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자고 있다. 흔한 일은 아니다. 적어도, 이 정도로 트인 장소에서 무방비하게 잠드는 것은 자신들에게는 정말 흔한 일이 아니다. 소년시절부터,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동중 선잠을 자는 경우는 흔해도 이렇게 경계없이 잠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 남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거는 자들은 언제건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면 일어날 수 있을 만큼만, 그 때 졸려서 뭐건 헛나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만큼의 깊이만큼의 수면만 취해야 하고, 늘 그래왔던 것이다. 세츠나 본인의 경우 건담을 타기 이전부터 본능적으로 그것을 배웠고, 심지어 톨레미에서조차 지나치게 깊이 잠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특별히 물어보거나 알아본 적은 없을지라도 다른 마이스터들 또한 그러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최고의 전사들이므로.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너무도 태연하게 깊이 잠들어 있다.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꿈도 꾸지 않을 정도의 고요한 수면이다. 게다가 숨소리도 거의 나지 않아, 문득 세츠나는 불안해졌다. 록온은 분명 잠들어 있다. 단지 잠들어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래도 너무나 두려워서, 죽음 같은 것은 너무나 많이 보았는데도, 그런데도- "...세츠나?" 문득 이마에 얹힌 손에, 록온이 놀라 눈을 깜박거린다. 오후의 것이라지만 분명히 깨끗하게 내리쬐고 있는 태양빛이 사정없이 눈을 찌르고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마에 얹힌 손, 분명 식은 땀에 젖어 있어서- 세츠나는 남자의 녹색 눈을 바라보았다. 아직 잠기가 가시지 않은 눈동자는, 그러나 분명히 살아 생생히 움직이며 자신의 것을 마주보고 있었다. 햇빛을 쬐었는데도 서늘한 이마가 슬쩍 움직이는 것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깨어났는데도 손을 치우고 있지 않아 의아해졌는지, 남자가 입을 열고 무언가 물어보려 한다. 그 전에 무언가 말해야만 한다. "세츠나?" "...시간이." "아...벌써 이렇게 됐구만. 깨워줘서 땡큐-" "별로." 정말로, 별로 감사받을 일은 아니다. 자신이 그러지 않았어도 그는 일어났을 것이다. 꼭 지금처럼 걸어가 뒤나미스에 탑승했을 것이다. 다시 손에 피를 묻히러 가기 위해, 언제나 그렇듯 짧은 휴식 뒤에 털고 일어나 유감없이 떠났겠지. 자신도 늘 해 온 일이었건만, 어쩐지 오늘만은 그 '움직임'이 유독 반가웠고, 그래서 그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위해 계속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쳐다봐?" "죽지 마." 록온이 멈춰섰다. 시선을 느꼈으면서도 돌아서지 않던 사람이, 그 한 마디에 멈춰서서 천천히 이 쪽을 돌아본다. 녹색 눈이 조금 커지고, 다시 작아진다. 웃어서. "무슨 소리야~ 세츠나." "죽지 마, 록온 스트라토스." 웃음이 얇은 얼음 가면처럼 굳어버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어차피 자신이 모르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았기에, 세츠나는 거기 신경쓰지 않았다. 부여받은 코드명에 어울리게, 그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이 순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단 한명의 사람 뿐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어. 난 악운에 강하거든." "죽지 마." 세츠나.F.세이에이는 너무나 작았고 록온 스트라토스는 너무 멀리 있었다. 멀리 있었기에 달려갈 수밖에 없었고 작았기에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얄미울 정도로 서늘한 체온은 어떤 온기도 전해주지 못했지만 애시당초 그런건 기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죽지 마." "...미안." 그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어디에도 없었다.
"-세츠나?" 이마에 얹힌 손이 따뜻했다. 세츠나는 두어번 눈을 깜박거리고, 버릇처럼 단번에 일어나 앉았다. "왠일로 그렇게 깊이 자? 미션 시간 다 됐다." 서늘하고도 다정한 초록색 눈이 이 쪽을 보고 웃고 있었다. 어째서인가 막막해져서, 무겁도록 가슴이 답답해져서, 이마에 얹혔던 손을 꼭 쥐어버렸다. 얇은 장갑 너머 느껴지는 생생한 체온이 멀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세츠나는 스스로에게 잠시 거짓말을 했다. 그런 것을 믿기엔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아왔기에, 믿지 않고 단지 거짓말을 했다.
<END>
산백합의 꽃말- 신성, 존엄, 죽음.
다음은 리린님이십니다. 키워드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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