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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영 엉뚱한 것 같지만 다 연결되니까 일단 안 도트리슈, 유럽에서 팔이 제일 아름다웠다는 왕비언니의 배경부터 살펴봅시다. 이 언니가 왜 그리 추기경님과 서로 못 잡아먹어 아득바득 다정한 사이가 됐는지 말입니다. 안 도트리슈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아가씨로,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펠리페 3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의 딸입니다. 즉, 젊은 왕비는 합스부르크가의 일원일 뿐 아니라 스페인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온 셈인데, 당시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은 전부 합스부르크 거였고, 이 얘기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와 북구 나라와 아예 저 먼 동유럽을 제하면 유럽땅이 전부 합스부르크 거였다는 얘기가 됩니다.

안 도트리슈. 솔직히 머리가 좋아보이진 않아요 -_-
그녀가 시집온 왕인 루이 13세는 사실 엄마 마리 드 메디시스의 그늘에서 독립하기 전이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앉혀놓고 권력을 휘두르던 마리 드 메디시스 밑에서 프랑스의 귀족들은 왕권을 위협하며 지들 맘대로 멋대로 나라를 휘젓고 있었습니다. 마리 아줌마가 조피마냥 강력하게 왕권을 세웠으면 모르겠는데, 이 아지매, 자기가 메디치 가문 출신이라 그런진 몰라도 귀족들의 전횡을 막기는 커녕 부패할대로 부패해 난리도 아니었죠. 그리고 그 부패가 불러온 각종 약탈과 협상에서 협상가와 중재자로서의 실력을 발휘하며 차근차근 성장한 것이 리슐리외입니다.
그래서, 아직 마리가 프랑스를 호령할때 리슐리외와 안느는 재미있는 관계를 맺게 되는데, 갓 시집온 어린 왕비의 지도신부를 당시엔 아직 추기경이 아니었던 리슐리외가 맡게 되지요. 아마 이때에도 둘이 잘 맞았을까는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단순하고 멋대로에 가끔 비밀 취미에 열중하는 기질이 있는 안느와 학구적이고 꼬장한데다 몸을 혹사해 가며 부지런한 타입인 리슐리외가 잘 맞았을 것 같지는 않아요. 아마 철없는 왕비 덕에 지도신부로서 마음고생이 꽤 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적어도 이때 둘은 정치적인 입장은 비슷했습니다. 둘 다 가톨릭이었고, 둘 다 마리 드 메디시스가 택한 사람들이었으며, 한쪽은 스페인의공주였고 한 쪽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협력이 진심으로 나라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리슐리외 추기경, 척 봐도 꼬장하죠>.< 붉은 망토 사이로 비치는 흰 레이스가 포인트.
그러나 이 둘의 입장은 향후 몇년 뒤 예전에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달라져 있게 됩니다.
일단, 엄마가 골라준 신부감을 루이 13세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슬프게도 이 아저씨는 서민적이고 당찬 아가씨를 좋아했는데 안은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너무 나서는 엄마를 가진 아들이 흔히 그렇듯 루이 13세는 대단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타고 났는데, 신부가 너무 예뻐서(......) 바로 옆에 있어도 제대로 말도 붙이지 않아 부부사이는 지극히 썰렁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루이 13세가 엄마품에서 벗어나 엄마를 실각시키고 직접 정치를 하게 되었을 때에는 아예 왕은 왕비를 상대도 하지 않았고, 둘 사이엔 자식조차 없어서 왕비의 입지는 더더욱 약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단순한 두뇌를 가진 수많은 여인들이 그러듯, 안느는 홧김에 바람을 피웁니다(......)
한편, 리슐리외는 안느가 저렇게 뻘짓하는 동안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합니다(...) 마리 드 메디시스의 섭정정부가 무너지면서 공직에서 잘리거든요. 졸지에 일개 주교로 떨어져 도망까지 갔어야 했는데, 우스꽝스럽게도 역시 정신적으로는 약골이던 루이 13세, 섭정 자리에선 물러났지만 맨날 자기한테 딴지거는 무서운 엄마를 달래기 위해 "엄마, 이거봐. 엄마가 좋아하던 사람들을 불러왔어요" 라고 하며 마리 드 메디시스파 사람 몇몇을 중용하는데, 그 사이 리슐리외가 끼어있었던 겁니다. 반색을 하며 당장 루브르로 돌아온 리슐리외씨는 일단 마리 메디시스 밑에서 그녀를 위해 일하지만 국왕과 모후 사이의 중재 역을 하며 슬슬 국왕 쪽으로 붙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마리 드 메디시스는 궁에 복귀, 그리고 리슐리외는 무려 마리 드 메디시스의 강력한 추천으로 추기경이 되지만 글쎄...뭐, 몇년 뒤의 마리는 "리슐리외"라는 이름만 들어도 반쯤 발작상태가 될 지경이었다니 말 다했지요. 인생 첫 열차 갈아타기는 순조로웠던 셈입니다.
이렇게 정치적 열차를 마리 드 메디시스 호에서 루이 13세 호로 갈아타며, 리슐리외는 여러 부분에 관여하며 크나큰 깨달음 세가지를 갖게 되는데, 이 세 가지 깨달음은 하나같이...아니, 사실 하나 빼고 전부 안 도트리슈의 마음에는 영 들지 않는 방향의 것이었습니다.
첫째, 그전까지는 스페인을 같은 종교를 믿는 든든한 동맹으로 여기던 리슐리외는, 정작 외교쪽 일을 하면서 잽싸게 유럽의 반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스페인/합스부르크가 더 강력해져 봤자 프랑스의 미래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반 합스부르크의 기치를 듭니다. 당연히, 합스부르크가의 딸이며 스페인 공주인 안이 그것에 찬성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둘째, 추기경은 무려 가톨릭의 최고위 성직자이면서도 종교보다 국익을 앞세워 모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즉,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가톨릭의 가장 강력한 보호자를 자청하던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나아가 교황청에 반기를 든 겁니다. 현대인의 관념으로는 지극히 합리적인 일이지만, 종교를 이유로 도시와 도시, 국가와 국가가 전쟁을 할 수 있던 시기에 추기경의 그런 행동은 같은 가톨릭 국가나 신도들에게는 교황청 등에 칼 꽂는 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열렬한 가톨릭 신자인 안 도트리슈가 이것을 가만 두고 볼 수야 없었죠.
세째. 추기경은 국내에 있어 왕권을 귀족과 교회의 권리 위에 두려 합니다. 왕에게 충실히 복종하기만 한다면 추기경에게 있어 가톨릭교도와 위그노는 동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왕권 강화에 대한 일이고, 왕비인 안 도트리슈에게 그닥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왕비는 그런걸 일일히 따지기에는, 위에 든 이유 때문에 추기경을 몹시 미워하고 있었고, 게다가 왕과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어서 왕권이 강화된다고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시어머니랑 손잡고 리슐리외를 몰아내려 들었겠어요.
아무튼 그래서, 결국 1620년대 대시 재회한 이후의 두 사람은 아주 아르릉 카르릉한 사이가 됩니다. 안 도트리슈는 시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시스와 함께 어떻게든 리슐리외를 몰아내려 들고, 리슐리외는 궁정 안의 적과 나라 안의 적과 나라 밖의 적을 다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지요.
삼총사의 목걸이 사건은 사실 리슐리외가 여러모로 최대의 위기상황일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재미있게도 소설에서 추기경은 내내 강력한 권력을 쥐고 삼총사의 숨통을 죄어오는 공포스러운 사람이지만, 실제 리슐리외에게는 1626년의 리슐리외 암살 음모부터 시작해서 특히 라로셸 내란을 거쳐 1628년부터 1631년 사이는 인생 최대 위기라고 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연속됩니다.
일단 삼총사에서 목걸이 사건의 배경이 된 버킹엄 공과의 연애, 아니 불륜 얘기부터 해 보죠. 이 당시의 안 도트리슈가 영국 귀족인 버킹엄 공에게 홀딱 빠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녀에게 있어 프랑스 궁정이란 기분나쁘고 있고 싶지 않은 곳이었음은 틀림없습니다. 왕은 무려 귀족아가씨도 아닌 시시껍절한 시녀들이랑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그 중 한 시녀에게는 무려 냉혹하게 차였습니다! 왕이!), 시어머니는 자기 편이라지만 세상 어느 며느리가 그리 시어머니가 맘편한 대상이겠으며, 그 밑의 총리라는 작자는...아마 고귀하신 왕비님으로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욕하고 싶었을 테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음모를 너무 열심히 짜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안 왕비는 버킹엄궁과 달짝지근한 연애만 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첩자 일을 하다 못해 급기야는 "진짜 음모"마저 꾸밉니다. 1626년, 마리 드 메디시스와 안 도트리슈, 그리고 무려 루이 13세의 동생 가스통과 왕가의 피가 섞인 대귀족 샬레 백작은 리슐리외 암살 음모를 짭니다. (저 넷을 모두 적으로 돌리고서도 총리를 해먹었다는게 참 어딜 보아도 대단합니다.) 아니, 말이 리슐리외 암살 음모지 사실상 반역으로서, 리슐리외를 죽인 뒤 왕을 몰아내고 안 도트리슈를 가스통과 결혼시켜 프랑스 왕으로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참 지금 보아도 어이가 없는 음모였습니다만, 사실 저 정도 사람들이 모여 한다면 그닥 실효성이 없는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리슐리외는 보기보다 권력을 많이 갖지 못한 총리였고, 늘 협상과 제도의 교묘한 운용, 절묘한 실용주의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던 사람이었으니 리슐리외만 없으면 왕을 제거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었지요.
그러나 이 사람들, 음모는 잘 세워도 실행은 잘 못한데도 무엇보다도 샬레 백작이 경솔하게 나불거려 전원 다 걸리고 맙니다. 자, 그래서 처벌은? 샬레 백작과 몇몇 주동자들은 추방되거나 처형되지만, 모후와 왕비와 왕제는 그 신분과 위치 때문에 모두 용서받습니다(......) 즉, 반역음모를 꾸몄던 중핵 중 제일 문제되는, "언제건 다시 반역/암살 음모의 핵심이 될 자들"은 그대로 남은 셈입니다.
리슐리외는 아마 그것에 대해 몹시 기분이 나빴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샬레 백작의 처형은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형 자체는 당연히 왕가의 피가 섞인 귀족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참수형으로 결정되었지만, 샬레 백작의 동료들은 처형을 늦추기 위해 사형집행인을 납치하는 수단을 씁니다. 처형을 늦춘 사이 어떻게든 왕에게 탄원하여 살려내려 한 거죠. 그러나 리슐리외 추기경은 즉각 사형수 한 명을 불러내 형을 감면시켜 줄 테니 도끼를 빌려 처형하라 명합니다. 샬레 백작의 목은 그런 일에 익숙치 않은 사형수의 손에 들린 통 만드는 손도끼로 30번 이상 찍히는 수모를 당하게 되고, 그 횟수가 스무번이 넘어갈 때까지 숨이 붙은 채 신음소리를 냈던 대귀족의 모습은 지금까지 기록에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그 뒤로 귀족들은 얌전히 사형당하게 되지요(......)
그런 음모를 무사히 넘기고도 위험은 계속되었습니다. 삼총사에 대해 다룬 영화 중 하나에선 추기경은 영국과의 전쟁을 원했고 왕비는 원치 않았던 것처럼 되어 있지만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삼총사도 참가하는 라로셸의 신교도 내란은 영국을 끌어들여 함께 싸우고자 했던 신교도들의 음모가 얽힌 일이었고, 안 도트리슈의 애인이었던 버킹엄 공은 신교도들을 돕기 위해 레 섬에 정박했을 정도였습니다. 1년간의 포위가 계속되는 동안, 프랑스를 누를 틈만 노리던 스페인은 겉으로는 프랑스를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뒤로는 오히려 라로셸의 위그노들을 지원하는 엽기적 행각을 선보입니다. 그리고는 프랑스 영향력 하에 있던 북부 이탈리아의 까살레를 먹어치우죠. 아마 이게 에코의 "전날의 섬"에 나오는 까살레 공방전일 겁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라로셸을 함락한 리슐리외는 바람처럼 알프스를 넘어(이 사람은 누구마냥 불가능은 없다는니 헛소리 안하고 단칼에 넘었습니다.) 까살레의 스페인군을 해치웁니다. 말 그대로 스페인을 엿먹인 셈인데, 라로셸 함락 이후 국내의 신교도들은 산발적인 저항 후 대부분 잠잠해지게 됩니다. 이 때 신교도들의 강제 개종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남기신 우리 추기경님의 명언이 있습니다. "개종은 무력으로 하는게 아니다. 하늘을 보고 하는 것이다."(이쯤되면 쓰는 놈은 빠순이 모드)
아참, 살짝 덧붙여 둡니다만, 이때쯤 28세의 이탈리아 젊은이 하나가 45세의 리슐리외에게 반하게 됩니다.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결심했다는 이 청년의 이름은 마자랭으로, 정식으로 리슐리외에게 부름받는 것은 몇년 뒤지만 전적으로 리슐리외를 따르기르 결심한 것은 일기에 따르면(...) 이때쯤이라고 하는군요. 아무튼 이 글에서 나중에 중요한 역으로 나오게 됩니다(웃음)
자, 어쨌건 넘어가서 산 넘어 산이라고 이뿐이 아닙니다. 까살레를 빼앗긴 합스부르크는 빡오른 김에 그간 프랑스와 국경분쟁이 있던 지역을 아예 점거해 버리고, 싸움은 합스부르크측에서 루이13세의 파문을 교황청에 공식적으로 요청할 정도로 거대해집니다. 그러자 프랑스 국내의 반 리슐리외 파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 선두인 마리 드 메디시스는 완전히 격분하여 국왕에게 직접 가서 눈물을 흘리며 저 악마를 몰아내라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리슐리외 추기경 인생 최대의 위기 그 자체라고들 평하는데, 어느정도인가 하면 국왕이 침묵하며 물러난 뒤 반 리슐리외파는 연회까지 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반역음모를 짰던 모후와 동생, 왕비를 처단하지 못할 정도로 우유부단하고 심약했던 루이 13세는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리슐리외에게 올인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원래 평소에 버벅이던 사람이 한번 이 악물면 무서운 법이죠. 그 날 저녁 왕은 몰래 사냥 별장에 리슐리외를 불러 얘기를 나누고, 다음날 모후는 이 일로 완전히 국외로 추방당해 11년 뒤 쓸쓸히 죽게 되고, 왕제 가스통은 참수형을 선고받은 뒤 잡히기 전에 잽싸게 엄마랑 같이 도망갑니다. 그리고 리슐리외는 그때야말로 전권을 쥐게 되지요.
그럼 안 도트리슈는? 그녀는 버킹엄과 바람을 피워 프랑스 왕실을 망신시키는 한편 반 리슐리외 음모를 짜다 실패하고(...) 결국 리슐리외가 푼 첩자에게 계속 감시당하다 나중엔 숨겨들고 있던 쪽지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합니다(웃음). 이걸 왜 수모라고 부르느냐 하면, 그 쪽지가 그녀의 가슴에 달린 코사지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죠. 언뜻, 그 코사지를 잡아뜯어(! ) 쪽지를 빼앗은 사람이 마자랭이었다는 글을 읽었던 것 같은데, 이건 확실치 않으니 넘어갑시다. 야사는 야사로 남겨둬야죠.
그래도 안 도트리슈는 대단한 여잡니다. 모후가 쫓겨나고 왕제가 사형선고를 받는 와중에서도 계속 왕비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왕은 역사 기록에 남을 정도로 그녀를 냉대했고 부부사이는 얼음장 같았지만요. 아마 리슐리외에게 있어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다음의 골칫거리는 안 도트리슈가 아니었을까요? 머리도 나쁜게(...) 떨어져나가질 않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몇년 뒤, 전권을 잡은 추기경은 도대체 당신 위장 취업한 신교도 아닌가 묻고 싶을 정도의 열성으로 몰래몰래 30년 전쟁에 뛰어든 신교국가들을 지원하다 결국 무능한(...) 신교국들이 수세에 몰리자 전격으로 전쟁에 뛰어듭니다. 물론 그렇게 한 이유야 간단하죠. 스페인도 합스부르크도 구교 국가들이고, 걔들을 지원해줘서 30년 전쟁이 합스부르크의 승리로 끝나면 프랑스는 육지 안의 포위된 섬이 될게 뻔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안 도트리슈에게 상관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합스부르크와 스페인은 자기 모국이고 가톨릭은 자기 종교인걸요. 그녀는 계속 모국의 사람들과 음모를 나누다 들켜 망신당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지냅니다.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함께 음모를 진행하려고 수녀원에 들렀다 들켜서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지요. 그러다 1638년, 아마도 리슐리외까지 경악할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예, 바로 그녀가 아들을 낳은 겁니다. 도대체 루이 13세가 어느날 술을 먹고 실수했는지, 아니면 방을 잘못 찾아갔는지, 아무튼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안 도트리슈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순산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일순간에 가장 충실한 프랑스 빠순이로 돌변합니다.
예, 정말입니다! 아들을 낳자마자 그녀는 즉각 자신의 아들이 프랑스의 왕이 될 것임을 알아차렸고, 자신을 남편이 냉대하거나 말거나 그녀의 찬란한 미래는 프랑스의 찬란한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두뇌 안에서 오랜 동면기간을 거친 뇌세포가 마침내 제대로 활동을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프랑스 사학자들은 안 도트리슈를 두고 남편 잘못 만난 여자라고들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녀가 일반적인 부부처럼 결혼하고 3년 안에 아들을 낳았던들 그 뭣같은 삽질이 계속되었겠냐는 거죠. 전형적인 데메테르 타입이었던 듯한 그녀는 즉각 프랑스를 향한 모든 음모를 그만두고 왕권수호를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다 하게 됩니다. 1640년, 또다시 아들을 순산한 그녀는 명실상부 프랑스의 제대로 된 국모로 자리잡았고, 여전히 남편과의 사이는 거지같았지만 아무튼 예전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누리게 되지요. 삼총사에서 보이는 안 도트리슈에 대한 그나마 호의적인 시각은 이것으로나마 가능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1642년 12월, 리슐리외 추기경은 자신을 향한 마지막 암살 음모를 물리친 뒤 결국 병으로 인해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1643년 5월, 마치 뒤를 따르듯(어이) 루이13세가 죽죠. 루이 13세는 죽을 때까지 거지같은 남편이었고, 안의 평소 생활을 생각하면 십분 이해할 수 있긴 한데 유언장에 안의 독자섭정을 막는 조항을 넣어둡니다. 그러나 동면에서 깨어난 뇌세포는 상당히 강력했고, 하여 안은 고등법원에 무려 압력을 넣어 그 조항을 무효화시키고 자기가 독자섭정을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전권을 리슐리외의 후임인 마자랭 추기경에게 일임하지요.
안 도트리슈와 마자랭은 루이 13세와 리슐리외만큼이나 서로를 신뢰했는데, 안 도트리슈의 화려한 행적이 있다 보니 요즘 들어서는 마자랭이 루이 14세의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막나가는 프랑스 궁정이라 해도 그건 좀 무리죠. 자기 애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만 있다면 루이13세가 안 도트리슈를 해치우지 못했을 리가 없지요. 게다가 일생동안 리슐리외 빠돌이였던 마자랭이 적어도 리슐리외와 왕이 살아있는데 왕비와 놀아날 정도로 간 부종에 걸려있진 않았을 겁니다. 리슐리외의 첩보기관은 상당히 뛰어났거든요. 그러나 솔직히, 섭정시대 당시의 안이 마자랭과 참 좋은 사이였다는 것에는 대략 다들 동의하는 눈칩니다. 아, 가톨릭 계열 학자들 빼고요(......) 아무튼 그녀는 자신의 모국인 스페인과의 전쟁도 불사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이죠.
대략 리슐리외와 안에 대한 얘기가 종막을 향해 달려가는군요. 그럼 왜 "네덜란드에서 삼총사를 뮤지컬로 만들었고 거기엔 라로셸의 전장/혹은 거기 임하는 추기경이 나온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냐고요?
네덜란드는 유명한 신교 국가입니다. 사실 이 나라는 일찍부터 신교를 믿을 자유와 자신들을 지배하는 합스부르크의 손에서 벗어나기를 강력히 원하고 있었고, 독립한 후에도 청교도건 위그노건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수많은 종교망명객들의 목적지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해, 프랑스에서 신교와 구교 사이에 전쟁이 터지고 신교도들이 도망가야 할 필요가 생길 때마다 네덜란드의 프랑스인은 늘어만 간 겁니다. 심지어 결국 안 도트리슈 섭정시대 이후 루이 14세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낭트 칙령을 폐기하자 수많은 신교도 부르주아들이 네덜란드로 도망가는 바람에 유능한 직공과 장사꾼들이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도망가 프랑스의 경제가 부실해진다는 푸념까지 나올 정도로요.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네덜란드의 제작자들이 묘사하는 라로셸에 임하는 리슐리외는 신교도들이 생각하는 전투적인 가톨릭의 모습 그대로입니다(아하하.; ) "좋은 위그노는 죽은 위그노"라는 구절에선 말 그대로 푸헙 하고 뿜었습니다. 아이고 추기경님, 고기님 블로그에서 보니 그거 부르실때 예쁘기는 보통 예쁘시지 않았습니다만, 이 라로셸의 전장은 사실 "위그노를 치러 가는 가톨릭 추기경"의 모습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거였다는 건 위를 보면 아실 거고요. 바로 도망친 신교도들의 나라에서 라로셸에 임하는 (사실 정작 30년 전쟁에서는 신교 편이었던)추기경의 모습을, 엄청 멋진 노래와 화려한 효과로 파팍 띄워주는게 재미있지 않을 수 있냐는 겁니다.
그리고 정작 신교도들에 대해 한번도 호의적이었던 적이 없었던 왕비는 그런 추기경에게 모진 음해를 당하는 불쌍한 귀부인으로 나오다니. 근데 네덜란드에서 만든 삼총사가 "리슐리외와 밀레이디 전"이라는게 또 재미있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