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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밤중의 몸개그
분류없음 | 2008/05/26 02:40
원래 9시쯤 서류를 끝내고 가려 했습니다.

근데 서류가 의외, 오래 걸립니다. 계속 전해져 오는 소식에 침을 삼키며 광란의 키보드질을 해 보지만 그기어 완성됏을때 시간은 이미 11시 반...

상황이 계속 올라오던 곳의 덧글을 봅니다. 서울역에서 명동으로 빠졌다는 것까지 읽었습니다. 머리속에서 동선이 그려지고, 선의 끝은 광화문입니다. 좋아, 서울역부터 가 보자. 그 중간 어디쯤이겠지.

없는 돈이지만 택시를 탑니다. 서울역 좀 전에 내려서 걸어갔습니다. 조용합니다. 아뿔싸 내가 늦었구나...열심히 걸어갑니다. 시청 근처가 보입니다. 지나갑니다. 남대문도 한참 뒤입니다. 정신차리고 보니 명동입니다. 어라, 조용합니다. 명동성당 근처인가? 아닌 듯 합니다.

다시 한참 걸어 종로 쪽으로 가다가 에라 모르겠다, 택시를 타고 광화문으로 갑니다. 시간은 이미 12시 반, 광화문 옆길을 경찰 버스 두 대가 막고 있습니다. 내려서 일단 들어갑니다. 다가오는 경찰에게 환히 웃으면서 미안하다는 듯 물어봅니다. "여기 교보문고가 어느 쪽이죠?" "요기로 나가셔서 왼쪽으로 꺾으세요." 그러면서 들어갑니다. 버스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가자 전경들이 조로록 앉아 있습니다. 닭장차는 꽤 봤지만, 이렇게 많은 닭장차를 한 번에 본 기억이 좀 없습니다. 미 대사관은 닭장차 울타리에 둘러싸였습니다. 대로변에까지, 닭장차는 애벌레들마냥 꾸물꾸물 이어집니다. 살짝 들여다 보니 태반은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경복궁 쪽에 있나 싶었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P님에게 전화를 겁니다. "**게시판에, 지금 시위대 어디 있는지 좀 알려주세요" 전경들 귀에 안 들리게 조금은 소심하게 작은 소리로 말합니다. -지직거려요. 잘 안 들리네요.- 어라? 그럴 리가 없는데... 자리를 옮기니 잘 들립니다. 아무 생각 없이 통화를 하다가, 장소가 신촌임을 알았습니다. 어라라?! 예상한 동선과는 거의 정 반대입니다! 신촌? 이대? 거길 왜? 거긴 봉쇄당하기 딱 좋은 데인데? 다시 지직거립니다. 왜 이러지? 하며 주위를 본 순간, 흰 티셔츠에 진바지를 입고 내 앞에 선 스포츠형 머리를 한 남자, 그보다도 그 손에 슬쩍 들고 있는 무전기가 딱 들어옵니다. 전 저런 것을 11년전 본 적이 있습니다. 여대 앞에 주차된 자동차, 그리고 40대 남자 두 명. 손에 들린 접힌 신문지 사이엔 무전기가 들어있었습니다. [사복경찰!] 내가 본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무전을 하는 남자 뒤로 살짝 물러나 그늘에 숨습니다. 그리고 무전기 얘기를 하자 들으시는 분이 어이가 없어지신 듯 합니다.

어쨌건 시위대는 이미 신촌입니다. 기운이 쭉 빠집니다. 신발님이 간만에 무리하셨는지 발에는 물집이 난 듯 합니다. 일단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택시를 탑니다. "10대 애들이 저러는 거, 뒤에서 누가 조종하는 건지도.." "에이, 아저씨. 요즘 애들이 누가 시킨다고 말 듣나요?" "그래도 경찰이 그런 말 근거없이 하진 않거든요?" "뒤에 누가 있건 없건, 협상을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어요?" 이때쯤 집 앞에 도착합니다.

에메센에서는 그 곳에 간 지인들의 소식이 조각으로 조금씩 들립니다. 아 갈 걸...아니 좀더 알아보고 갈 걸....그 서류는 왜 이리 늦게 끝났담...속이 탑니다.무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도망가고 여자와 노인들이 궁지에 몰렸다고 합니다. 열받습니다. 담배를 끊은지 오래건만 약간 피우고 싶어집니다.

일본의 예언가가 한국에서 유혈진압이 일어나고 계엄령이 선포될 거라는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쁘락치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님들이 다행히 무사 귀가중이래요. 신촌 로터리는 안전할까 하시는데...- 다행입니다. 그분들은 근처 지인 댁으로 가셨습니다.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돕니다.

돌아온 분과 얘기 나눴습니다. 아아, 서류가 조금만 일찍 끝났어도...좀만 더 위치정보가 자세했어도...아쉽습니다. 연행되더라도, 구금되더라도, 다음에는 꼭 참여하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오늘 걸어간 길은 아무도 없는 빈 길, 이미 모든것이 지나간 뒤의 길이었지만 가던 길에 떨어진 빨간 종이 한 장이 아직도 제 맘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미친소는 너나 먹으라는 구호가 적인 누군가의 종이였습니다. 그 종이를 들고 계셨을 낯모르는 분이 오늘 무사 귀가하셨기를 빌어봅니다.

지금이 시작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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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셀 2008/05/26 03:12 L R X
이제 시작이죠.

저도 나갈 겁니다.
황금숲토끼 2008/05/27 13:59 L R X
넵, 연속되는 야근에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주말이 피크겠네요 이대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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