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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XXXX <3>
"그러니까, 세츠나."
록온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에게 대체 어떻게 얘기를 꺼낼까 다급하게 고민해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왠만한 얘기는 무리없이 끌어내고 마무리하는 것이 자기 장점 중 하나라고 나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것만은 영 힘들었던 것이다. 상대가 성년의 남자였다면 오히려 미성년의 상대에게 몸으로 밀어붙여 의사에 반해 행동한 것에 대해 일갈하며 매우 쉽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지만, 상대는 한창 자라나는 사춘기 소년이다. 무엇보다 성년이 미성년에게 성적 행동에 대한 소재로 프라이버시한 얘기를 쉽게 꺼낸다는 것부터가 좀 무리다. 평소 상담도 많이 들어주고 했으면 몰라도 영 그런 것도 아니고, 대뜸 야단치며 어른 행세를 하기에도 곤란한 것이다. 그러나 사안은 사안이지 않은가!
"무슨 일인가, 록온 스트라토스."
무덤덤한 적갈색 눈동자가 록온 쪽을 바라본다. 미션 때에도 그렇지만 이 소년의 반응이란 늘 의외다. 자, 이제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잠시 생각하던 록온은 일단 직구 승부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음, 알렐루야의 일에 대해서 말이야, 그래도 되는 건가 묻고 싶어져서."
"알렐루야 합티즘?"
흠칫 하는 반응을 보니 역시 일이 있긴 있었구나. 록온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이 시대의 청소년 성교육, 혹은 베다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장탄식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을 이었다.
"내가 추궁해서 얘기 들었어. 합의가 아니었다면서."
"...알렐루야 합티즘이 그 얘기를 남에게 했단 말인가?"
잠깐만 세츠나군, 거기서 남이라고 하면 나름 평소 친한 사람으로서 상처받지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록온은 다시 사태에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 세츠나의 얘기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합의가 아니었다'는 점은 생각지도 않고 '그 얘기가 남에게 누설되었다'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남에게 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잖아. 합의 없이 그렇게 행동하는게 말이 돼?"
"내겐 중요하다."
나름 진중하게 따져물었건만 세츠나는 어째 영 딴소리만 할 뿐이었다. 록온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상을 같이 하고 있는 건담 마이스터에, 나이도 어리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라는걸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도 좀 궁금할 정도로 정서가 메말라 있는 소년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심한 것 아닌가.
"세츠나, 진지하게 묻는 거야. 그럼 알렐루야 합티즘의 인권은 어디로 가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나?"
"난 알렐루야 합티즘의 인권을 무시한 적 없다."
"......의사도?"
"......"
순간 세츠나가 멈칫 하는 것을 알아챈 록온의 말투가 더욱 엄중해졌다. 여기까지 진행된 다음에야 상담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야단치기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정도로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고 있다면 야단맞아야 싸다. 아니, 만일 세츠나가 평소 조금만 더 뻔뻔한 녀석이었거나 가식적인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쯤 록온의 주먹에 얼굴이 아작나고 있을 터. 하지만 록온은 알고 있었다. 세츠나는 그럴 녀석은 아니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분명히 잘못된 점을 제대로 알려준다면, 이 녀석은 그걸 수정할 수 있다. 그럴 나이이기도 하고.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 곧 인권을 무시하는 거야. 물론 미션같이 중요한 일 앞에서는 우리 의사를 좀 접고 들어갈 수고 있고, 우리 일이라는 게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만큼 인권이 무시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미션 외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확실히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거야. 알렐루야는 의외로 잘 넘기고 있지만, 그거야 솔직히 네게 뭘 당했는지에 대한 인식조차 확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거고. 그거 그렇게 넘어갈 일 아니다."
"그 녀석이...싫다고 했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깜짝 놀랄 정도로 풀이 죽어 있어서, 록온은 암담한 심정이 되어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적어도 희망은 있다. 저렇게 풀이 죽은 것은 역시, 약간이라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다는 것일 테니까. - 물론 이것은 말도 안되는 오해였지만 - 적어도 자기 잘못을 알았다면, 이제 남은 것은 알렐루야와 세츠나가 마이스터로서 잘 지낼 수 있도록 확실히 사과하고 일을 마무리하는 것 뿐이다. 다행히 알렐루야는 깊이 상처받지 않은 것 같으니까.
"싫다고 직접 말한 건 아니야. 그래도 가서 사과 정도는 해."
"...싫다."
"세츠나!"
록온은 깜짝 놀라서 세츠나를 바라보았다. 아까까지의 풀죽은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세츠나의 얼굴은 다시 평소와 같은 단단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아니, 훨씬 차갑게 굳었다. 설마...화 내고 있어?!
"이건 사과할 일까진 아니야."
"세츠나, 이제껏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런 소릴!"
"무슨 소리냐, 사과해야 할 것은 알렐루야 합티즘이다!"
세츠나의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전투 때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의 살기까지 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록온은 그대로 이를 악물었다. 네녀석, 그렇게는 보지 않았는데!
퍽 소리가 나고, 세츠나는 어른의 힘에 의해 날아가 말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아무리 건담 마이스터라 해도 16세 소년이 어른이 제대로 힘을 넣어 휘두르는 펀치를 받아내긴 힘든 것이다. 아니, 그런 와중에도 상대 나이를 생각해 아예 전력으로 펀치를 뿌리지 않는 점이 록온의 물렁함이긴 했지만.
"가서 사과해. 그렇게 사람 함부로 대하는 거 아니다, 세츠나. F. 세이에이."
낮은 음성으로 무겁게 말하는 어른의 음성에는 평소에는 찾아보기 힘들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삑 소리가 나고, 록온이 밖으로 나가버린 뒤에도 세츠나는 벽에 기대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세츠나는 한참동안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 그 선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지만 않았다면.
"이 쪽에 뒀던가...어, 세츠나?"
하필이면 이런 때에! 세츠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필이면 지금 둘도 없이 원망스러운 상대의 투명한 회색 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담고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세츠나는 분노와 배신감과 그 외 도대체 무엇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을 담아 알렐루야를 노려보았고, 알렐루야는 세츠나의 눈에서 방금 떨어져 나온 반짝이는 것을 보고 경악하고 있었다.
"세츠나? 무슨 일이야? 괜찮...!!"
번개같이 벽을 차고 이 쪽으로 날아오는 바람에 세츠나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게 된 알렐루야는 그대로 선실 문에 등을 호되게 부딪쳤다. 아마도 지구에서였다면 충분히 감당해냈을 무게와 힘이었지만, 무중력에서는 이 쪽이 버티는 힘도 많이 약화돼 버린다. 등의 아픔에 눈살을 찌푸리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던 순간, 다시 한번 세츠나의 입술이 알렐루야의 입술에 와 닿았다. 아니, 이가 와 닿았다. 양 어깨를 붙잡힌 채, 알렐루야는 거의 물어뜯기는 듯한 아픔에 눈살을 찌푸리며 키스당했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왜 이러는 거야 세츠나? 어떻게든 물어보려고 힘껏 뿌리쳐 내자 이제는 거의 빨간 색으로 보일 정도로 분노 가득한 적갈색 눈이 시선에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네 녀석이, 네 녀석이 밉다!"
"세츠나?!"
삐릭, 하고 선실 문이 열렸다가 금방 닫혀 버렸다. 입술이 따가워 손가락으로 쓸어보자 한 군데가 터졌는지 살짝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갑작스런 키스의 아픔보다도 방금 그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밉다고? 내가 밉다고? 어째서? 왜 그때와는 정 반대의 얘기를 하는 거지, 세츠나는?
눈앞에 흘러가는 무언가가 그제서야 알렐루야의 눈에 들어왔다. 아까 보고 놀랐던 바로 그것.
무중력 공간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물방울이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
요즘 건담필신님이 강림하셨는지 미적미적하던 글들이 술술 나오네요.
(얌마 카데트블루는 언제 낼 건데. 10월 전에는 써야 하잖아!!!!!! 니가 인간이냐?!) <- 죄송합니다 양심의 소리입니다 OTL 죄송죄송죄송죄송 ㅠㅜ
다음에 올릴 글은 무려 세츠수........(아니 이 글 말고요)...하지만 그 남자에게라면 세츠나라고 해도 별 수 없더군요. ...21세라면 좀 다를지도 모르지만....
아참, 중간의 대사 하나는 오마주입니다~ 무엇의 오마주인가는 비밀입니다~
그리고 이 글의 장르는 알콩달콩 러브 코미디입니다. 믿어주세요~
덧. 쓰고나서 한참 일하다 가 보니 이 글의 영감을 그림으로 제공해 주신 모 님께서 거의 준 잠수선언을...끄아악 OTL 이지만...예 납득갑니다 ㅠㅜ
푹 쉬시고 재밌는 시간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