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
"어머, 예뻐라-"
톨레미 함내에서 여성의 탄성이 터지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해서 브릿지를 들여다 본 록온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건 뭐야?"
"브라이드 이번 부록이예요!"
3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결혼 잡지, 이런 걸 누가 보고 있었단 말인가? 설마 여기까지 배달 온 것은 아닐 테고-
"이전에 휴가 받았을 때 사 왔는데, 다음날 펠트가 응모 엽서를 넣었거든요."
재잘대며 설명하는 크리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옆에서 묵묵히 단말을 들여다 보고 있는 펠트의 얼굴은 언뜻 보면 무표정했지만, 조금, 아주 조금 상기되어 있다.
"그랬더니 이메일로 이게 전송됐지 뭐예요? 아유- 이뻐라."
사람들이 모여선 곳은 단말 앞. 들여다 보니, 꽤 세련된 웨딩드레스를 걸치고 면사포를 쓴 펠트의 사진이 보인다? 깜짝 놀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어딘가 사진 아귀가 어긋난 것이 보인다. 뭔가, 꽤 그럴 듯하게 들어맞고 있지만.
"간단한 카탈로그 프로그램이에요. 폰카로 사진을 찍어서 입력하면, 여러 디자인의 웨딩드레스를 맞춰볼 수 있는 거예요. 펠트, 이번엔 이걸로 해 보자."
"...으응."
정작 무표정하게 쑥스러워하고 있는 당사자보다도 크리스가 더 흥분해서 쾌활하게 떠들고 있다. 록온은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그러잖아도 평소에 "저렇게 에쁜 애가 왜 옷을 저렇게밖에 안 입는대요? 아무래 테러리스트라지만 저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라고요!" 라고 우겨대던 크리스다. 이런 프로그램을 얻은 김에 이것저것 인형놀이를 해 보고 싶은 것일 터이다. 아아, 정말이지 여자아이들이란...
"록온 스트라토스."
"응?"
-찰칵.
순식간에 브릿지에 침묵이 퍼졌다. 찍힌 사람은 록온, 돌아보는 순간을 노려 미처 피할 틈도 주지 않고 민첩하게 찍어버린 사람은...
"세...세츠나?"
스메라기 리 노리에가, 크리스티나 시에라, 펠트, 리히티, 장본인인 록온까지, 모두 깜짝 놀라서 세츠나를 바라보고 있다. 평소의 진지한 표정에서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세츠나는 천연덕스럽게 단말에 사진을 저장하고,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전송한다. 세츠나가 마침내 엔터키를 누른 순간-
"으.....푸하하하하하! 오오! 의외로 어울려!"
"어떡해, 록온, 이게 뭐에요-"
"안돼...나, 나, 나, 아직 숙취가- 아 배아파아-"
하필이면 돌아보는 바람에 몸을 옆으로 돌린 채 찍혀버렸다. 분명 장신에 남자다운 몸이었건만, 웨딩드레스 카탈로그 선 밖으로 거의 벗어나지 않아 제법 그럴듯하게 실루엣이 들어맞아 버린 것이다.
"어이어이, 세, 세츠나아?!"
"......"
"어떡해- 농담으로 티에리아 얘기는 했었지만-"
"록온, 축하해요. 5월의 신부-"
"뭐야, 이게? 이봐 다들-"
어이없이 당해버린 록온은 항의하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심지어 펠트조차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을 뿐, 어디에도 구원은 없었다. 남성동지들? 기대한 게 잘못이다. 현행범(?)인 세츠나는 그렇다 쳐도, 당장 리히티는 아예 엎어져서 얼굴을 파묻고 웃고 있다. 거기 너, 얼굴을 파묻고 있는거 혹시 찍히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겠지? 아니나다를까, 크리스가 환성을 올리며 카메라를 들어올리자 리히티의 등이 움찔 하더니 더더욱 고개를 파묻고 움직이지 않는다.
"에이, 리히티도 한번 해 봐!"
"알렐루야는? 응? 알렐루야는 어때?"
"스메라기씨 너무해-"
"전 닥터 모레노가 보고 싶은데-"
브릿지는 이미 폭소와 환성으로 대혼란. 일단 다음 희생제물로는 엎어져 있는 리히티가 점지된 듯 하다. 어떻게든 고개를 들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록온의 눈에,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스륵 나가 버리는 세츠나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라, 나만 당하게 하고 넌 도망가려는 거냐?
"세츠나? 세츠나-"
지구였다면 다리가 훨씬 긴 록온이 금방 따라잡았겠지만, 무중력인 톨레미 내부에서는 먼저 이동간을 잡은 사람이 이긴다. 간신히 따라잡은 곳은, 벌써 세츠나의 사실(私室) 앞이었다.
"세츠나!"
이동간이 뚝 멎고, 문 앞에 선 소년이 방 안으로 스륵 들어간다. 잽싸게 몸을 날리자, 아슬아슬하게 등 뒤로 문이 닫힌다.
"대체 무슨 일이야? 왠일로 그런 장난을-"
"아닌데."
"어?"
순간 말의 맥락이 끊겼다. 그 틈을 타고 세츠나의 목소리가 언제나처럼 단호하게 치고 들어온다.
"장난 같은 건 아니다."
"그럼 대체-"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자 옷이?"
"-신부 옷이."
붉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투명한 갈색 눈이 초록색 눈을 직시한다. 짓궂은 짓을 한 것은 붉은 눈동자의 주인이고 놀림받은 것은 초록빛 눈동자의 주인인데, 어째서인가 시선을 피하는 것은 후자 쪽이다.
"네 녀석 말야, 그런 말을 그렇게 뻔뻔스럽게 하지 말란 말야."
"사실이니까."
"보통은 6피트 1인치짜리 남자에게 신부 옷이 어울린다고는 하지 않거든?"
한숨을 푹 쉬자, 갑자기 세츠나가 팔을 뻗어 록온의 어깨를 잡는다. 어리둥절해져서 바라보자, 톨레미의 무중력을 이용해 어깨를 짚은 채 살짝 위로 떠오른다. 어느새 눈높이가 맞고, 얼굴이 가까워졌다가 한동안의 부드러운 접촉 후 거리가 벌어졌다.
"......"
초록빛 눈이 깜박였다. 붉은 눈은 이제 약간 높은 위치에서 이 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세츠나,"
"그런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준 건, 그 쪽이었는데."
"...그거, 비겁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시 입맞춰 올 때 허리를 잡아준 것은 록온이었다. 록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면사포를 걸쳤고 키스까지 했으니 이제 남은 건 부케? 이런 이런, 농담으로라도 허니문은 갈 수 없을 건데. 이 소년의 직선적인 감정에 어째 자신까지 휘말려 버린 느낌이 들어, 록온은 다시 스스로에게 웃음을 날려 주었다.
그 다음 키스는 조금 더 길었고 좀더 따스했다. 딱 소년의 체온만큼, 그리고-
-END
꽤 오랫동안 고민한 것에 비해 결과물이 신통찮은 듯 해서 죄송합니다.
자아, 다음 소녀 10제는 [백장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