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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사학을 했다지만 전 기본적으로 과학도예요 ㅇ<-<
어렸을때부터 테스트를 하면 늘 이공계 인간으로 나왔죠. 어떤 테스트를 해 봐도 철저한 좌뇌우위타입이고, 분석적 사고에서 능력을 보이는 편인데, 태어나기 전에 그 대가로 뭔가를 지불해 버린 것인지 감정적인 부분, 혹은 [눈치]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된 거고(......) 옛날엔 더 심각했어요. 아예 "다른 사람 입장"이라는 것이 그 사람에게서 듣기 전에는 상상이 안 가는걸요.
그게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아서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모르는 겁니다. 저 사람이 내가 이런 행동을 했을 때 뭘 느끼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어요. 그래서 세계명작이나 각종 소설들을 미친듯이 탐독했죠. '타인의 반응'이라는 것은 제게 굉장한 탐구의 대상이었습니다. 몰랐으니까(......) 어렸을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니 잘못을 니가 몰라?"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 "내 기분을 좀 생각해 봐!" 라는 말에 대해 전 늘 답을 찾고 싶었어요.
아마 그건 제가 외동이라서도 있을 겁니다. '형제'가 없다는 것은 형제가 있는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인간관계 구축에 큰 손실을 가져와요. 집에 존재하는 것은 '부모님'과 '어른'뿐이고, 밖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그냥 '같이 뛰어노는 아이들'인 겁니다. 같이 놀면서 양보도 하고 타협도 하지만 생활에서의 배려와 감정적 교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있을 턱이 없잖아요. 그야말로 [동급의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감정적 데이터 부족 ㅇ<-<
같은 반 아이들이 제게 공부 잘 한다고 칭찬하면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면 되는데, 그걸 전혀 몰랐어요. 잘난척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나의 뛰어남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면 안된다는 생각에 얼굴을 굳히고 어...하고는 외면하는 애가 저였던 겁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참 당연하게도) 잘난척 한다고 전내 까였죠. 문제를 풀어달라고 하거나 가르쳐달라고 하면 제 딴에는 열심히 (참으로 이과답게도) 문제풀이에 미친듯이 열중해서 얘기해 주는데, 상대가 지금 감정적으로 "동급의 상대에게 공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자꾸 말해도 못 알아들으면 애답게 성질내고, 그럼 또 재수없다고 까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내 말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아무런 예측 가능 데이터가 없었거든요. 어른은 쉬웠어요. 부모님이 엄격한 편이었고 손님들이 가끔 오셨기 때문에 어른들에게서는 늘 요즘아이 같지 않고 어른스럽고 조숙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제 평소 모습을 아시는 부모님에게는 농담으로라도 얌전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제 모습에 굉장히 만족해 하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동급생, '형제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죠.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진솔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볼 아이들은 중학교 가서야 만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때 겨우 동급의 인간을 상대하는 스킬을 익혔습니다. 예, 무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싸움을 해도 내가 옳은 것일수도 있다"는 것을 체감했답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재미있게도 "진짜 친구"는 그때쯤 가서 생기더군요. 예, 나의 옳음은 관철해야 할 때도 있으며, 그 방법에는 상대와 충돌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거기 무조건적으로 죄책감과 죄악감을 느낄 필요가 없음을 체득한 순간 진짜 친구가 생겼다는건 정말 아이러니컬하지요. 하긴, 생각해 보면 친구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로 믿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 감정적 충돌에 있어 나자신을 무조건 죄악시 하지 않아야 진정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무리에서 벗어나 있어도 즐겁고 유쾌할 수 있으며, 세상에 나를 믿어주는 이가 있을 수 있으며, 내가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더라도 얼마든지 대립될 수 있는데, 즉 바꿔 말해서 나와 대립되는 사람일지라도 아주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지요.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결점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대부분은 참아넘길 수 있는 것이며, 가끔 머리끝까지 화가 날 때에도 그 사람은 아주 사랑스럽다는 것도 배웠고요.
예, 생각해 보면 제 대인스킬 성장은 다른 사람들보다 10년 이상 느렸습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생물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알고 싶어서 생물학을 전공하면서도 '사람의 반응'을 알고 싶어서, '생각'을 알고 싶어서 열심히 책들을 탐독하고 사람들을 관찰하고(말 그대로 이과적인 관찰) 끝내 '사람들의 생각들과 반응들은 수천년간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갔는가'를 전공하게 되고 말았죠. 심하게 얘기하면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던 파티마나 마네킹, 사이보그가 인간에 대해 공부하는 거나 별반 다를바 없었어요. 대부분의 제 글에서 등장 인물 사이의 감정적 이해보다 논리적 이해가 우선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각종 글에서 미스커뮤니케이션을 다룰 때, 전 남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쓰곤 하고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위와 같은 성장과정을 가진 주제에 전 고등학교쯤 때부터 "상담 상대"로 많이 쓰였습니다. (믿어지세요?) 나중에 제게 상담을 해 오는 분들과 찬찬히 얘기한 결과 알게 된 것은, 제가 말하자면 상담상대로 '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오버하며 자기편을 들어주지도 않고 상대를 지지해 주지도 않고 별다른 의견 없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거였어요. (당연하죠, 저로서는 처음 입력되는 데이터인데 뭔가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지금은 그래서 많이 다른 편입니다. 상대가 답을 원할때엔 최대한 경험데이터로부터 답을 골라내고, 아닌 경우엔 그냥 듣고 공감하죠.)
그런 상담들을 정말 많이 들으면서 전 또 사실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 생각, 논리, 아픔, 분노, 슬픔에 대한 엄청난 공부가 됐어요. 부모가 어떻게 했을때 아이들이 아파하는지, 형제가 어떤 일을 했을때 억울하고 슬픈지, 친구라고 믿고 있던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때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끼는지, 연애사는 뭐 말할 것도 없고요. 물론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심지어 각종 포털사이트의 자기신세 한탄하는 란도 꽤 들어가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전철이 달려가는 광경을 길에서 볼때 생각하곤 합니다. 저 안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삶과 감정과 반응이 담겨 있을까 하고요.
팬픽을 많이 쓰게 된 것도 어떤 의미, 사람에 대한 탐구와 공부였습니다. 캐릭터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각 캐릭터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반응해 보는 거예요. 물론 팬이니까 하는 일이지만 분명 저런 성격도 있는 일이었죠.
물론 기질이 어디 가진 않습니다. 전 지금도 철저한 공순이 스타일의 대인관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공돌 공순 사용설명서에 나와 있는, "연락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연락을 안 하고 있는 겁니다"라는 말은 바로 절 위한 말입니다(......) OTL 지금도 여전히 감정적으로 서투른 일을 저질러서 지적을 듣고, 대인관계에서 실수 많이 하고, 더듬 더듬 사람들에 대해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냥 공돌 공순 얘기들을 읽어보니 남 얘기 같지가 않아서 글 올려보는 것이지요. 저 같은 인간 중 개중 잘못 길을 들면 말해줘도 자기가 옳다고 우기면서 남 심리는 이해도 못하는 사람이 나옵니다만(먼산), 이공계 사람들이 사람에 대해 둔감한 건(무, 물론 대다수는 저보다 훨 낫습니다만) 사람을 싫어하거나 잔인하거나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뇌 내에 데이터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가 십중팔구랍니다. 약간의 공을 들여 데이터를 입력시켜주고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가르쳐 주면(그 사람에게 그런 수고를 할 만한 가치가 있을때 얘기지요 물론) 의외로 꾸준히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이쪽 사람들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