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오 막장패러디 - 사막전기
아라비아 반도의 한 구석에서, 건담 마이스터들은 완전히 분기탱천 모드인 티에리아를 제외하고 한숨을 푹 쉬고 있었다. 그 세츠나조차도 약간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고비사막에서 실패를 하고도 모자랐는지 각 군대의 물량공세는 이번엔 사하라에서 재개되었던 것이다.스메라기 리 노리에가의 새로운 작전이 베다의 승인을 얻었고, 마이스터즈는 일주일 뒤면 폐기처분 될 컨텐츠를 단지 중역진에게 보여주기 위해 날밤까는 프로그래머의 심정으로 지구로 내려갔다.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는 티에리아를 제외하고, 그들의 정서는 똑같았다. '우리가 왜 또 이 삽질을?'
간만에 담합...아니 단합된 마음으로 "이번엔 좀 잘 튀어보자"고 작심한 마이스터들. 그런데, 상대도 "이전엔 꼭 잡아보자"고 마음먹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역시 몇시간 동안 고생 고생 생고생을 하다 갑자기 몰아닥친, 아라비아 반도 역사 70년간 없었던 모래폭풍. 24세기의 무안단물 GN입자를 사용하던 건담 외 거의 모든 전자기기들이 모두 오작동을 일으켰고 시계는 제로가 되어, 다국적군은 우왕좌왕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간신히 빠져나와, "미션은! 보고는! 귀환은! 이 죽어마땅한 것들!" 운운하는 티에리아에게 "그러다 탈취당할래?" 라고 상냥하게 윽박지르며 건담을 모래바람의 도움을 빌어 모래 속에 감추어 둔 것까진 좋았지만...
"물은?"
"아마 사흘쯤 버틸 수 있겠어요."
마이스터들은 물론 오지훈련도 어느정도는 받았고, 개인들이 각자 알고 있는 사실도 있다. 저기 세츠나부터 이미 물을 단번에 삼키지 않고 침착하게 입 안에서 찬찬히 굴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 세츠나의 외모를 볼 때 아마 그야말로 이 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카나트라도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응, 오아시스까진 바라지 않지만요."
"...온다."
세츠나가 문득 던진 한 마디에 마이스터들은 모두 긴장했다. 온다고? 무엇인가, 혹시 다국적군의 정찰기가 모래폭풍이 멎었다고 조사하러 온 것이라면...
"아무것도 없잖아?"
하늘은 아까까지의 폭풍이 거짓인듯 그저 쨍 하고 맑을 뿐이다. 다들 의아해 하며 세츠나 쪽을 바라보았을 때, 세츠나가 손을 들어 지평선쪽을 가리켰다.
"말, 사람. 다수 접근중."
다들 세츠나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지만, 저격수의 눈을 갖춘 록온의 눈에도 희미한 구름 외엔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세츠나, 역시 사막의 종족인가! 어느덧 드디어 마이스터들의 눈에도 검은 점들이 보일 무켭, 세츠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국적군은 아닌 것 같아. 무기를 보니 이 부근의 베두윈 부족 같다."
"그렇다면 구조를 요청해 볼 수도 있겠군."
"...아마도."
사막에서 발견된 사람에 대한 베두윈의 호의는 유명했다. 적어도 그 사람들이 그들의 적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들의 물을 훔치지도 않았다면 확실히.
말탄 베두윈들은 어느새 마이스터들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었고, 이제 마이스터들은 그들의 터번과 사막부족 특유의 넓고 검은 옷자락, 그리고 구식 소총과 허리에 찬 눈부신 단검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이 쪽을 경계하고는 있었지만 적어도 해칠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 중 척 봐도 다른 말들에 비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백마를 탄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 남자들의 지휘자인듯한 그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제끼자, 강렬한 인상의 회록색 눈동자와 붉은 수염이 드러났다.
""....!!"
갑자기 세츠나 몸의 태세가 달라졌다. 긴장으로 팽팽해진 것이다.
"세츠나? 왜 그래?"
"...사셰스..."
의미모를 이름에 마이스터들은 다들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사셰스? 세츠나가 알던 사람 이름인가?
"세츠나? 설마 아는 사람이야?"
"...모르겠다. 얼굴은...얼굴은 거의 같은데 느낌이 달라."
얘기하는 사이 그 남자는 매우 거만한 태도로 마이스터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눈은 티에리아의 얼굴, 알렐루야의 몸을 스륵 훑고 지나갔으며 (알렐루야 뒤에 몸을 숨긴 세츠나는 일단 무시하고 넘어갔다.) 마침내 록온에게 와 닿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뭔가 감정하는 눈으로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이 영어를 알까? 혹시 세츠나가 통역을 해 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록온이 입을 열려는 순간. 약간 이국적인 액센트의, 의외로 유창한 영어가 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막의 선물이군. 나 "은혜로운 카심"은 손님을 접대함에 소홀함이 없지."
티에리아와 세츠나를 제외한 마이스터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어진 말에, 모두는 이 뜨거운 사막의 기후에도 불구하고 매우 시원한 얼음 조각상이 되었다.
"미인이 셋이나...그대들의 소유주는 없는가? 없다면 내가 거두어드리지. 헌데 만일 주인이 있다면, 난 그대들을 그에게서 백마 열 필을 주고 사고 싶소."
"뭐...뭐라고!"
"호오, 자존심이 높군. 무려 백마 열 필인데도 그 아름다움에 상대가 안 된다고 여기는 건가? 그렇다면 희지 않은 말 다섯필을 더 얹어드리지. 모두 훌륭한 말들이오. 나 카심은 아름다움에 가치를 매길 줄 아는 남자고, 그대들의 미모는 그 정도 가치는 된다고 생각하오. 그런데..주인은 없는 건가?"
거만하게 웃던 남자의 회녹색 눈에 서서히 무언가가 맺히기 시작했다. 살기와는 다르되 못지않게 강렬한 것, 아무리 보아도 욕망의 눈빛이었다. 록온은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이 생각지도 못한 폭탄발언에 어이가 없어졌는지 멍한 표정일 뿐이었다. 아니, 안돼. 지금 뭔가 대응을 하지 않으면 베두윈 캠프에 끌려가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은 이미 저 인간에게 "남의 소유물"로 찍힌 모양인데, 그걸 부정하고 얘기하면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기나 할까?
"음...저..."
"내가 소유주다."
.....어엉? 록온은 깜짝 놀라, 어느새 알렐루야 뒤에서 앞으로 나선 세츠나 쪽을 보았다. 소년은 전혀 농담도 장난도 아니라는 듯 알레루야 앞에 당당히 버티고 서서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다른 마이스터들도 영 황당해서 그런지 굳어버린 가운데, 카심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남자는 날카로운 눈으로 소년을 노려보았다. 세츠나의 나이가 겨우 16세임을 감안하면, 진지하게 대우받기는 커녕 오히려 악효과가 나는 것은 아닐까? 록온이 나서서 뭔가 말하려던 찰나.
"이 녹색 눈 미인이 네 거라는 건가?"
"그렇다."
진지하게 상대하고 있어?! 아무래도 나이나 외견보다 태도나 종족이라도 보는 것인지, 카심은 세츠나를 록온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은 남자의 자존심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아, 세츠나, 저기"
"미인이지만 대가 센 모양이군. 남자끼리의 대화에 끼어들다니."
어이, 그렇게 말한다면 이 쪽도 남자입니다만?
"난 원래 자유로운 가풍을 선호한다."
대화가 이쯤에 이르자 이젠 록온은 물론이고 알렐루야도 티에리아도 할 말을 잃고 경악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냐, 이슬람 문명권은 분명 이렇지 않았어. 이전의 아자디스탄도 이렇게 막장은 뭔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사막은 다른가? 아니, 베두윈은 오히려 더 점잖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세츠나는 왜 저 녀석이랑 말이 통하는 거지? 그렇게 다들 패닉에 빠져있는 동안 대화는 점점 더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쨌건 그 녹색 눈은 그렇다면 포기하기로 하지."
"감사한다."
"그럼 저기 육체파와 피부 흰 미인은? 저 둘이라면 백마 다섯필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데."
"안된다."
"욕심이 많군, 그렇다면 한필 정도는 더 얹어줄 수 있지."
갑작스레 거래의 대상이 된 두 명은 자신들의 정신영역을 아득히 넘어가는 이 대화의 양상에 망연자실한 채 세츠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티에리아가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린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겠지만, (카심이고 뭔심이고, 죽어 마땅하도다!) 오히려 그 편이 더 사태를 악화시키는 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은 세츠나와 카심의 대화가 좀 제대로 끝나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다섯필을 얹어준대도 안된다."
딱 잘라 선언하는 세츠나의 말에, 족장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이쯤 되면 한번 물어봐야겠군.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나 카심은 사막의 손님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손님 대접을 즐기지만, 이렇게까지 거래에 응하지 않는다면 합당한 이유가 아닐 시엔 그대들을 손님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소."
사막에서 구원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표백된 머리 속에서도 이거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한 록온이 슬슬 지참하고 있는 권총 쪽으로 생각을 옮겼을 때, 세츠나가 당당히 말했다.
"예언자는 넷까지 허락하셨다."
......네? 세츠나님?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이 셋은 모두 내 사람들이라 넘길 수 없다."
록온은 그대로 사막의 모래에 머리를 박고 싶은 심정이 되었고, 티에리아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하얗게 질린채 '네놈...네놈...베다...숙청...네놈' 만 뇌이고 있었고(제대로 된 문장으로 구성한다면 어떤 내용이 될지 빤히 보이는 말이다.), 알렐루야만이 그대로 모래 위에 엎어져 정말로 모래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도...도와줘 할렐루야...살려줘...' 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만 머리가 묻힌 모래바닥 위에 점점히 떠돌고 있었다. 이 참상을 앞에 놓고, 세츠나는 당당히 카심을 노려보았다. 록온도 카심을 바라보았다. 이걸 믿어달라고 해야 하나 말아달라고 해야 하나. 믿으면 그걸 믿냐고 항의하고 싶은 심정이었고,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 당장 베두윈의 노리갯감이 될 위기이니 그러라고 할 수도 없고, 대체 이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한동안 세츠나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던 카심이 파안대소를 했을 때, 록온의 심장은 순간 입까지 튀어올랐다.
"으하하하하! 대단한 사내로군 자네는! 그 나이에 이런 미인 셋을 거느리다니 알라께서 그대를 축복하신 것임에 틀림없어. 자네같은 사내를 만난 것 만으로도 나에게도 그 복이 옮겨왔으면 좋겠군. 자, 그럼 다들 이리 오시오! 오늘 저녁 그대들은 카심의 만찬을 맛보게 될 것이오!"
믿냐? 넌 그걸 믿냐?! 졸지에 "세츠나가 거느린 3인의 미인"이 되어버린 마이스터들은 그래도 일단 살아야겠기에 베두윈들과 함께 사막의 어디론가를 향해 낙타를 달렸다. 사실은 세츠나 외에는 아무도 낙타를 탈 줄 몰라서 세 명은 각각 그나마 편한 앞자리에 얻어타야만 했지만, 아무튼 낙타를 타고 내달렸다. 며칠만 지나면 어떻게든 모함에 연락을 취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셀레스티얼 빙 쪽에서 어떻게든 정리를 해 줄 것이다.
어떻게든 당면한 문제만을 생각하려 애쓰며, 마이스터들은 열심히 지평선을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