던 영국 특파원이었다. 히틀러의 여인들 또한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최대한 냉정하게 쓴 책이다.
조금 딱딱한 책을 더 추천한다면 제2제국, 이라는 책이 있다. 훌륭한 책이지만 저자가 기억나지 않는걸 보니 내 뇌세포의 수명이 다 하고 있는 것 같다 -_- 그리고 메리 풀브룩이 쓴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두 책은 나치이전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독일사가 어떤 흐름을 거쳐 나치까지 이르르게 되었는가에 대한 정반대 의건을 담고 있는 책들이다. 제2제국이 먼저 쓰였고, 그 위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가 나왔다. 제2제국은 자학적이고,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는 그 자학을 위로해주는 척 하며 심장에 비수를 박는다. 좋은 책들이다.(......)
그리고 에릭 홉스봄이 쓴 20세기 - 전쟁의 시대가 있다. 19세기를 주제로 했던 혁명-산업-자본의 시대 시리즈의 후속으로, 20세기의 전쟁에 대한 훌륭한 책이다. 강추다.
이외에도 훌륭한 책들이 특히 요즘 많이 나왔으니, 지금 내가 늘어놓고 있는 사설이 이미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겐 너무나 기초적인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대강 아주 큰 얘기만 할 생각이니 사소한 말꼬리는 받지 않겠다. 단, "중요한" 사실이나 논거에서 에러가 있다면 언제나 지적은 감사히 받는다.
어쨌건, 내가 주로 경험자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의 증언을 듣고 그들의 편견을 감안하여 지금의 사람들이 판단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증언을 읽고 생각을 정리한 후 그에 대한 주석을 읽는 것이 가하다. 특히 역사학자나 사상가들의 강렬한 주석부터 읽고 들어가면 좋을 것이 없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야 이 긴 사설이 부끄럽고 무색할 정도의 간단한 얘기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셔도 좋을 것 같다.
~ less..
우리는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유태인을 600만 학살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좀더 자세히 아는 경우 그것이 실은 500만 좀 넘는 유태인과 60만의 집시, 20만의 동성애자, 2만의 정신병자를 합한 수라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좀더 자세히 아는 경우, 저것은 노동수용소에 끌려가거나 혹은 점령 당시 인종청소에 의해 학살당한 슬라브인들이 빠진 수라는 것도 알고 있다. 참고로, 2차대전의 소련 영역 내(벨로루시 우크라이나등 추가) 사망자는 군인까지 합쳐 10002500만명이다. 2차대전 전체 사망자의 5분의 1인가쯤 될 거다. 아니면 3분의 1이거나. (회사에서 글 남기는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은 기대하지 마라)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검은 호밀빵을 크림치즈에 찍어 맥주 한잔과 소시지와 함께 먹는 것이 인생의 낙이던 수수한 독일인들이 왜 이렇게까지 미쳐돌아갔는가는 모른다.
일반적으로 "히틀러 납하요" 라는 것이 사람들의 대답이다.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상대로 막 미쳐돌아갔다는 것이다. 즉, 대공황으로 단체패닉에 빠져 있던 독일인들이 혜성같이 미친놈이 하나 나타나자 그 미친놈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닥치는대로 유럽을 점령하면서 다 죽이고 돌아다녔다는 말씀 되겠다. 물론 한때 독일인들도 그렇게 주장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가 자기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해 "내가 나빠"라고 할 수 있겠는가? "쟤가 나빠"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사람 본능이고, 마침 나치스의 수뇌들이 있으니 걔들을 갖다대면 된다. 사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일본 천황을 전범으로 정하자는데 반대하는 입장이다. 내가 보기에 진정한 전범은 바로 예의바르고 양심적이고 착한 일본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놈의 대동아 전쟁이라는게 어떤 것인가 말이다. 지금 우리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그 친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너무나 국가의 명령에 의심없이 잘 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던가? 물론 소수는 저항했다. 그러나 그러한 소수를 비국민이라고 부르며 돌을 던진 것은 누구였는가? "전쟁 때문에 그랬어. 전쟁이 나쁜 거야" 라고 변명하고 외면한 바로 그들이다. 우리도 단단히 기억하자. "전쟁이 나쁜 거야" 라는 말은 비겁한 회피다. 이것은 6.25에도 베트남에도 이라크에도 적용된다. 전쟁에 참여한 것은 우리다. 언젠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날이 오면, 미국 탓으로 돌려선 안된다. 미국을 선택한건 우리잖아.
뭐, 마찬가지다. 처음엔 나치놈들이 나빠서 독일 국민들을 현혹했고, 자기들은 걔들 말하는 대로 다 따라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던 독일인 중에서 슬슬 양심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빌리 브란트가 뮤지컬 주인공이 될 정도로 유명한 건 그것 때문이다. "난 저항했으니까 떳떳해" 라는 사람들, 잘 봐 둬라. 사회주의자로 나치를 피해 이름을 바꿔가며 도망다녀야 했던 그가 바로 수상이 된 뒤 독일 전체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스라엘까지 찾아가, 역사상 그들의 위령소에 무릎까지 꿇고 고개숙인 최초의 독일 총리가 되었다.
또 얘기가 새니까, 그럼 도대체 왜 독일인들이 미쳐돌아갔을까를 생각해 보자. 고등학교때 세계사를 좀 생각해 보면 얘기가 쉬워진다. 다음의 명사들이 기억나나? 범 게르만주의, 범 슬라브 주의. 기억난 사람 브라보! 학원에서 가르칠때 아무리 달달 외우게 해도 못 알아먹더라 -_-;
간단히 말하자. 이 둘은 민족주의다(싱긋) 별거 아니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1780년 이후에나 사전에 등장하는걸. 슬라브족, 게르만족, 앵글로 색슨족, 점령 오타쿠 전쟁광 나폴레옹 덕분에 무식한 프랑스인들에게 자유와 박애의 이념으로 처참하게 짓밟힌 지역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언젠가부터 자신들이 저 프랑스 새끼들과는 다르다는 믿음이 강렬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근데 생각해 보자. 자유, 평등, 박애. 좋다. 이름은 진짜 좋다. 이 좋은 이름에 뭘로 저항할 수 있나? 나폴레옹이 쫓아내 버린 왕을 숭배하는 걸로? 그걸론 부족하다. 뭔가 좀더 강력한 것이 있어야 한다. 혈통적인 것, 지역적인 것, 문화적인 것, 하여 우리가 저 프랑스 놈들과 뭐가 다른지를 강렬하게 일깨워주는 것!
그렇게 선택된게 민족주의다. 각지에서 민족주의가 불길같이 솟아난다. 이탈리아에서, 바스크에서, 라인란트에서, 그리고 사방으로. 나폴레옹이 물러가고 왕들이 돌아왔지만 한번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맛을 본 사람들은 자기 머리 위에 왕관쓰고 앉아있는 상관을 마뜩치 않아 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왕실보다도 민족이 우선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왕들이라고 해 봤자 나폴레옹이 쳐들어왔을 때 도망밖에 더 갔는가. 그러나 민족은 영원한 것(싱긋).
시간이 흐른다. 사회주의가 등장한다. 세상은 혼돈에 차 있고 왕들은 교활해진다. 그들은 민족주의가 사회주의보다 훨씬 이용하기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해 냈다. 특히 민족이 여러나라에 걸쳐 있는 국가드은 그런 자신들의 민족주의를 이용해 타지를 집어삼키길 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기서 좀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 역사가 괜히 거울이라는게 아니지.)
범 게르만 주의란 그런 거다. 간단히 말해 "게르만 사람들은 전부 한 국가에 뭉치자" 다 "하나의 민족에는 하나의 국가"이다. (슬슬 여기서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거다. 역사에 흥미 있던 분들과 엘리자베트 팬들 중에서) 범 슬라브주의도 마찬가지다. 모든 슬라브인들은 한 국가에 뭉치자는 것이다. 물론, 기왕이면 자기 국가에(웃음). 당연히 이 둘을 주장한 중심국가는 프로이센과 러시아였다.
문제는 말이다, 이 "범 어쩌구 주의"란 사실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주의라는데있다. 예를 들면, 조선족 자치구에 조선인이 중국인보다 많으니 중국인을 몰아내고 조선인들끼리 뭉쳐 영토를 병합하자는 얘기가 되는데, 중국과의 전쟁 없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중국인들이 범 한족주의 제창하면 어쩔 건데? 당장 한족이 지배하는 것은 다 자기 땅이라고 하면 동남아부터 중국 것이 되어야 한다고 난리치는게 당연한 순서다. 게다가 한국인들 놓고 "니들도 우리랑 피가 많이 섞였잖아, 유전적으로 봐서 어쩌구" 까지 들어가면 끝장이지 -_-;;;
사람과 사람이 살을 섞고 사는데, 어디 인간이라는 종족이 민족 가려가며 남친 여친 사귀더냐. 섞이고 섞이는 것이 세상 순리거날 그러니 당연히 독일에서 조금만 더 동쪽으로 가면 게르만과 슬라브가 섞여있는 국가가 부지기수인 게다. 우리는 게르만, 하면 다 독일인지 알지만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_- (게르만족의 이동 좀 생각해 봐라.) 폴란드만 해도 게르만 혈통이 엄청나게 많았다. 하나의 국가가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된다는 착각은 버려라. 단일민족? 우리만 해도 수많은 민족이 섞인 결과물인 게다. 물론 이렇게 좁은 곳에 오래 갇혀 살았으니 민족이라고 믿을만한 특성은 강하다만, 좀더 열린 사고를 가질 필요는 넘쳐난다.
넘어가서, 아무튼 그렇게 서로들 욕심을 부렸더랬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는 서로 다르다. 그리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제국주의는 - 특히 영국의 제국주의가 - 다민족적 양상을 띤다. 걔들이야 세계로 뻗어나가 세계 경영을(싱긋) 해야 했으니 자기들만 모여살자 하면 대 손해다. 그러나 솔직히 식민지 경쟁에서 별로 건진 것이 없는 프로이센이나 러시아의 경우 민족주의는 큰 가치를 지닌다. 그것도 아주 이기적인 동인으로서.
무슨 얘기인고 하니, 이놈들은 민족주의를 이용해 "니땅은 내땅, 내땅은 내땅" 식 논리를 펼쳤다는 얘기다. 저기 독일인이 60% 살고있으니 우리땅 할래, 근데 거긴 슬라브인이 40%니 러시아 땅이야, 라고 했다는 거다. 당연히 그 와중에 큰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은 그렇게 일어났다. 뭔 얘기냐고 프로이센 얘기를 신나게 하다가 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주 원인인 전쟁 얘기가 나오냐고? 자, 조금 추리해 보자.
범 게르만주의가 프로이센 사람들의 심금만 울렸을 리가 있나. 애시당초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으로 거듭난 것부터가, 합스부르크 제국을 질질 끌고 가기 귀찮아서 떼놓고 북독일의 조그만 영방국가들을 사그리 쓸어모아 제멋대로 제국 참칭을 한 건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람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게르만인들은 당연히, 헝가리 같은 우스꽝스러운 애들을 동급으로 대접해 줘야 하는 것부터가 짜증나는 상태였단 말이다. 헝가리 인들은 마자르족과 슬라브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당시 상당히 광대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에는 현재의 폴란드 영토도 다수 들어있었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는 슬라브가 가득한(그리고 게르만도 많은) 세르비아 등의 나라도 넘보고 있었으니 당연히 범 게르만주의자들은 짜증이 이빠이인 상태다.
바로 위에 순수 독일인의 나라가 있단 말이다. 쓸데없이 질 떨어지는 슬라브 애들 동급으로 취급 안 하는 국가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재정구조의 상당부분이 오스트리아의 헝가리에 대한 원조적 성향을 띠고 있었던 것까지 감안해 보길 바란다. 분명 같은 민족인 북한에 퍼다주는 것도 짜증내는게 국민의 인심이다. 다른 민족의 덜떨어지는 애들을 괜히 동급제국으로 만들어 대접해주는 것도 짜증나는데 원조까지 해 줘 봐라. 프로이센으로 눈길 가는건 금방이다.
그래서 한창 성장중인 프로이센에 눈길을 한껏 보내고 있었는데, 무려 범 슬라브주의자인(웃음) 암살범이 황태자를 암살한 거다. 마침 프로이센과는 동맹이다. 전쟁이 안 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퇴근시간이 왔으니 여기서 끊는다. 연재물이 될 것 같다. 그럼 다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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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valon의 감자밭 2006/05/04 14:38 x
제목 : HASS!
지난번에(뒤적) 전쟁 난 데까지 얘기했던 것 같다. 그럼 얘기를 좀 다른 쪽으로 돌려보겠다. 지난번에는 그렇게나 수업시간에 줄줄 외워야 했던(...) 범 게르만 주의와 범 슬라브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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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님과 왕비에 대한 잡상
역사/고전 관련 |
2006/04/1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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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우베 크뢰거씨가 주연한 그 뮤지컬 삼총사 얘기에요. 별건 아닌데, 고기님 블로그의 멋진 포스팅에 덧글에 쓰려니 너무 길어져서 여기 옮겨두는 김에 이것저것 잡설도 더 붙여서 늘어놓으려구요.
삼총사의 원작은 우리 모두가 모를 수 없는 알렉상드르 뒤마씨입니다. 전 아들 뒤마보다 아빠 뒤마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쓸데없이 예술 할 생각 없이 밀어붙이는 흥행의 귀재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문장은 감칠맛이 넘치고, 곱게 자라신 아드님과는 달리(으하하) 뒤마 본인은 젊어서 고생이라도 해 보신 건지 난장질을 많이 하셨는지 문장에서 생활감이 넘칩니다.
한창 직장도 시원찮고 남에게 빌붙거나 근근히 굶던 먹던 해 가며 적당히 풀칠하고 살던 때 집어들었던 삼총사 3권짜리 완역본의 삼총사와 플러스 알파들의 삶은 정말 남 얘기가 아니더군요. 여기저기서 얻은 시원찮은 보수와 귀인들이 하사한 패물을 팔아먹어가며 전투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별별짓을 다 하고, 먹을 것을 살 돈이 떨어지니 아는 사람들 집에 돌아가며 식사 때 놀러가 밥을 얻어먹으며 지내고...(아니, 저것보단 당시의 제가 좀더 나았긴 합니다만...)
아무튼 이런 원작의 요소 중 헐리우드 영화 등에서 주로 아름답게 살아남은 것은 눈부신 칼싸움과 화려한 귀족들의 드레스와 예복, 은실로 수놓인 멋진 레이스칼라의 총사복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 대부분의 영화가 목걸이 사건의 성공적 엔딩에서 끝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얼마나 멋집니까. 왕비가 목걸이를 준게 결국 생각해 보면 불륜 상대(그것도 적국의 귀족!)에게 준 정표였다던가, 삼총사는 그런 불륜왕비의 보호를 위해(이유도 절대 프랑스를 위해, 같은게 아니죠. 왕비가 날아가면 추기경이 완전 득세 -> 트레빌은 날아가고 -> 총사대는 아마도 해산 -> 우리는 실직자) 무려 무전취식후 도주, 퍽치기, 서류 갈취, 허위신분 사칭 등등의 죄를 차곡차곡 범해가면서 적국으로 가서 목걸이 플러스 "위조된" 장식을 받아오는 겁니다. - 도중에 포르토스인가 아토스는 여관 창고를 무단점거하고 사유재산을 마구 축내고 있었죠. 그들이 다치게 하거나 죽인 추기경 예하의 공복들에대한 손해배상은 생각지 말기로 합시다. - 그리고는 돌아와서 적국의 귀족과 내통한 합스부르크 여자(...)에게 목걸이를 넘겨줘 그녀의 정치적 입지를 지켜준 겁니다.
답례로 받은 것은 버킹엄 공이 하사한 최고급 마구가 딸린 말 네 마리, 그리고 왕비의 반지. 얼마나 좋습니까. 누구건 여기까지 나타내는걸 좋아할 겁니다. 그 뒤 걔들이 그 말들 전부 다 도박과 술로 탕진하고 배고픈 신세가 돼서 라 로셸로 갈 무기조차 마련 못하고 빌빌대는걸 누가 보고 싶겠어요(......) 게다가 콩스탕스는 밀레이디에게 독살당하고 알고보니 밀레이디는 옛날에 아토스 마누라였고 그 이전에 사형집행인의 마눌님이었고 그래서 전남편 불러다 목을 싹둑 베어버리고(그런다고 콩스탕스는 안 살아돌아오고) 불라불라불라불라......
사설이 지나치게 길어졌는데, 아무튼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삼총사 영화나 간단한 문고판은 목걸이 사건 이후는 아예 언급을 안 할 때가 많고, 특히 라로셸의 전장에서 있던 일은 깡그리 날려버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건 사실 무지 아까운 일입니다. 라로셸의 반란을 생각하면(뮤지컬 삼총사에선 여기 임하는 리슐리외가 다뤄진 모양인데) 삼총사 "뮤지컬"의 위치가 재미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네덜란드에서 삼총사를 뮤지컬로 만들었고 거기엔 라로셸의 전장/혹은 거기 임하는 추기경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less..
자아, 영 엉뚱한 것 같지만 다 연결되니까 일단 안 도트리슈, 유럽에서 팔이 제일 아름다웠다는 왕비언니의 배경부터 살펴봅시다. 이 언니가 왜 그리 추기경님과 서로 못 잡아먹어 아득바득 다정한 사이가 됐는지 말입니다. 안 도트리슈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아가씨로,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펠리페 3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의 딸입니다. 즉, 젊은 왕비는 합스부르크가의 일원일 뿐 아니라 스페인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온 셈인데, 당시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은 전부 합스부르크 거였고, 이 얘기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와 북구 나라와 아예 저 먼 동유럽을 제하면 유럽땅이 전부 합스부르크 거였다는 얘기가 됩니다.
 안 도트리슈. 솔직히 머리가 좋아보이진 않아요 -_-
그녀가 시집온 왕인 루이 13세는 사실 엄마 마리 드 메디시스의 그늘에서 독립하기 전이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앉혀놓고 권력을 휘두르던 마리 드 메디시스 밑에서 프랑스의 귀족들은 왕권을 위협하며 지들 맘대로 멋대로 나라를 휘젓고 있었습니다. 마리 아줌마가 조피마냥 강력하게 왕권을 세웠으면 모르겠는데, 이 아지매, 자기가 메디치 가문 출신이라 그런진 몰라도 귀족들의 전횡을 막기는 커녕 부패할대로 부패해 난리도 아니었죠. 그리고 그 부패가 불러온 각종 약탈과 협상에서 협상가와 중재자로서의 실력을 발휘하며 차근차근 성장한 것이 리슐리외입니다.
그래서, 아직 마리가 프랑스를 호령할때 리슐리외와 안느는 재미있는 관계를 맺게 되는데, 갓 시집온 어린 왕비의 지도신부를 당시엔 아직 추기경이 아니었던 리슐리외가 맡게 되지요. 아마 이때에도 둘이 잘 맞았을까는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단순하고 멋대로에 가끔 비밀 취미에 열중하는 기질이 있는 안느와 학구적이고 꼬장한데다 몸을 혹사해 가며 부지런한 타입인 리슐리외가 잘 맞았을 것 같지는 않아요. 아마 철없는 왕비 덕에 지도신부로서 마음고생이 꽤 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적어도 이때 둘은 정치적인 입장은 비슷했습니다. 둘 다 가톨릭이었고, 둘 다 마리 드 메디시스가 택한 사람들이었으며, 한쪽은 스페인의공주였고 한 쪽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협력이 진심으로 나라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리슐리외 추기경, 척 봐도 꼬장하죠>.< 붉은 망토 사이로 비치는 흰 레이스가 포인트.
그러나 이 둘의 입장은 향후 몇년 뒤 예전에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달라져 있게 됩니다.
일단, 엄마가 골라준 신부감을 루이 13세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슬프게도 이 아저씨는 서민적이고 당찬 아가씨를 좋아했는데 안은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너무 나서는 엄마를 가진 아들이 흔히 그렇듯 루이 13세는 대단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타고 났는데, 신부가 너무 예뻐서(......) 바로 옆에 있어도 제대로 말도 붙이지 않아 부부사이는 지극히 썰렁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루이 13세가 엄마품에서 벗어나 엄마를 실각시키고 직접 정치를 하게 되었을 때에는 아예 왕은 왕비를 상대도 하지 않았고, 둘 사이엔 자식조차 없어서 왕비의 입지는 더더욱 약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단순한 두뇌를 가진 수많은 여인들이 그러듯, 안느는 홧김에 바람을 피웁니다(......)
한편, 리슐리외는 안느가 저렇게 뻘짓하는 동안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합니다(...) 마리 드 메디시스의 섭정정부가 무너지면서 공직에서 잘리거든요. 졸지에 일개 주교로 떨어져 도망까지 갔어야 했는데, 우스꽝스럽게도 역시 정신적으로는 약골이던 루이 13세, 섭정 자리에선 물러났지만 맨날 자기한테 딴지거는 무서운 엄마를 달래기 위해 "엄마, 이거봐. 엄마가 좋아하던 사람들을 불러왔어요" 라고 하며 마리 드 메디시스파 사람 몇몇을 중용하는데, 그 사이 리슐리외가 끼어있었던 겁니다. 반색을 하며 당장 루브르로 돌아온 리슐리외씨는 일단 마리 메디시스 밑에서 그녀를 위해 일하지만 국왕과 모후 사이의 중재 역을 하며 슬슬 국왕 쪽으로 붙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마리 드 메디시스는 궁에 복귀, 그리고 리슐리외는 무려 마리 드 메디시스의 강력한 추천으로 추기경이 되지만 글쎄...뭐, 몇년 뒤의 마리는 "리슐리외"라는 이름만 들어도 반쯤 발작상태가 될 지경이었다니 말 다했지요. 인생 첫 열차 갈아타기는 순조로웠던 셈입니다.
이렇게 정치적 열차를 마리 드 메디시스 호에서 루이 13세 호로 갈아타며, 리슐리외는 여러 부분에 관여하며 크나큰 깨달음 세가지를 갖게 되는데, 이 세 가지 깨달음은 하나같이...아니, 사실 하나 빼고 전부 안 도트리슈의 마음에는 영 들지 않는 방향의 것이었습니다.
첫째, 그전까지는 스페인을 같은 종교를 믿는 든든한 동맹으로 여기던 리슐리외는, 정작 외교쪽 일을 하면서 잽싸게 유럽의 반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스페인/합스부르크가 더 강력해져 봤자 프랑스의 미래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반 합스부르크의 기치를 듭니다. 당연히, 합스부르크가의 딸이며 스페인 공주인 안이 그것에 찬성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둘째, 추기경은 무려 가톨릭의 최고위 성직자이면서도 종교보다 국익을 앞세워 모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즉,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가톨릭의 가장 강력한 보호자를 자청하던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나아가 교황청에 반기를 든 겁니다. 현대인의 관념으로는 지극히 합리적인 일이지만, 종교를 이유로 도시와 도시, 국가와 국가가 전쟁을 할 수 있던 시기에 추기경의 그런 행동은 같은 가톨릭 국가나 신도들에게는 교황청 등에 칼 꽂는 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열렬한 가톨릭 신자인 안 도트리슈가 이것을 가만 두고 볼 수야 없었죠.
세째. 추기경은 국내에 있어 왕권을 귀족과 교회의 권리 위에 두려 합니다. 왕에게 충실히 복종하기만 한다면 추기경에게 있어 가톨릭교도와 위그노는 동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왕권 강화에 대한 일이고, 왕비인 안 도트리슈에게 그닥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왕비는 그런걸 일일히 따지기에는, 위에 든 이유 때문에 추기경을 몹시 미워하고 있었고, 게다가 왕과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어서 왕권이 강화된다고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시어머니랑 손잡고 리슐리외를 몰아내려 들었겠어요.
아무튼 그래서, 결국 1620년대 대시 재회한 이후의 두 사람은 아주 아르릉 카르릉한 사이가 됩니다. 안 도트리슈는 시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시스와 함께 어떻게든 리슐리외를 몰아내려 들고, 리슐리외는 궁정 안의 적과 나라 안의 적과 나라 밖의 적을 다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지요.
삼총사의 목걸이 사건은 사실 리슐리외가 여러모로 최대의 위기상황일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재미있게도 소설에서 추기경은 내내 강력한 권력을 쥐고 삼총사의 숨통을 죄어오는 공포스러운 사람이지만, 실제 리슐리외에게는 1626년의 리슐리외 암살 음모부터 시작해서 특히 라로셸 내란을 거쳐 1628년부터 1631년 사이는 인생 최대 위기라고 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연속됩니다.
일단 삼총사에서 목걸이 사건의 배경이 된 버킹엄 공과의 연애, 아니 불륜 얘기부터 해 보죠. 이 당시의 안 도트리슈가 영국 귀족인 버킹엄 공에게 홀딱 빠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녀에게 있어 프랑스 궁정이란 기분나쁘고 있고 싶지 않은 곳이었음은 틀림없습니다. 왕은 무려 귀족아가씨도 아닌 시시껍절한 시녀들이랑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그 중 한 시녀에게는 무려 냉혹하게 차였습니다! 왕이!), 시어머니는 자기 편이라지만 세상 어느 며느리가 그리 시어머니가 맘편한 대상이겠으며, 그 밑의 총리라는 작자는...아마 고귀하신 왕비님으로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욕하고 싶었을 테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음모를 너무 열심히 짜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안 왕비는 버킹엄궁과 달짝지근한 연애만 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첩자 일을 하다 못해 급기야는 "진짜 음모"마저 꾸밉니다. 1626년, 마리 드 메디시스와 안 도트리슈, 그리고 무려 루이 13세의 동생 가스통과 왕가의 피가 섞인 대귀족 샬레 백작은 리슐리외 암살 음모를 짭니다. (저 넷을 모두 적으로 돌리고서도 총리를 해먹었다는게 참 어딜 보아도 대단합니다.) 아니, 말이 리슐리외 암살 음모지 사실상 반역으로서, 리슐리외를 죽인 뒤 왕을 몰아내고 안 도트리슈를 가스통과 결혼시켜 프랑스 왕으로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참 지금 보아도 어이가 없는 음모였습니다만, 사실 저 정도 사람들이 모여 한다면 그닥 실효성이 없는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리슐리외는 보기보다 권력을 많이 갖지 못한 총리였고, 늘 협상과 제도의 교묘한 운용, 절묘한 실용주의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던 사람이었으니 리슐리외만 없으면 왕을 제거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었지요.
그러나 이 사람들, 음모는 잘 세워도 실행은 잘 못한데도 무엇보다도 샬레 백작이 경솔하게 나불거려 전원 다 걸리고 맙니다. 자, 그래서 처벌은? 샬레 백작과 몇몇 주동자들은 추방되거나 처형되지만, 모후와 왕비와 왕제는 그 신분과 위치 때문에 모두 용서받습니다(......) 즉, 반역음모를 꾸몄던 중핵 중 제일 문제되는, "언제건 다시 반역/암살 음모의 핵심이 될 자들"은 그대로 남은 셈입니다.
리슐리외는 아마 그것에 대해 몹시 기분이 나빴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샬레 백작의 처형은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형 자체는 당연히 왕가의 피가 섞인 귀족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참수형으로 결정되었지만, 샬레 백작의 동료들은 처형을 늦추기 위해 사형집행인을 납치하는 수단을 씁니다. 처형을 늦춘 사이 어떻게든 왕에게 탄원하여 살려내려 한 거죠. 그러나 리슐리외 추기경은 즉각 사형수 한 명을 불러내 형을 감면시켜 줄 테니 도끼를 빌려 처형하라 명합니다. 샬레 백작의 목은 그런 일에 익숙치 않은 사형수의 손에 들린 통 만드는 손도끼로 30번 이상 찍히는 수모를 당하게 되고, 그 횟수가 스무번이 넘어갈 때까지 숨이 붙은 채 신음소리를 냈던 대귀족의 모습은 지금까지 기록에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그 뒤로 귀족들은 얌전히 사형당하게 되지요(......)
그런 음모를 무사히 넘기고도 위험은 계속되었습니다. 삼총사에 대해 다룬 영화 중 하나에선 추기경은 영국과의 전쟁을 원했고 왕비는 원치 않았던 것처럼 되어 있지만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삼총사도 참가하는 라로셸의 신교도 내란은 영국을 끌어들여 함께 싸우고자 했던 신교도들의 음모가 얽힌 일이었고, 안 도트리슈의 애인이었던 버킹엄 공은 신교도들을 돕기 위해 레 섬에 정박했을 정도였습니다. 1년간의 포위가 계속되는 동안, 프랑스를 누를 틈만 노리던 스페인은 겉으로는 프랑스를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뒤로는 오히려 라로셸의 위그노들을 지원하는 엽기적 행각을 선보입니다. 그리고는 프랑스 영향력 하에 있던 북부 이탈리아의 까살레를 먹어치우죠. 아마 이게 에코의 "전날의 섬"에 나오는 까살레 공방전일 겁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라로셸을 함락한 리슐리외는 바람처럼 알프스를 넘어(이 사람은 누구마냥 불가능은 없다는니 헛소리 안하고 단칼에 넘었습니다.) 까살레의 스페인군을 해치웁니다. 말 그대로 스페인을 엿먹인 셈인데, 라로셸 함락 이후 국내의 신교도들은 산발적인 저항 후 대부분 잠잠해지게 됩니다. 이 때 신교도들의 강제 개종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남기신 우리 추기경님의 명언이 있습니다. "개종은 무력으로 하는게 아니다. 하늘을 보고 하는 것이다."(이쯤되면 쓰는 놈은 빠순이 모드)
아참, 살짝 덧붙여 둡니다만, 이때쯤 28세의 이탈리아 젊은이 하나가 45세의 리슐리외에게 반하게 됩니다.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결심했다는 이 청년의 이름은 마자랭으로, 정식으로 리슐리외에게 부름받는 것은 몇년 뒤지만 전적으로 리슐리외를 따르기르 결심한 것은 일기에 따르면(...) 이때쯤이라고 하는군요. 아무튼 이 글에서 나중에 중요한 역으로 나오게 됩니다(웃음)
자, 어쨌건 넘어가서 산 넘어 산이라고 이뿐이 아닙니다. 까살레를 빼앗긴 합스부르크는 빡오른 김에 그간 프랑스와 국경분쟁이 있던 지역을 아예 점거해 버리고, 싸움은 합스부르크측에서 루이13세의 파문을 교황청에 공식적으로 요청할 정도로 거대해집니다. 그러자 프랑스 국내의 반 리슐리외 파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 선두인 마리 드 메디시스는 완전히 격분하여 국왕에게 직접 가서 눈물을 흘리며 저 악마를 몰아내라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리슐리외 추기경 인생 최대의 위기 그 자체라고들 평하는데, 어느정도인가 하면 국왕이 침묵하며 물러난 뒤 반 리슐리외파는 연회까지 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반역음모를 짰던 모후와 동생, 왕비를 처단하지 못할 정도로 우유부단하고 심약했던 루이 13세는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리슐리외에게 올인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원래 평소에 버벅이던 사람이 한번 이 악물면 무서운 법이죠. 그 날 저녁 왕은 몰래 사냥 별장에 리슐리외를 불러 얘기를 나누고, 다음날 모후는 이 일로 완전히 국외로 추방당해 11년 뒤 쓸쓸히 죽게 되고, 왕제 가스통은 참수형을 선고받은 뒤 잡히기 전에 잽싸게 엄마랑 같이 도망갑니다. 그리고 리슐리외는 그때야말로 전권을 쥐게 되지요.
그럼 안 도트리슈는? 그녀는 버킹엄과 바람을 피워 프랑스 왕실을 망신시키는 한편 반 리슐리외 음모를 짜다 실패하고(...) 결국 리슐리외가 푼 첩자에게 계속 감시당하다 나중엔 숨겨들고 있던 쪽지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합니다(웃음). 이걸 왜 수모라고 부르느냐 하면, 그 쪽지가 그녀의 가슴에 달린 코사지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죠. 언뜻, 그 코사지를 잡아뜯어(! ) 쪽지를 빼앗은 사람이 마자랭이었다는 글을 읽었던 것 같은데, 이건 확실치 않으니 넘어갑시다. 야사는 야사로 남겨둬야죠.
그래도 안 도트리슈는 대단한 여잡니다. 모후가 쫓겨나고 왕제가 사형선고를 받는 와중에서도 계속 왕비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왕은 역사 기록에 남을 정도로 그녀를 냉대했고 부부사이는 얼음장 같았지만요. 아마 리슐리외에게 있어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다음의 골칫거리는 안 도트리슈가 아니었을까요? 머리도 나쁜게(...) 떨어져나가질 않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몇년 뒤, 전권을 잡은 추기경은 도대체 당신 위장 취업한 신교도 아닌가 묻고 싶을 정도의 열성으로 몰래몰래 30년 전쟁에 뛰어든 신교국가들을 지원하다 결국 무능한(...) 신교국들이 수세에 몰리자 전격으로 전쟁에 뛰어듭니다. 물론 그렇게 한 이유야 간단하죠. 스페인도 합스부르크도 구교 국가들이고, 걔들을 지원해줘서 30년 전쟁이 합스부르크의 승리로 끝나면 프랑스는 육지 안의 포위된 섬이 될게 뻔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안 도트리슈에게 상관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합스부르크와 스페인은 자기 모국이고 가톨릭은 자기 종교인걸요. 그녀는 계속 모국의 사람들과 음모를 나누다 들켜 망신당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지냅니다.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함께 음모를 진행하려고 수녀원에 들렀다 들켜서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지요. 그러다 1638년, 아마도 리슐리외까지 경악할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예, 바로 그녀가 아들을 낳은 겁니다. 도대체 루이 13세가 어느날 술을 먹고 실수했는지, 아니면 방을 잘못 찾아갔는지, 아무튼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안 도트리슈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순산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일순간에 가장 충실한 프랑스 빠순이로 돌변합니다.
예, 정말입니다! 아들을 낳자마자 그녀는 즉각 자신의 아들이 프랑스의 왕이 될 것임을 알아차렸고, 자신을 남편이 냉대하거나 말거나 그녀의 찬란한 미래는 프랑스의 찬란한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두뇌 안에서 오랜 동면기간을 거친 뇌세포가 마침내 제대로 활동을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프랑스 사학자들은 안 도트리슈를 두고 남편 잘못 만난 여자라고들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녀가 일반적인 부부처럼 결혼하고 3년 안에 아들을 낳았던들 그 뭣같은 삽질이 계속되었겠냐는 거죠. 전형적인 데메테르 타입이었던 듯한 그녀는 즉각 프랑스를 향한 모든 음모를 그만두고 왕권수호를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다 하게 됩니다. 1640년, 또다시 아들을 순산한 그녀는 명실상부 프랑스의 제대로 된 국모로 자리잡았고, 여전히 남편과의 사이는 거지같았지만 아무튼 예전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누리게 되지요. 삼총사에서 보이는 안 도트리슈에 대한 그나마 호의적인 시각은 이것으로나마 가능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1642년 12월, 리슐리외 추기경은 자신을 향한 마지막 암살 음모를 물리친 뒤 결국 병으로 인해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1643년 5월, 마치 뒤를 따르듯(어이) 루이13세가 죽죠. 루이 13세는 죽을 때까지 거지같은 남편이었고, 안의 평소 생활을 생각하면 십분 이해할 수 있긴 한데 유언장에 안의 독자섭정을 막는 조항을 넣어둡니다. 그러나 동면에서 깨어난 뇌세포는 상당히 강력했고, 하여 안은 고등법원에 무려 압력을 넣어 그 조항을 무효화시키고 자기가 독자섭정을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전권을 리슐리외의 후임인 마자랭 추기경에게 일임하지요.
안 도트리슈와 마자랭은 루이 13세와 리슐리외만큼이나 서로를 신뢰했는데, 안 도트리슈의 화려한 행적이 있다 보니 요즘 들어서는 마자랭이 루이 14세의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막나가는 프랑스 궁정이라 해도 그건 좀 무리죠. 자기 애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만 있다면 루이13세가 안 도트리슈를 해치우지 못했을 리가 없지요. 게다가 일생동안 리슐리외 빠돌이였던 마자랭이 적어도 리슐리외와 왕이 살아있는데 왕비와 놀아날 정도로 간 부종에 걸려있진 않았을 겁니다. 리슐리외의 첩보기관은 상당히 뛰어났거든요. 그러나 솔직히, 섭정시대 당시의 안이 마자랭과 참 좋은 사이였다는 것에는 대략 다들 동의하는 눈칩니다. 아, 가톨릭 계열 학자들 빼고요(......) 아무튼 그녀는 자신의 모국인 스페인과의 전쟁도 불사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이죠.
대략 리슐리외와 안에 대한 얘기가 종막을 향해 달려가는군요. 그럼 왜 "네덜란드에서 삼총사를 뮤지컬로 만들었고 거기엔 라로셸의 전장/혹은 거기 임하는 추기경이 나온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냐고요?
네덜란드는 유명한 신교 국가입니다. 사실 이 나라는 일찍부터 신교를 믿을 자유와 자신들을 지배하는 합스부르크의 손에서 벗어나기를 강력히 원하고 있었고, 독립한 후에도 청교도건 위그노건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수많은 종교망명객들의 목적지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해, 프랑스에서 신교와 구교 사이에 전쟁이 터지고 신교도들이 도망가야 할 필요가 생길 때마다 네덜란드의 프랑스인은 늘어만 간 겁니다. 심지어 결국 안 도트리슈 섭정시대 이후 루이 14세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낭트 칙령을 폐기하자 수많은 신교도 부르주아들이 네덜란드로 도망가는 바람에 유능한 직공과 장사꾼들이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도망가 프랑스의 경제가 부실해진다는 푸념까지 나올 정도로요.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네덜란드의 제작자들이 묘사하는 라로셸에 임하는 리슐리외는 신교도들이 생각하는 전투적인 가톨릭의 모습 그대로입니다(아하하.; ) "좋은 위그노는 죽은 위그노"라는 구절에선 말 그대로 푸헙 하고 뿜었습니다. 아이고 추기경님, 고기님 블로그에서 보니 그거 부르실때 예쁘기는 보통 예쁘시지 않았습니다만, 이 라로셸의 전장은 사실 "위그노를 치러 가는 가톨릭 추기경"의 모습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거였다는 건 위를 보면 아실 거고요. 바로 도망친 신교도들의 나라에서 라로셸에 임하는 (사실 정작 30년 전쟁에서는 신교 편이었던)추기경의 모습을, 엄청 멋진 노래와 화려한 효과로 파팍 띄워주는게 재미있지 않을 수 있냐는 겁니다.
그리고 정작 신교도들에 대해 한번도 호의적이었던 적이 없었던 왕비는 그런 추기경에게 모진 음해를 당하는 불쌍한 귀부인으로 나오다니. 근데 네덜란드에서 만든 삼총사가 "리슐리외와 밀레이디 전"이라는게 또 재미있고 말이지요.
리슐리외와 안 도트리슈에 대해서는 한번쯤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고, 마침 고기님 블로그에서 고운 추기경님이 나오셨길래 이렇게 적습니다. 게다가 회사 일도 안되고 말이죠(.....) 그럼 갑니다요~(휘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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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valon의 감자밭 2006/06/03 12:14 x
제목 : 그래서 걔들은 어떤 애들인가.
자자, 밑의 발작을 가라앉히기 위한 몇가지 포스팅을 기획했습니다. 일단 전공과 관련있는 걸로 하는게 내가 쓸때 편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삼총사로 해 보겠습니다.
흠흠, 그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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