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XXXX <4>..
- 며칠 후, 톨레미 시뮬레이팅 룸.
"록온, 있잖아요-"
"음?"
다음 작전을 위해 작전 시뮬레이션을 맞춰보던 록온이 알렐루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즘들어 너무 개인적인 문제만 갖고 상담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 알렐루야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어물거렸지만,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궁금해하는 녹색 눈이 이미 눈앞에 있는 이상 물어보지 않을 수도 없다. 이, 이번엔 할렐루야의 말대로 해 보는 거다. 어제 말 반 욕 반으로 충고인지 훈계인지 야단인지를 해 준 반신의 지시대로 말이지.
"그러니까- 누가 절 좋아한다고 했어요."
"오, 그래? 알렐루야 인기 좋구나- 펠트? 아, 아니면 크리스인가-"
"아뇨! 그, 그런! 아무튼 좋아한다고 했다고요."
록온이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 '이런 이런, 이 형님이 다 상담해 주지' 라는 듯한 표정이어서, 알렐루야는 다시 한번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 알겠냐? 절대로 세츠나의 세, 자도 꺼내면 안돼.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문제에 있어서 가장 예민하고 날카로운 것이 할렐루야임을 알렐루야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설명해도 넌 못 알아먹으니까, 가서 그 살랑쟁이에게나 물어봐' 라는 것이 할렐루야의 말이었더랬지.
"응, 그래서?"
"그런데 그 때엔 제가 답을 못 했어요."
"여자아이에게는 그러면 안되지."
'여자아이는 아니고요...'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오려 했지만 다행히 멈출 수 있었다. 이쯤 되자 과연 안도하고 있는 것이 알렐루야 본인인지 아니면 할렐루야인지 헛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그땐 너무 당황했고, 또 왜 나에게 그러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답을 제대로 못했거든요."
"흐음- 그래서?"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화내더니, 이젠 그 애가 절 안 봐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어, 록온?"
알렐루야는 당황한 표정으로, 방금 옆 벽에 꽤 큰 소리를 내며 머리를 쿵 박은 록온을 바라보았다.
"제가 그 정도로 잘못한 건가요..."
"그, 그건 아니지만! 알렐루야, 너 그 애에게 뭔가 말했어?"
"아뇨, 그런 적은 없고요. 그냥 어느날 갑자기 절 밀치고 울면서 가더니 그 뒤부턴 절 안 보더라고요."
한숨을 푸욱 내쉰 록온은 대체 이 녀석이 열 아홉이나 먹는 동안 인간관계를 어떻게 쌓아왔길래 이 정도로 눈치 감각 제로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정도로 사람 마음에 대해 모르면 대체 어디부터 설명해야 알아먹을 거란 말인가....
"음- 그러니까 알렐루야. 그냥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네."
"네가 누군가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좋아한다고 말했어."
"...네."
...그리고 그 타이밍에 상상해 보려고 지나치게 노력하지 마! 순식간에 마치 극도로 어려운 수학문제라도 푸는 듯 괴로운 얼굴이 된 알렐루야를 바라보며 록온은 마음만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답을 안 했다고 생각해 봐."
"하지만 그건 왜 그런 말을 하는지조차 알 수가..."
"그런 건 상관없어. 좋아한다고 말하는건 좋아하니까잖아.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있어?"
"그렇지 않아요? 음- 강아지는 귀여우니까 좋아하고, 맛있는 것은 맛있으니까-"
"그래, 내가 말을 잘못했다. 알렐루야,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꼭 있어야만 하는 거야?"
"아-"
알렐루야는 순간 말을 멈췄다. 뭔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희미하지만, 아주 희미하지만- 단서를 잡은 듯 굳는 얼굴에 록온이 싱긋 웃으며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에는, 이 사람이 친절하니까, 착하니까, 멋있으니까 같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야. 보통은 그런 이유는 민망해서라도 잘 말해주지 않잖아."
"...민망한가요. 전 록온은 뭘 하건 침착해서 좋고 스메라기상은 가..."
텁. 가죽장갑을 낀 손이 알렐루야의 입을 막았고, 마침 브릿지에서 나와 이 쪽으로 다가오던 스메라기가 손인사를 하며 둘 옆을 지나갔다.
"응,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런 말은 본인이 못 듣는 데서 하자. 어쨌건,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건 상대가 자길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네가 그 마음을 받아줄 것인가라고."
"그렇다면, 제가 받아주지 않아서 상처입은 걸까요."
"네가 아무 답도 주지 않았다면, 분명 상처입었을 거야."
"저더러 네가 밉다고 했어요."
'네 녀석이 밉다!'고 외치던 세츠나의 얼굴이 떠올라, 알렐루야는 우울하게 답했다. 그 때 세츠나는 정말 상처받아 아파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사실 그 때 끝까지 쫓아갔어야 했는데...
요즘 세츠나는 트레이닝룸에도 같은 시간대에 나타나지 않고 고로 샤워실에서마주칠 일은 더더욱 없었다. 식사시간에 마주쳐도 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철저히 차가운 눈으로 무시하고만 있어서, 말을 붙여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네."
"에?"
어리둥절해 진 알렐루야에게 록온이 웃어 보였다.
"가능성 없는 상대란, 이 쪽에 대해 아예 무심하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야.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거든."
"무관심..."
"밉다고 말했다면 아직은 용서받을 수 있어. 가서 싹싹 빌어. 어, 제일 중요한 건데 그 고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가, 갑작스럽긴 했지만, 사실은 음..."
말하기 쑥스러워 제대로 말도 못하는 알렐루야를 보며, 록온은 다시 한 번 웃어주었다.
"뭐야, 좋아하고 있잖아? 그럼 가서 손이 발이 되게 빌어. 무신경해서 미안했다고 하고, 좋아하고 있다고 말해. 그리고 지금 나한테 말한 것도 다 말해도 돼. 음....스메라기상을 좋아하는 이유만 빼고."
여자애들은 그런거 싫어하거든, 하고 말을 맺던 록온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알렐루야에게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알렐루야, 세츠나 문제는 어떻게 됐어? 세츠나가 네게 사과했어?"
"아? 사과요? 세츠나가 왜 제게 사과해야 하는데요?"
"무슨 얘기야, 사람에게 그런 무참한 짓을 했는데, 미성년에 철이 없다고 해도 그건-"
마침 록온에게 한번 하려했던 얘기가 나오는 참에, 알렐루야는 반가운 기세로 재빨리 록온에게 얘기했다.
"아, 그러고보니 록온. 그 때 아팠냐는 말은 왜 물어봤어요?"
"어?"
"며칠 전에 말이에요, 제게 물어봤잖아요, 도장 찍는다는 말 들었을 때 아프진 않았냐고. 그게 고작해야 키스 정도라 아플 일은 전혀-...어, 록온?"
알렐루야는 깜짝 놀라 록온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벽에 머리를 찧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아예 엎어져 버린 것이다.
- 하, 할렐루야. 록온이 아예 엎어졌어. 어쩌지?
- ......냅둬. 지가 괜히 설레발 쳐놓고 저러는 건데.
"음...록온?"
한참 엎어져 있던 록온을 꾹꾹 찔러볼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참에 록온이 확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한번 놀란 알렐루야는 록온의 안색을 살폈다. 엄청나게 당황한 것 같긴 했지만 일단 쓴웃음이라도 짓고 있는 걸로 봐선 특별히 화가 나거나 알렐루야를 책망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거이거, 알렐루야. 아까부터 말하던 '여자애'가 혹시 세츠나냐?"
"아.......예."
크으, 록온은 아득해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이 놈의 급한 성격. 꽤나 고쳤다고 생각했는데도 가끔 튀어나오는 이 성급한 O형 기질 같으니라고. 한창 예민할 나이의 세츠나에게는 굉장히 큰 상처가 됐을 텐데, 이걸 어쩌나.
"그럼 너뿐 아니라 나도 사과해야겠구나."
"록온이 왜요?"
"아냐, 그럴 일이 있는데 알렐루야 넌 몰라도 돼.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했구만. 세츠나에게 우유를 드럼통으로 사도 모자라겠는걸."
"혹시 저 때문에?"
"아냐! 괜찮아.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그럼 세츠나에게 가서 잘 말해봐."
어쩐지 이번 상담은 제법 잘 끝난 것 같아서, 알렐루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일어나 세츠나의 방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가기 전, 록온이 지금 막 생각난 것이라도 있다는 듯 알렐루야를 불러세웠다.
"알렐루야?"
"예?"
돌아보는 알렐루야에게, 녹색 눈의 남자는 더없이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도장을 찍는다는 건, 널 너무너무 좋아해서 네게 '표시'를 남긴다는 뜻이야. 아주 옛날에 쓰던 말이라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말야."
뭐라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건 록온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돌아나온 알렐루야는, 분명 지금 자기 얼굴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말 그대로, 너무너무 뜨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