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천사
챙그랑-
무중력이었다면 큰일이었을 것이다. 무중력 상태에서, 유리나 사기로 된 물건의 파편은 공기 저항 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직선으로 튕겨나가게 된다. 혹여 깨지는 그 순간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해도,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미세파편은 우주기기에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무중력 공간 어딘가를 떠다니다 눈 등의 예민한 신체부위에 닿게 되면 큰일날 수 있어서, 우주선에는 보통 유리나 사기, 도자기 등의 물품은 가져오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가끔 파편이 날리지 않도록 제작된 특수제조된 강화유리나 세라믹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 깨진 물품은 '깨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러한 제품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즉 이 경우, 그것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잘못한 것이다. 어떻게 보아도.
"이야 손 맵네? 미안해,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었어?"
웃으며 사과하는 라일의 얼굴에는 붉은 손자국이 찍혀 있다. 여자의 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순간적으로 세츠나의 힘 전체를 밀어넣어 날린 손등 따귀였다. 얼얼한 감각에 잠시 뺨을 만져보았다. 지끈한 열기를 보니 아마도 부어오를 것이고, 이후 몇시간 동안은 사람들이 불안해 하며 힐끗거릴 몰골이 되어 있을 것이다.
"...됐다."
그리고 그 타격을 날린 사람은 그저 조용히 무릎을 꿇을 뿐이었다. 맨손으로 흰 파편을 주워담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는 속으로만 혀를 차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이스터들의 개인실은 모두 같은 디자인으로, 개인 소지품이야 두는 곳이 자유라고 해도 기본으로 갖춰진 물품들은 간수해 두는 곳이 같도록 되어 있다.
물이 필요없는 흡수 폼을 손에 든 라일은 흰 도자기 파편을 직접 손으로 줍고 있는 세츠나 옆에 앉았다. 의아한 눈으로 이 쪽을 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이미 세츠나가 주워낸 큰 파편 외 남은 것들을 싹 폼으로 집어낸다.
"그런 파편을 손으로 직접 집으면 안되지. 괜히 다쳐."
"너..."
"엄마가 안 가르쳐 주셨어? 그럼 그 얘기도 못 들어봤겠네, 이런 파편을 잘못 다뤘다가 박혀들어가면..."
손가락 끝에 파편이 박혀들어가 심장까지 타고 들어가, 그만 숨이 멎어버린 사람의 이야기.
세츠나는 들어본 적 없는 얘기를 하는 남자의 등을 보며, 손에 들린, 이제는 무의미한 파편 조각이 되어버린 것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붙이거나 맞출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옛날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은 이제 복구할 수 없는 손실이 되었으니까.
"왜 깨트렸지?"
"...응?"
잠시 대답이 늦었다. 지나칠 정도로 넉살이 좋은 평소와는 다른 미묘한 그 간격이, 세츠나에게는 돌처럼 단단한 확신으로 자리잡았다. 아니, 확신이라면 아까부터 이미 충분히 하고 있었지만.
"네게도, 의미가 있는 물건이었나?"
"무슨 소리야? 어이, 그런 물건은 어디서건 팔아. 시즌이면 어디서나 헐값에 판다고. 미안하긴 한데,"
"그의 것이다."
등 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지금 표정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 그 미소가 잠시 흔들렸을 것이라고, 세츠나는 확신했다.
"그가 준 것이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의 기념이라면서."
"...형이? 이거 두배로 미안한걸. 그래도 준 사람의 동생이 깼으니 좀 봐주라."
얄밉도록 깔끔하게 정리해 내고 이 쪽을 보는 얼굴에는 한치의 동요도 그림자도 없다. 애시당초 세츠나 쪽이 그런것을 기대하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부드럽고 예의바르고 밝은 얼굴이었다. 오히려 상쾌해 보일 만큼.
"엇...너!"
녹색 눈이 커졌다. 그러쥐었던 손에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흰 자기 파편에 피가 묻어난 것을 본 것이다.
"어이! 그러다 큰일난다!"
다른 듯 하면서도 같고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르다. 손을 펴서 들고 있던 파편을 남김없이 쓰레기 처리통에 넣게 하고, 지구중력이라 다행이라면서 손을 가져가, 지구 중력 하에서만 사용 가능한 세면대에 손을 가져가 재빨리 물을 튼다. 하지만 거기까지 뿐이다. 그곳에는 그가 자신을 보던 그 '시선'은 없다. 훨씬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혹은 교활한 무언가가 있다. 그 간격을 느낀 순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너희 세계의 예언자가 온 날이라고 들었다."
"어?"
잠시 무슨 얘기인가 갈피를 못 잡던 남자가, 간신히 대화의 가닥을 기억해 내고는 씁쓸히 웃는다. 지독히도 그와 닮은 얼굴로.
"뭔 얘긴가 했네. 예언자라...정확히는 구원자지."
"그가 왔는데도 왜 너희의 세상이, 아니, 우리의 세상이 이 꼴인지 물었다. 신은 없다고 했지."
"......그래? 그래서 형이 뭐랬어?"
"넌, 뭐라고 대답하겠나."
"글쎄, 세상을 망친건 구원자가 아니라 인간이야. 정도?"
적갈색 눈동자가 한동안 녹색의 남자를 응시했다.
"그렇군. 그와는 다른 대답이다."
"대체 형이 뭐랬는데?"
"가라."
문 쪽으로 다가가 버튼을 눌러 열고 라일을 바라본다. 그의 문명권에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서 배웠겠지. CB의 누군가, 혹은 '그'에게서. 라일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오케이, 나중에라도 그 답은 꼭 들려줘."
"....."
침묵을 형편좋게 수긍으로 받아들이는 버릇은 형제가 둘 다 갖고 있었다. 벗었던 옷은 아까 다 입었고, 적절히 우스꽝스러운 녹색의 볼레로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집어들고, 라일은 다시 한번 깨어진 물건의 운명에 대해 사과의 말을 가볍게 날리고 방에서 나갔다. 남은 건 묵묵히 이전의 대화를 회상하는 세츠나 뿐이었다.
신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소년에게, '그'는 난처한 얼굴로 웃어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자신의 사물함을 뒤져 도자기 천사를 꺼내주었다. 단지 동생이 생각났을 뿐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천사의 이름을 한 건담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소년에게, 나중에 그는 얘기했다. 신이 있건 없건, 우리는 구원을 바라고 있지 않느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피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아니, 어쩌면 정말 회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 건네준, 체온으로 따뜻해진 도자기 천사를 생각하면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세츠나는 얼기설기 응급처치된 손을 바라보며, '그'의 파편이 하나 또 없어졌다는 것을 떠올렸다.
"사람이 헤퍼서 말이지."
라일은 혀를 차며 방 버튼을 눌러 록을 해제하고 개인실에 들어갔다. 개인실에 따로 붙어 있는 샤워룸에 들어가 얼른 씻고 싶은 마음이 반, 그냥 적당히 푹 자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어쨌건,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그걸 주다니..."
그런 물건이었다. 처음 본 순간 진열창에서 반짝이고 있었고, 유순하고 상냥해 보이는 얼굴, 가볍게 모아쥔 손의 천사님에게 반해 용돈을 모았었다. 처음으로 '나만의 것'으로 갖고 싶던 물건이었고, 그래서 형 또한 그것을 점찍어놓고 돈을 모았던데다, 게다가 형이 먼저 다 모아서 사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엄청나게 화가 났었다.
처음엔 다짜고짜 주먹으로 대화를 시작했지만, 둘 다 다행히 쉽게 식는 성질이어서 곧 화해했다. 그렇게 갖고 싶다면 주겠다고 말하는 형이었지만, 라일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양보했었다. 라일에게 주겠다고 선언한 순간 그 천사님은 이미 라일의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걸 그리도 원하는 형에게 주는 것이 라일로서는 더 기뻤던 것이다. 주먹으로 시작해서 웃음으로 끝난 대화에 어머니는 한숨을 쉬고 아버지는 껄껄 웃었더랬다.
가족의 크리스마스, 그것을 주어버리다니.
그걸 또 가만 못 보는 자신의 어이없이 어린 에고에 피식 하고 웃으며, 라일은 적당히 푹 자기로 마음먹었다.
간만의 휴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