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더블오'에 해당되는 글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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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블오] Cevahir Kafes (제바히르 카페스) 6 - 2009.11.15 | 2009/11/30
- [더블오] Cevahir Kafes (제바히르 카페스) 4-5 2009.09.20 | 2009/11/30
- [더블오] Cevahir Kafes(제바히르 카페스) 3 2009.07.29 | 2009/11/30
- [더블오] Cevahir Kafes (제바히르 카페스) 2 2009.07.28 |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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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오] Crossroad :: 2010/09/22 05:20
Crossroad..
[더블오] 제목이 없는 글이네요.- 셏그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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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과감히 질렀다. :: 2010/06/26 01:34
낑낑거리며 조립을 했고

[더블오] Bloodlust <2-2> :: 2010/06/25 16:10
- 우하하하하 시리즈물의 2권이라니, 처음 써 봐요.
이것은 사람과 괴물의 이야기야.
[더블오] 고비 사막에서 그대와 양갈비를 :: 2010/06/20 15:09
- 머리를 텅 비우고 가볍게 날려 써 본 개그물
고비 사막에서 그대와 양갈비를
[더블오] Dark Fire - 전 치고박는 싸움을 아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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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오] Bloodlust <2-1> :: 2010/05/31 04:30
- 넵, 사실은 간간히 쓴 것이 연재분으로 한 6화 분량 됩니다.
이것은 사람과 괴물의 이야기야
이것은 사람과 괴물의 이야기야. 하지만 과연 누가 사람이고, 누가 괴물일까?
[더블오] Cevahir Kafes (제바히르 카페스) 6 - 200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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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오] Cevahir Kafes (제바히르 카페스) 4-5 2009.09.20 :: 2009/11/30 21:22
- 어느새인가 길어지는 연재텀;;;;;;
- 다음편은 가립니다.
Cevahir Kafes
- 어떻게?
용서해 줘.
-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야?!
잘못했어, 용서해 줘. 아니, 아니...죽어, 버려.
- 네가...어......떻게...
죽어버려, 그대로 죽어버리라고. 죽어버리란 말이야!
- 살......ㄹ..................
죽어! 죽으란 말야! 죽어! 죽어! 죽어!!!
알렐루야는 번쩍 눈을 뜨고 일어났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직 날이 다 밝지 않아 파르스름한 새벽빛이 격자창을 지나 벽에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고, 그 벽에 그려진 화려한 색조의 그림이, 방금 전까지 누워 있던 편안한 침구가, 머리맡에 놓인 도자기 물병이 이 곳이 '그 곳'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간신히 가쁘게 차올랐던 호흡이 가라앉았고, 조용히 눈을 감으며 알렐루야는 생각했다.
됐어. 여긴 거기가 아니야. 다시는 그럴 필요 없어.
간신히 안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 아파 온다. 그와 함께, 환상이라고하기에는 너무나 명징한, 소름끼치는 잔인함과 난폭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우렁 우렁 울린다.
[참 편리하게 사는구나, 정말로 다시는 그럴 필요가 없을까?]
알렐루야는 공포에 질려 양 팔로 자신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고개를 저으며 방금 들었던 '악마'의 계시를 거부했다. 다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다시는 그럴 필요가 없어야 한다.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신하들은 간혹 술탄이 왕자의 방에서 나온 형제를 지나치게 아낀다고 생각했지만, 감히 그것을 입에 담아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자는 없었다. 그들 중 몇몇은 그것을 무시해도 좋을 일로 치부했고, 극히 일부는 형제에 대한 애틋한 정이라며 역시 술탄이라 해도 인간은 인간이라고 안쓰러워했다. 그리고 몇몇은 드디어 저 고까운 작자에게서 '약점'이 발견되었다고 생각했다.
정이란 허점이다. 누군가를 아낀다는 것은 그를 가까이 하는 동안 마음을 놓는다는 뜻이며, 즉 방심한다는 뜻이며, 그렇기에 그 때야말로 흉계를 꾸미기에는 아주 좋은 순간이 된다는 의미이지 않는가. 게다가 소란 이브라힘이 형제를 죽이지 않았기에, 이제 선대 술탄의 피를 이은 자, 누구의 이의 없이 이 나라의 옥좌에 앉을 수 있는 자가 둘이 된 것이니, '그들'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라 아니할 수 없다.
술렁술렁 퍼진 정보는 격자무늬 창 너머를 잽싸게 넘나들었고, 은밀한 눈짓과 신호 속에 서서히 무언가가 준비되어갔다. 이브라힘의 성미는 선대 바예지드 못지 않다. 만일 무엇 하나라도 잘못되어 실패한다면 그 업화는 암살자와 그 뒷배경 뿐 아니라 그 외 수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래서 올가미는 아주 서서히 좁혀들어갔다. 이 거대하고 잔인한 사냥감을 확실히 잡아죽이기 위해서.
소란은 조용히 수면을 바라보며 그 위에 어려 흔들리는 등불빛을 감상하고 있었다. 알렐루야와 함께 오아시스를 보기 위해 밤마실을 다녀온 지도 꽤 되었지만 마치 그 대신이라는 듯, 이렇게 밤이 되면 홀연히 소수의 궁인들과 함께 연못 가에 앉아 한동안 묵묵히 앉아있다 가곤 하는 것이다. 알렐루야는 늘 대동한 채였으며, 가끔은 알렐루야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가끔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연못 위에 어린 달빛만 감상하다 들어가곤 했다. 오늘의 경우 술탄의 입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알렐루야도 그에 따라 그저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둘의 그림자 사이로 흘러가는 것은 그저 궁궐 담을 어떻게인지 넘어들어온 밤바람 뿐이었다.
"알렐루야."
"예."
대답하며 가볍게 고개를 돌린 알렐루야에게 술탄의 침착한 목소리가 질문해 왔다.
"저 그림자는 무엇 같으냐."
주변의 궁인들이 잠시 그 '그림자'가 무엇인가 가늠해 보느라 술렁였지만 알렐루야는 일체의 동요 없이, 마치 술탄이 이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모릅니다. 하지만 쇠냄새가 나요."
"내게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분명히 쇠냄새인걸요."
여전히 확고한 고집을 담은 목소리다. 술탄은 주위를 한번 가볍게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물러가라."
처음엔 자신들이 들은 명령에 대해 잠시 머뭇대던 궁녀와 내관들이었으나, 술탄 근처에 서 있던 내시장이 고개짓을 하자 다들 조용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구석에서 "어머!" 하고 놀라는 한 궁녀의 목소리가 들어왔으며, 곧이어 터진 여인의 비명소리에 뜰의 정적은 완전히 깨져 버렸다. 알렐루야의 말 그대로 드디어 밤바람에 쇠냄새 비슷한 것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피냄새였지만.
"알렐루야! 내 곁으로 와라!"
뒤에 선 청년에게는 무기가 없다. 그 사실을 인지한 소란은 곧바로 허리의 칼을 뽑으며 외쳤다. 검은 옷자락이 바로 곁에 자리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빈틈없이 검을 휘두른다. 원래부터도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두터운 인간의 목을 단숨에 날려버리던 솜씨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괴한들의 수는 대여섯 정도로 생각보다 많았지만, 술탄의 붉은 옷자락이 휘날리는 곳마다 확실히 피보라가 일고 있었다. 물론 그의 체구는 덤벼드는 괴한들에 비하면 월등히 작다. 기본적으로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지만 개개의 싸움을 길게 끌지 않고, 고작해야 2-3격 이내에 급소를 베어 목숨을 앗는 것으로 체력의 낭비를 막고 최대한 버틴다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양 옆에서 찔러들어오는 칼을 피해 한 발 물리고, 거의 동시에 검을 쳐 내려 한 놈의 목을 날렸다. 피보라를 피하며 재차 찔러오는 다른 녀석의 칼날을 어슷하게 받아쳐 허점을 만들어 내고 안으로 파고들어 급소를 찌른다. 발을 배에 대호 빼내며 돌아서는데 알렐루야에게 달려드는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알렐루야!"
은빛 검날이 번득였지만 그 자리에 검은 그림자는 없었다. 가볍게 물러선 알렐루야는 그대로 손을 뻗었고, 공격자가 물러설 틈 따위는 없었다. 직후,
"...!"
비명이 울렸다. 긴 손가락이 그대로 안구를 파열시키며 밀려들어간다. 경악하는 술탄의 눈앞에서 안구 안쪽을 그러쥔 손이 비명을 울리는 상대를 끌어당겨 그대로 목을 꺾었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경련하며 늘어진 상대를 놓지 않고 그대로 휘둘러 짓쳐들어오던 검을 시체로 막는다.
사람의 몸을 완전히 관통한 검은, 아직 덜 죽은 근육이 경직해 버리는 바람에 죽은 몸에 물려 잘 빠져 나오지 않는다. 두어개의 검이 시체를 관통했고, 알렐루야는 그 시체를 놈들 쪽으로 던져버렸다. 일반적인 인간의 힘을 아득히 넘는 그 공격에 두엇이 시체 밑에 깔려 버둥거렸다.
"알렐루야?"
"시끄러, 꼬마야."
달빛을 받은 얼굴에서 빛나는 것은 평소와 같은 은회색 눈이 아니었다. 마치 짐승의 것과도 같은 금색 눈이 오싹한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본다.
"넌 대체..."
"닥치고 목숨이나 붙여놓고 있어!"
긴 팔이 뻗어나간다. 정원의 덤불 속에서 무장한 그림자가 대여섯 더 나타났지만 검은 그림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 중 하나의 팔을 쥔다. 잡자마자 그대로 비틀어올려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꺾어버리고 비명을 지르는 상대의 눈을 다시 찔러들어가 뜯어낸다.
"머저리같은 새끼들, 느려!"
손에 묻은 안구를 떨어내고 이제는 무력화된 상대를 적 편으로 밀어넣는다. 고통과 공포로 공황상태가 된 자객은 눈먼 채 그나마 성한 손으로 칼을 뽑아 무참히 휘둘렀고, 암살자들은 자기 편이 휘두르는 칼날을 피할 처지가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동요하는 다른 녀석 하나에게 달려간다. 그 움직임은 결코 암살자의 공격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방어하는 자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적을 사냥하는 야수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제는 반쯤 공포에 질려 칼을 휘둘러 대는 걸 마치 가지고 마치 고양이가 쥐 가지고 놀듯 재빨리 몸을 놀려 피하더니, 완전히 피에 젖은 주먹을 뻗어 턱을 제대로 후려갈긴다. 부러진 이빨이 공중에 튀는데 그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손을 턱에 밀어넣고는
"깨물 힘도 없냐?"
대응할 틈도 없이 우득 소리와 함께 턱을 빼 버렸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절규하던 암살자는 곧 배에 자기 칼이 꽂힌 채 절명했고, 그 옆에 서 있던 또다른 녀석은 이번에는 경악에서 풀려난 술탄의 손에 목이 달아났다.
"후퇴!"
그 말을 한 녀석은 죽은 자의 허리춤에서 알렐루야가 던진 칼에 어깨를 관통당해 벽에 "박혀"버렸고, 비실비실 도망가려던 나머지 암살자들은 그자의 눈앞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일부는 술탄의 칼날에 목이 달아났고, 일부는 차라리 깔끔하게 목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진 자들을 부러워할 만치 끔찍하게 죽어갔다. 일부는 역시 눈을 잃은 뒤 목이 부러졌고, 일부는 팔다리가 부러진 채 부서진 갈빗대에 폐를 찔려 절명했으며, 몇몇은 자신의 창자를 눈으로 바라보며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야, 아프냐? 엉? 아파?"
한창 창자가 쏟아진 배를 부여안고 비명을 지르던 병사에게 알렐루야가 묻는다. 고개를 비뚜름하니 기울이고 조소를 얼굴 가득 떠올리고는 피식 웃으며. 공포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는 얼굴에는 그러나 그 광폭한 금빛 눈을 바라볼 눈동자조차 없다.
"비켜라."
그 뒤에서 술탄이 낮게 말했지만, 남자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어이, 이봐. 너희들 대체 무슨 깡으로 덤빈 거야? 엉? 엄마 보고 싶냐? 아니면 뭐야, 애인이라도? 마누라? 애?"
"비켜라, 알렐루야!"
남자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지만 직후 달려드는 검날에 번개같이 몸을 옆으로 피했다. 비명을 지르던 암살자는 결국 술탄의 칼날이 다가와 목을 날려준 뒤에야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피에 젖은 손이 술탄의 목을 향해 다가왔고, 다음 순간 술탄의 칼날이 알렐루야의 목 밑에 정확히 와 닿았다.
"뭐야 너."
"넌 누구냐."
한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었고, 정원에는 아까 어깨에 칼이 꽂힌 채 기둥에 박혀버린 자가 헐떡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금빛 눈과 적갈색 눈이 한동안 첨예하게 서로를 탐색했고,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으되 먼저 웃음을 띠며 입을 연 것은 금빛 눈동자의 사내였다.
"글쎄? 새삼 네놈이 내 이름을 물어보니 신기하군."
"넌 누구냐."
분명 알렐루야지만 동시에 알렐루야가 아니다. 아까 이름을 부르며 곁으로 오라고 했을 때 온 자는, 그 남자는 알렐루야가 맞다. 하지만 지금 소란 이브라힘의 눈 앞에 서 있는 자는 그가 알던 "알렐루야"가 아니었다. 그 알렐루야는 비상할 정도로 감이 좋고 움직임도 빨랐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찢어죽이는" 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글쎄? 꼬맹이 녀석이 감은 확실히 좋은 것 같은데, 그래. '할렐루야'님이시다."
"...할렐루야?"
남자는 피에 젖어 질척거리는 검은 옷자락을 끌며 기둥에 박힌 사내에게 다가갔다. 공포에 질린 눈을 한동안 들여다 보다가 웃으며 중얼거린다.
"이봐, 정보를 알아내는 데에는 눈 따위 필요 없지?"
복면으로 가린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새하얗게 질린다. 그렇다, 아까부터 부하들이 두 눈이 뽑혀나간 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꼴을 본 까닭이다.
"이 놈, 분명 지시를 했단 말이야. 이 녀석이라면 윗선을 알지도 몰라."
"내 말에 대답해라."
"꼬맹아, 네녀석 말에 계속 대답하면 요 녀석이 다 들어요. 그러면 좋을 게 하나도 없거든? 그렇다고 귀머거리를 만들어 놓으면 쓸모가 없어질테고, 어쩔까나~"
"윗선은 내가 알아낸다."
광기에 찬 금빛 눈이 순간 번뜩 빛나며 젊은 술탄 쪽을 향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경악에 질려 뒤로 도망갈 정도의 살기가 가득 담긴 눈이었지만, 소란은 그저 고요히 그 눈빛을 맞받으며 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시발, 그 재수없는 꼰대새끼랑 표정이 똑같네 이거."
"...!"
으드득, 소리와 함께 할렐루야의 손이 움직였고, 앗 하는 사이 암살자는 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인 채 바닥을 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마치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그 뒤에 따라붙는다.
"뭐, 니가 알아서 알아낼 거라고 했으니까, 난 모른다?"
"상관없다."
다음 순간, 검끝이 다시 한번 할렐루야라 스스로를 칭한 남자의 목덜미를 향했다.
"얼레, 꼬마새끼가 죽으려고 작정을 하셨나?"
"정체를 밝혀라."
순간 정원의 달빛 아래 날카로운 광소가 울려퍼졌다.
"정체? 정체라고? 하, 꼬마야. 모르겠냐? 나도 이 녀석이고 이 녀석도 나야!"
검은 옷자락이 피냄새를 풍기며 달겨들었다. 검을 든 손목을 붙들고 얼굴을 들이밀더니 아주 나직하게 읊조리듯 말한다.
"자, 잘 살펴보라구. 네가 알던 그 겁 많고 등신같은 알렐루야가 그 안에 있을 테니까 말야."
"...알렐루야?"
"그래! 겁 많은 알렐루야님, 방구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알렐루야님 말이지! 난 그 녀석이야, 아니, 오히려 내가 그 녀석의 본심에 가깝지."
믿어지지 않는 선언에 적갈색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차갑게 가라앉는다.
"넌...악령인가."
"이거 왜 이래? 현실을 받아들여. 그럼, 그 지랄맞은 방에서 그 놈이 어떻게 살아남았으리라 생각하는 거야? 그 물러터진 심성으로, 잘도 그 지옥 속을 뚫고 왔지 않아? 응? 생각해 보지 않았어?"
피 묻은 손이 소란의 턱을 감싸고, 금빛 눈동자가 한계까지 벌어진 채 히죽거리며 비웃는 기색으로 이 쪽을 응시한다. 분명 어느정도는 의아했던 것, 그러나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실이 잔인하게 나열되고 있었다.
"다 죽여버렸어. 그래, 네가 본 것처럼 말야. 그 새끼들은 잠시도 이 녀석을 가만두지 않았다고. 먹을 것은 들어왔지만 놈들이 다 독식해 버렸지. 그래, 사실상 죽여버리려고 한 거야. 너무 많았거든, 다들 너무 많았어."
"...알렐루야..."
"한 피를 타고난 형제? 지랄 마, 애시당초 어미가 다른 것들은 다 적이야! 너무 좁은 곳에 같힌 쥐떼같이들 굴었지. 서로를 괴롭히고, 한도까지 몰아붙이고, 자살하면 오히려 우스워했다. 그뿐인 줄 알아? 하하, 술탄 나리, 그 잘난 귀로 듣기에 가당치도 않은 일들이 벌어졌거든?"
"...그만해라."
"그 놈이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다고 생각해? 다 죽여버렸어, 방해되니 다 죽여버렸다고!"
한계까지 벌어진 눈은 단 한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고여 반짝이고 있었지만, 이 눈물은 결코 슬픔이나 한탄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광기와 조소가 철철 뭉쳐 빚어진 것에 가까웠다. 그런 눈을 하고, '할렐루야'는 독기를 담은 채 소란의 귀에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니까말야, 넌 죽지 말라고. 응? 죽지 말란 말이야 병신아."
"...어째서?"
소란 이브라힘은 언제 그렇게 가까이서 말했냐는 듯 순간적으로 멀어진 검은 그림자에 대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물었다.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말하는 것이 분명 진실일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 한 명의 생존자, 단 한 명의 승리자. 분명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잔인한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리라. 아무도 공존하려 하지 않았던 그 방에서.
"뭐?"
"어째서 난 죽이지 않는 거지?"
남자는 흐 하고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당연히, 네 놈이 그 새끼의 가장 강력한 보호자니까 말야."
"보호...자?"
"네 그늘 밑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하거든. 우리는 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지금 이 놈들이 널 죽이고 날 술탄으로 옹립한다고 해도 결국 꼭두각시, 달라지는 건 없을거야. "그 녀석"의 능력으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 따위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만만한 후계나 하나 만들어놓고 독살당하겠지. 그렇지?"
"...!"
"그러니 잘 부탁해, '형제'. 내가 나오지 않게 하란 말야. 응? 이 꼬락서니 또 보기 싫으면."
"......"
"아니면 네놈이라 해도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말야. 응? 기껏 찾아낸 '형제'의 손에 뒈지고 싶진 않을 거 아냐?"
"협박하는 건가!"
"뭔 소리야? 협박이라니. 그저 사실을 말해두는 것 뿐이야. 윽, 녀석이 돌아오는군."
"......"
"그러니...잘 생각...하라고...등신...아..."
차갑게 굳어 있는 술탄 앞에서 남자가 천천히 무너진다. 돌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잠시 뒤,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란 앞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를 찾아내고는 급히 다가온다.
"괜찮으십니까."
"비켜라."
차갑게 내뱉은 말에 움찔 하더니 주위를 둘러본다. 죽음이 불러온 완전한 정적, 그리고 코를 찌르는 피냄새에 순간 손을 들어 입을 막으려다 손에 들러붙은 마른 피에 경악하는 모습을, 소란 이브라힘은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나도 남김없이, 마치 지금의 모습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의심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이건...이...뭡니까...왜 피가..."
"기억나지 않는 건가?"
"......기억?"
알렐루야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질려 있다. 핏기없는 얼굴에 입술을 짓물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스러질 것 같이 위태로웠지만 술탄은 냉정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모두 네가 한 일이다."
"...! 설마...설마 그가..."
"할렐루야, 다."
알렐루야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나왔다. 그 이름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아니, 소란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외마디 절규를 외친 알렐루야는 머리를 감싸쥔 채 엎드렸다. 온 몸을 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온 몸을 떨며 웅크리고 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안돼!...또....다신 안돼! 다신...이럴 순 없어......"
오열 사이로 띄엄띄엄 나오는 말이, 알렐루야의 경악에 거짓은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술탄은 여전히 냉정한 눈으로 알렐루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충격과 안도감, 배신감이 교묘히 섞여있는 그 마음 속에서는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질문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그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미친 야수를 만난 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질문이었다.
-계속
[더블오] Cevahir Kafes(제바히르 카페스) 3 2009.07.29 :: 2009/11/30 21:10
-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광풍같은 업데이트 간격이었습니다.
more..
1개월 후.
'왕의 눈'이나 '왕의 귀'라 불리는 밀정들이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채 성을 드나드는 일은 선왕 바예지드 이전부터도 매우 흔했다. 보석으로 장식된 왕의 금패를 지닌 이들은 늘 얼굴을 가린 채 새벽이나 깊은 밤에 궁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가곤 했다. 경비병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표찰만 확인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의 통행을 묵인했다. 굳이 알려 들었다간 오히려 모반 혐의를 쓸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어느 밤 자정, 몹시 키가 큰 남자와 체구가 작은 남자 해서 두 일행이 그렇듯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다가왔을 때, 금패를 확인한 경비병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두 사람의 얼굴조차 - 검은 천으로 가렸다지만 눈 정도는 드러나 있었다 - 거대한 궁 문 곁에 난 작은 문을 가리켰다. 사용인들이 오가는 문으로, 밀정 따위를 위해 거대한 궁문을 여는 일은 없었으므로 밀정들 또한 이 문을 이용했다.
궁성에서 나와 걷기 시작하면서, 이 두 남자 중 키가 큰 쪽이 흘끔 흘끔 뒤를 돌아보며 경비병들의 시선을 살폈다. 일반적인 밀정 치고는 꽤 이상한 모습이었지만 밀정들이 뭘 하건 관여하지 않는 성문 밖 경비들은 그저 못본 척 엄중하게 궁을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걸어 대로를 벗어난 둘은 어딘가 작은 집 앞에 다다랐다. 키 작은 쪽이 잠시 닫혀있는 문 앞에서 무언가를 속삭이고,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온 종이 부리나케 들어가 꽤 훌륭한 낙타 한 마리를 끌고 나온다. 달려있는 안장이나 술 장식은 소박했지만 낙타 자체는 왕의 낙타라 해도 믿을 정도로 훌륭한 녀석이었다. 잠든 와중에 끌려나온 낙타가 성난 기세로 투레질을 했지만 키 작은 남자가 그대로 고삐를 쥐어 당기자 순순히 무릎을 꿇는다. 그렇게 주저앉은 낙타 앞에 선 키 큰 남자가 머뭇거리며 키 작은 이 쪽을 바라본다. 얼굴을 가린 검은 천 밑에서 나지막한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전하, 이건-"
"그렇게 부르지 마라."
"아 그렇지...소란 님, 그러니까 그게...전 낙타를 탈 줄 모릅니다."
"......"
잠시, 아주 잠시 '알라의 이름으로, 낙타를 타지 못하는 인간이 세상에 있었단 말인가' 라는 시선으로 키 큰 남자, 알렐루야를 노려보던 왕은 혀를 쯧 차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내가 몰겠다. 안장 앞쪽에 타면 둘이 탈 수 있으니 걱정 말고."
"그...좀 무서운데..."
"내가 무섭나 이 낙타가 무섭나."
"......"
한동안 망설이던 알렐루야는 어설픈 자세로 낙타 앞쪽에 어찌어찌 걸터앉았다. 궁에서 갇혀 자랐으니 못 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무려 베두인 옷까지 내준 형제가 낙타 하나 타지 못한다는데 뭔가 기분이 상해버린 왕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낙타 안장에 척 걸터앉은 뒤 뭔가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짐(?)에 불만스럽게 울어대는 낙타의 옆구리를 막대로 가볍게 치며 길을 재촉했다.
"으, 으엇!"
"조용히 해라. 낙타 처음 타...보는군."
베두인인 소란 이브라힘으로서는 한숨 나오는 일이었지만, 당황하는 형제를 위해 낙타의 속도를 약간 줄여 주었다. 목표인 도성 밖 작은 호수까지는 예상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듯 했다.
사실 처음 시작은 매우 단순했다. 알렐루야가 어이없는 질문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오아시스가 뭐냐고?"
"궁의 연못 같은 것입니까?"
왕은 자신이 이러한 질문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한동안 믿겨지지 않아 멍하니 알렐루야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시선을 어떻게 생각했는데, 알렐루야는 곧 당황하며 혹여 그것에 대해 묻는 것이 금기라면 몰랐으니 용서해 달라는 한층 더 어이없는 양해를 구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몰라서 물어본 건가?"
"......예. 밖으로 나가서 무엇을 본 적이 없어서..."
생각해 보면 그렇다. 지금의 모습으로 보건대 적어도 열 살 이후부터 그 곳에 갇혀 자랐고, 그 전에는 당연히 하렘의 일원이었을 어미의 품 속에서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 왕은 알렐루야의 어미를 찾아주려 애썼다. 그러나 '알렐루야'라는 이름은 낳아준 어미가 지어준 이름은 아니라 했고, 독특한 회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음에도 궁에서는 누구 하나 이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간 하렘에서 죽어나간 이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다 선왕의 후계자와 총희를 앗아갔던 역병은 하렘도 휩쓸고 지나갔기에, 아마도 그 와중 언제인가 희생된 여인이 아니었을까 짐작될 따름이었다.
어쨌건 알렐루야는 굳이 제 어미가 누구인지, 자신의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과거 문제는 그렇게 넘어간 것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알렐루야가 바깥 세상에 대한 지식이 있을리는 어쨌건 만무했던 것이었다.
"오아시스는 아름답지. 그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니 안타깝군."
"......"
알렐루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 경우 굳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왕은 묵묵히 그런 알렐루야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 귀에 입을 가까이 하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 허나, 전하,"
"항의는 받지 않겠다. 준비해 둬라."
"그래도 낙타 타는 법을 아예 몰랐다니, 그건 좀 놀랐다."
바다 위의 사람들이라 불리는 베두인에게 있어 낙타란 그 모래바다에 빠지지 않게 해 줄 배이자 생명선이다. 머나먼 동쪽의 유목민족들이 말에서 태어나 말에서 죽는다면, 베두인들은 낙타 위에서 삶을 얻었고 낙타와 함께 죽어갔다. 그들은 사막을 존숭하고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그 사막에서 젖줄을 찾아 살아가는 자신들에게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카나트를, 오아시스를, 그 사이를 잇는 길들을 그들은 언제나 늘 정확히 찾아낼 줄 알았고 소란 이브라힘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은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조차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렇군. 조금 있으면 오아시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름답습니까?"
왕으로서 자신을 겹겹히 감싸고 지켜주는 궁을 빠져나와 이렇게 홀홀단신으로 찾아올 만큼? 그 질문을 알아들은 젊은 왕은 흔들리는 낙타 등 위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 자신의 답을 찬찬히 말해주었다.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가 아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가 보면 안다."
도성 곁에는 아주 오래된 오아시스가 있었다. 역시 금패를 보이고 도성 문을 빠져나가 달리자, 알렐루야의 몸이 순간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 때문일까 생각하던 왕은 꿈쩍도 않고 몸을 굳힌 채 정신없이 지평선을 바라보다 주위를 둘러보고, 이제는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답을 깨닫고는 "...이것이..."하고 중얼거리는 알렐루야의 말을 받아 이어주었다.
"바깥 세상이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십여 명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좁은 방 안의 그로서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격자창 너머의 세상밖에는 본 적 없었으리라. 세상이라고 해 봐야 좁게 보이는 뜨락의 하늘과 창가에 얼굴을 바짝 대면 간신히 보였을 궁궐의 연못과 정원이 전부였던 이에게, 맑고 분명한 사막의 하늘과 별들, 저 먼 곳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밤바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른 세상 한가운데 그어진 지평선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기분으로 다가올까.
아마도 소란 이브라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궁으로 들어갈 때 느끼는 것과는 정 반대의 기분일 것이다.
한참 달리던 낙타가 점점 속도를 줄인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야자수가 몇 그루 자라는 주위에는 무성한 덤불이 나 있고, 그 희미한 녹음 너머로 반짝이는 수면이 어릿하게 보인다. 낙타를 멈추게 한 왕은 고삐를 당기며 막대를 가볍게 두드리며 낙타를 무릎꿇렸다.
"여기다."
낙타에서 내려 멍하니 주위를 바라보던 알렐루야의 손목을 잡고 낙타 고삐를 쥔 소란이 나아간다. 나라의 젊은 왕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형제에게 자신이 아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난 베두인 소년이 되어 앞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풀 곁의 야트막한 길을 찾아내고 바람에 섞여 벌써부터 가느다란 목소리들이 흘러오는 곳으로 걸어간다.
"이건,"
"오아시스를 보고 싶다고 했잖나."
그리고 드디어, 수풀 한구석을 돌아 오아시스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접어들었다.
"이거다."
소란 이브라힘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은 형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더없이 강한 자긍심과, 어떤 의미로는 사랑까지 담아서.
"이것이 나의 오아시스다."
알렐루야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저 말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바다처럼 넓은 사막 가운데, 거울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호수가 조용히 누워 있었다. 이제껏 보았던 그 어느 별들보다 선명하게 반짝이는 별들이 무섭도록 검은 하늘에 가득 뿌려져 있었고, 수면은 그 별빛들을 하나 하나 품어 일렁이며 더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보름달빛으로 사방은 밝았고, 하늘과 호수의 빛이 만나는 곳에 검은 수풀이 시원한 선을 그린 가운데, 호화로운 큰 천막들이 서 있었다.
"저...사람들은..."
"대상이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이거나, 곧 먼 길을 떠날 사람들이지."
누군가 젊은 여자의 선명한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음악이 섞여 향기로운 밤 공기 속으로 울려퍼졌고, 노래하는 이들의 음성과 떠들썩한 잔치 소리가 멀리 선 두 사람에게까지 와 닿았다.
"가 보겠나?"
"...아니오."
의외의 대답에 고개를 돌렸을 때, 알렐루야는 어느새 기세좋게 호수에 고개를 처박고 물을 마시고 있는 낙타 곁에 다가가 수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곳의 물은 맑다. 마음껏 마셔도 돼."
그 말을 들은 알렐루야가 조용히 손을 내밀어 잔잔히 일렁이는 물을 떠 본다. 잠시 입에 대고 마셔보더니, 처음 마셔보는 오아시스의 물 맛이 신기했는지 아예 앞머리가 다 젖도록 고개를 숙이고 물을 마신다. 반쯤은 장난기였을 것이다. 그 때 그렇게 물어본 것은.
"그렇게 달고 시원한가?"
"...예."
"그렇다면 내게도 나눠주지 않겠나?"
알렐루야의 눈이 조금 커졌다. 원래대로라면 그릇에라도 담아 바쳐야 할 것이었으나 지금 여기에는 이 물을 담을만한 그 무엇도 없다. 잠시 생각하던 알렐루야는 고개를 숙여 달고 시원한 오아시스의 물을 입안 가득 머금었다. 그러고는 알렐루야가 어떻게 할 것인지 흥미롭게 지켜보던 왕에게 다가가
"......!"
어깨를 감은 팔은 든든했고, 물에 젖은 입술은 부드럽고 시원했다. 순수한 놀라움에 입을 벌리자 시원한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저도 모르게 그 물을 받아 삼켜버린 왕은 아무 말도 못하고 놀란 채 형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물을 다 넘기자 입술을 뗀 알렐루야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왕의 경악 따위는 전혀 감지 못한 듯 다시 호숫가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수면에 비친 별들을 바라보며 어느새 느긋한 기분에 주저앉은 낙타에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왕은 어느새 시간이 지나 대상들의 잔치가 잦아들 때까지 그 등만 하염없이 보고 서 있었고, 그 뒤로 새벽이 되어 궁성에 들어올 때까지 알렐루야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각은 늘 그렇듯, 무언가가 부서지며 찾아오는 것이다.
-계속
후 황금숲토끼
[더블오] Cevahir Kafes (제바히르 카페스) 2 2009.07.28 :: 2009/11/30 21:06
- 역시 정줄놓은 이슬람...사실은 즉흥이었죠...
Cevahir Kafes 2
"어찌 되었는가."
호통도 짜증도 아니었건만 궁녀는 그저 새파랗게 질린 채 이마를 바닥에 비비며 변명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자, 자비를 베푸소서. 전하, 잠시 늦어지고 계실 뿐이오니..."
"늦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주변의 신료들은 모두 침묵할 뿐, 아무도 젊은 왕의 의문을 해소해 주려 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한다면, 아무도 젊은 왕의 무표정 앞에 나서서 굳이 죽었어야 할 목숨을 위해 변호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눈에 담겨 있는 것은 이 사태에 대한 약간의 흥미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미미한 비웃음이다.
"곧 오실 것이옵니다. 트, 틀림없이."
"내 말을 이해 못 했군. 난 '어찌 된 것인가'를 물었다."
다음 순간 왕이 바람같이 몸을 일으키자 궁녀는 목으로 칼날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히익 하고 비명을 지르며 오체투지한 온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왕의 신발은 무심히 그 옆 바닥을 밟고 지나갔다.
"전하!"
"내가 직접 가 보겠다."
"해, 행차를, 경비병!"
급작스런 움직임에 다들 놀라 술렁이며 한 신료가 그제서야 어떻게든 왕의 행렬을 준비하기 위해 경비병을 불렀으나, 이미 붉은 그림자는 아름답게 채색된 복도 너머로 홀홀히 걸어가고 있었다.
복잡한 궁전이었지만 사막 민족 특유의 주의깊은 시선으로 늘 보아두었던 탓에 왕은 별로 머뭇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내준 곳은 왕이 거주하는 곳으로부터 별로 멀지도 않았다. 언제 어느순간 무슨 핑계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그'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복도를 꺾어 방으로 들어가려선 왕이 발을 멈추고 선 것은, 예기치 못한 비명소리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제발 고정하소서, 예복을 입으셔야 합니다!"
거의 절규하듯 애원하는 소리에는 그러나 어떤 대답도 붙지 않았다.
"이미 늦었습니다. 어서 가시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십니다, 제발 예복을-"
"내 몸에 손 대지 마!"
마침내 터져나온 항변이 오히려 더 절규와 닮아 있어, 왕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누더기로는-"
"싫어, 당신들의 옷은 입고 싶지 않아. 이 옷에는-"
목소리가 떨려나온다. 잠시 뒤, 부욱 하고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궁녀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비명소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나직한 목소리가, 그러나 더없이 분명한 목소리가 진한 슬픔을 담은 채 울려나왔다.
"- 피가 묻어 있어. 안 보여?"
"그런 것이 묻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카시미르산입니다. 바로 어제 지은 옷입니다! 궁녀들이 얼마나 고생하여-"
"당신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단 말야?!"
피가 담긴 것 같은 저 절규에 그나마 곧이곧대로 항의하는 것은 나이든 시녀장 뿐이다. 다른 궁녀들은 서슬퍼런 남자의 기세에 꼼짝 못하고 구석에 앉아 새파랗게 질린채 떨고 있다.
"깨끗한 옷입니다, 자, 저희가 어떻게든 틑어진 부분은 고쳐 드릴 터이니 제발 저희를 살려주시는 셈 치고-"
"싫어----!!!"
다시 한번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대강 방 안의 사태가 짐작간 왕은 그제서야 헐레벌떡 쫓아와 당장 왕의 도착을 알리려는 내관에게 고개를 젓고는 모서리를 지나 방 입구에 들어섰다.
"이러면 저흰 다 죽습니다! 제발...전하?!"
왕의 존재를 알아챈 궁녀들이 기급을 하며 이마를 바닥에 조아렸다. 워낙 급조된지라 별반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적어도 생활에는 불편하지 않도록 쿠션이며 약간의 가구 등속이 들어가 있던 방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다. 손에 닿는대로 던지고 부쉈는지 곳곳에 깨진 그릇이며 등잔, 가구등속의 잔해가 뒹굴고 있었고 바닥에는 호화로운 옷들이 찢어진 채 뒹굴고 있다. 궁녀들은 머리를 조아렸고 내관은 눈치를 보았지만 속옷조차 제대로 입지 않은 채 벌거벗고 서 있는 남자만은 그저 태연하게 뒤를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한동안 멍한 눈으로 왕을 바라보던 남자는, 그 손에 들고 있던 - 아마도 멀쩡했던 마지막 예복이었을 - 찢어진 붉은 비단 자락을 내보이며, 마치 왕만은 알아보아줄 거라고 믿는 듯한 얼굴로 속삭이듯 말해 왔다.
"보이지 않나요? 여긴- 피가 묻어 있는데, 이 곳의 옷에는."
"...그런가."
짧은 답에, 남자의 잿빛 눈에 깊은 슬픔이 들어찼다. 보는 것 만으로도 사무칠 것 같은 깊디 깊은 슬픔이.
"당신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거군요."
"내 눈은-"
왕은 조용히 남자의 손에 들린 붉은 비단을 바라보았다. 금실자수가 없이 좀더 소박할 뿐, 지금 왕 자신이 걸친 것과 별반 차이 없는 아름답고 귀한 천이다. 핏자국은 커녕 얼룩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가 말하는 '피 얼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젊은 왕은 알고 있었다. 미치도록 뼛속깊이, 뚜렷하게.
"이미 피에 젖었다."
정말 피에 젖은 듯 신기하도록 붉은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크게 벌어진 잿빛 눈동자를 바라본다.
"-피에?"
"그래서 안 보인다. 네 눈엔 보이는가?"
"여기...묻어 있습니다. 이 곳의 옷에는, 전부 피가 묻어 있어요. '그들'의 피가."
"...그렇군."
젊은 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궁녀들과 엉망이 된 실내,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름없는 '형제'를 돌아보았다. 잠시 무언가 가늠해보듯 형제의 몸을 바라보던 왕이 입을 열었을 때,
"그렇다면 내 옷을 입겠나?"
"당신의, 옷?"
순간 모두가 경악했다. 왕이 웃었기 때문이었다. 선대 바예지드의 뒤를 따라 궁으로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브라힘의 얼굴에는 단 한 번도 웃음기 비슷한 것조차 떠올랐던 적 없었는데, 어딜 보아도 미친것임에 틀림없는 '그'를 보고 처음으로 왕이 웃은 것이다. 아주 희미하게,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웃음기에 불과했지만.
"나는 사막에서 왔다. 궁의 옷이 아니야."
"...사...막?"
"베두인들이 있는 곳이다. 베두인을 모르나?"
"......"
"따라와라. 우리는 모래 바다의 사람들이다. 피냄새는 나지 않을 것이다."
벌거벗은 몸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고, 가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렇게 하나가 하나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왕이 직접 누군가의 손목을 잡아끄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주변 궁인들은 왕을 보자마자 기급을 하며 엎드렸으며, 그렇게 왕이 붙든 손목을 바라보던 청년은 곧 자신보다도 한참 작지만 너무나 커 보이는 왕의 등을 바라보게 되었다.
"...작을 텐데요."
"그렇지 않다."
왕은 아까부터 어쩐지 즐거워 보였고, 남자는 그런 왕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침내 침소에 도착한 왕은 원래대로라면 침상과 쿠션들 외에는 별반 가구가 없을 널찍한 침소에 어째서인가 놓여 있는 궤짝 하나를 가리켰다.
"이것은-"
"우리 부족의 옷이다."
갑자기 잠시마나 밝아졌던 젊은 왕의 말투가 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마 검은 옷이 맞을 것이다."
잠시 뒷말을 더 기다렸지만 왕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담담히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치 다시 침묵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 버린 뜻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청년은 조용히 왕의 지시대로 다가가 궤짝을 열었다.
"어떤가."
잠시, 정성들여 짜여졌지만 왕궁의 비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친 천을 만지며 들여다보던 청년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천천히 검고 긴 옷을 꺼내 들여다보던 그가 고개를 돌려 왕에게 끄덕였을 때, 젊은 왕은 순간 어떤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마치 무언가를 찾은 듯한, 아무 오랫동안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바래왔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와 같은 느낌, 이제껏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신의 안배를 깨달아버린 선지자와도 같은 느낌이 전율처럼 감싸고 돌았다.
천천히 검은 옷을 걸쳐보는 청년에게, 왕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예언자처럼.
"이름이 뭐지?"
"......알렐루야."
기묘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왕은 천천히 한 마디 한 마디를 새기듯 말했다. 결코 다변도 달변도 아니었던 그의 말은, 그러나 실로 정과 망치로 새긴 양 알렐루야의 영혼에 달라붙어 그 뒤로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알렐루야, 너는, 너만은 '내 것'이다."
내가 구해낸 것, 피를 이어받은 것조차 저주스런 아비의 것으로 가득찬 이 궁 속에서 유일하게 내가 건져낸 나의 것. 내 옷을 입고 내 음식을 먹고 내 샘물을 마시며 나와 함께 할 유일한 '내 것'
"형제여, 나와 함께 가자."
알렐루야는 눈부신 듯 소란 이브라힘을 바라보았다. 날 건져준 이, 그 지옥에서 날 꺼내준 이가 손을 내밀고 있다. 설령 그것이 샤이탄의 것이더라도 잡을진대, 하물며 형제의 손임에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었다.
"예."
참으로 엉뚱하게도, 어쩐지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더블오] Cevahir Kafes (제바히르 카페스) 1 2009.07.24 :: 2009/11/30 17:14
- 무려 이슬람풍 셏알입니다(........)
- 무론 톱카피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일본인들이 필살기 '홍차향기는 나지만 영국은 아니에요♡'
- 현재 연재중으로, 일단 최선을 다해 지속해 봐야죠.
- 원래는 여기 퍼오는 글들은 다 삭제할까 생각했지만, 당시 성원해준 분들 때문에 맘이...약해져서 OTL
Cevahir Kafes 1
격자창 뒤가 술렁인다.
- '그 곳'의 문을 열라 하셨답니다.
- 어째서! 원래대로라면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술렁거리기만 할 뿐, 누구도 앞에 나서서 갓 즉위한 왕을 막지 못했다. 잔인하고 단호하기로 이름 높던 선대의 그림자 때문이리라. 바예지드는 차를 쏟은 궁녀의 손목을 자르고 좋아하는 꽃나무의 가지를 꺾은 미동의 목을 꺾어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호했기에, 가장 사랑하던 총희의 아이를 후계자로 정한 즉시 다른 이십여 아들은 그대로 '방'에 갇혀야 했다. 바깥쪽으로 두꺼운 빗장이 달린 방에.
보통 '그 곳'이라고만 불렸다. 십대 후반의 장성한 아들들부터 간신히 젖을 뗀 갓난 것까지 전부 울부짖는 하렘의 어미들에게서 뜯겨져 나와 그 방에 들어가야만 했다. 아이들을 집어넣고 닫힌 단단한 문은 무장한 경비병에 의해 지켜졌고, 하루 세번 식량과 물이 넉넉히 들어가고 빈 그릇이 나올 뿐이었다. 총희의 아이에게는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이 주어졌지만 같은 아비를 둔 이 곳의 아이들에게는 하루중 잠시 들러 안의 창을 들여다보며 감시하는 눈길 외에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간혹 제 피붙이를 잠시라도 보고 싶은 하렘의 여자들이 뇌물을 써 보려고도 했으나 왕의 엄명을 받은 병사들은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너무 혹독한 환경 속에 갇혀 있었기에 어리고 약한 것들부터 죽어나가기 시작했고, 안에서는 종종 누군가의 절규와 숨 넘어가는 소리, 살려달라는 애원소리가 들리곤 했다. 물론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병사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간혹 '감시자'가 변고를 알리면 다른 병사들과 함께 시체를 꺼내는 일 정도는 했다. 소리소문없이 퍼진 이야기로는 아마 이젠 살아남은 아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만일 총희의 아이가 왕이 되었다면 그 방 안의 아이는 즉위식 날 바로 참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반대의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 정말로 열 생각이라는 건가요?
- 밖에서 자랐기 때문이야. 법도를 모른다고밖에는...
- 쉿! 경을 치고 싶은 게요?
총희의 아이는 그만 병에 걸렸다. 식은땀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던 아름다운 청년은 좀더 나이든 비슷한 얼굴로 절규하는 어머니의 품에서 목숨을 놓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어느새 같은 증상으로 앓아누운 여인이 숨졌다. 궁의 사람들은 왕을 응시했다. 근 몇개월간 같은 사람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늙어버린 왕을.
방을 열 것인가? 십중팔구 발광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는 광인을 왕위에 올려야 하는가? 그런 시선을 무엄해할 기운조차 없어진 왕은 갑자기 사막을 향해 행차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자신과 놀랍도록 닮은 소년 하나를 데려왔다.
- 말이야 바른 말이지, 베두인 여자에게서 얻었다지만, 얼굴만 같지 않았어도 왕은 될 수 없었을 것 아니오.
- 조용히 해요. 그 패악을 보고서도 아들 아니란 소리를 하오?
- ......
갑작스레 나타난 왕의 아들은 소란 이브라힘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살 기운을 잃은 선대가 세상을 떠나, 이브라힘이라는 이름으로 왕위에 올랐다. 무뚝뚝하니 말이 없는 성격까지 부왕을 빼다박은 젊은 왕은, 왕좌에 앉자마자 그의 출생을 의심하며 계속 몰아내려 들었던 늙은 신하 몇의 목을 직접 베어 버렸다. 귀신같은 칼놀림으로.
그리고 미처 날이 다 지나기도 전에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명령을 내렸다. 바로 '그 곳' 누구라도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던 왕자들의 방문을 열라고 지시한 것이다.
-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고...
- 다 죽었을지도 몰라. 아니어봤자 미친놈이겠지. 어째서 열려는지 원...
군데 군데 보이는 격자창 뒤에서 누가 어떤 소리를 하건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마침내 젊은 왕은 나무로 만들어진 두꺼운 문 앞에 섰다. 이제껏 석상처럼 그 곳에 묵묵히 서 있던 병사들이, 왕의 등장에 당황해 양 옆으로 물러나 엎드린다.
"열어라."
모두 침을 삼켰다. 두려운 일이 아닌가. 잠시 눈치를 보던 병사 하나가 땅에 이마를 비비며 뭔가를 말하려 했다.
"가, 감히 말씀드리기 외람되오나, 저 안에 있는 것은..."
"네 놈의 목을 치기 전에 어서 열어라."
호통소리도 아니었다. 협박조차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사실을 통보하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지금 왕이 빼어든 칼로 인해 일어나게 될 사실을 알려주는 것 뿐. 잠시 갈등하던 병사가 몸을 일으켜 동료와 눈짓을 나누고는, 바깥에 걸린 빗장을 둘이 함께 들어올린다. 음식을 넣고 감시하는 것은 거대한 문에 딸린 작은 문이었지, 이렇게 문이 완전히 열리는 것은 아예 처음이었다.
"조, 조심하시옵소서."
빗장이 걸려 있던 고리를 손에 뒤고 힘껏 당기자, 거의 십년을 움직인 적 없던 돌쩌귀가 힘겨운 소리를 내며 간신히 돌아간다. 시종 두엇이 가세한 뒤에야 문이 좀 제대로 움직이고, 마침내 두꺼운 문이 활짝 열렸다.
모두 왕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운데, 젊은 왕만이 방 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방 안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많은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하나 하나, 어쩌면 한꺼번에 가 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곳에는 그러나 악취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오물은 치웠지만 제대로 된 청소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귀인들이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바깥 세상에서 자랐기에 악취도 참상도 아무렇지도 않은 왕만이 곧은 걸음으로 문 안에 들어갔다.
벽에 간간히 보이는 갈색 자국은 오물보다는 아주 오래된 피처럼 보인다. 그 옆 아래쪽에는 바로 전 끼니를 먹었는지 음식 찌꺼기가 든 그릇이 한쪽 구석에 놓여 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옷가지들을 뭉치고 쌓은 곳이 아마 생존자의 잠자리 역할을 해 주었겠지. 그 사실을 입증하듯, 한 남자가 그 앞에 앉아 있다.
"살아남은 것은 너 혼자인가?"
제대로 자르지 않아 멋대로 흩어진 머리에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남자가 눈이 부신 듯 고개를 들어 왕을 응시한다. 흔들리던 눈동자는 회색으로 한 쪽만 보이고 있었다.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말하는 것인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손을 향해 다가간 젊은 왕은 악취에 찌든 그 손을 피하기는 커녕 오히려 담담한 얼굴로 마주 잡아주었다.
"나는 네 왕이다."
"......"
쉰 듯 꺽꺽대는 목소리가 간신히 공기를 울린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왕은 처음으로 미소지으며 그 남자에게 말해주었다.
"그러므로 말해주마.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아도 된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자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 올라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왕은 조용히 손을 뻗어 자기보다도 훨씬 큰 그 어깨를 끌어안아 주었다. 어느새 결국 눈물에 젖은 뺨에 입을 맞추며, 왕은 조용히 그의 귀에만 들리도록 그를 불렀다.
- 형제여.
원래 이름조차 잊어버렸던 죄수가 처음 본 '형제'는, 그렇게 찬란하게 서 있었다.
- 계속 황금숲토끼
[더블오] 장미의 신부 2009.08.14 :: 2009/11/30 16:11
- 일단 커플링은 사셰네나(.............)
- 사셰스가 네나에게 청혼하는 것을 써 줘! 라는 리퀘의 산물입니다.
- 이 둘, 써 보니 유쾌했습니다.
장미의 신부
"있지, 이쁜 언니야."
"뭐야?"
네나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그러나 남자는 그런 것 따위 전혀 개의치 않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이어이, 끓어오르지 말라고, 나도 뜨거워져 버리면 곤란하니까 말야."
"...네...네놈!"
물론 날카로운 목소리를 낼 만 하다. 파일럿 수트를 입은 채라고는 해도 네나의 사지는 의자에 '잘도'싶을 정도로 교묘하게 묶여 있었으니까. 팔걸이에 올린 팔도 마찬가지고, 다리도 의자 다리에 단단히 묶어두었다. 다시 한번 몸을 뒤틀며 끈을 끊으려 부질없이 시도하는 네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사셰스는 새삼 턱에 손을 괴고 그 모습을 끈적한 시선으로 찬찬히 감상하며 나즈막하게 말했다.
"나, 숨이 가빠지려고 하는데, 언니."
네나의 움직임이 뚝 멎는다. 좋아 좋아, 맘에 든다.
"있지이, 좋은 여자의 조건은 세 가지야."
아까까지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몸을 뒤트는 건 그만두고 입을 꾹 다문채 이 쪽을 노려보는 금빛 눈이 세삼 맘에 든다. 음, 좋아 좋아.
"일단 정숙한 몸가짐, 아름다운 얼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그리고 듣기 좋은 비명소리지."
네나의 눈이 커졌다. 그 커다래진 눈에 대고 사셰스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면 보통은 이럴때 한번 먹고 떨어져 하는 태도가 될 텐데, 언니는 안 그러는군? 좋았어."
"지, 지금 무슨 소리를! 이...이 씨발새끼가,"
"얼굴은...주근깨가 있지만 귀여우니 그럭저럭 합격이네, 좋아."
"야! 이거 당장 풀지 못해?!"
사셰스가 다가와 새된 소리로 악을 지르는 네나의 턱에 손을 올린다. 두려움이나 당혹이 아니라 순수한 분노로 새파랗게 타오르며 이 쪽을 노려보는 사나운 눈을 들여다 보다가 부러 부드럽게 웃어주고는 턱에서 귀까지를 한번에 싹 핥아준다. 그 혀의 느낌을 견디지 못한 네나가 짧게나마 비명을 올렸을 때.
"좋아, 비명소리도 합격."
붉은 노말슈트에 감싸인 손이 다가와 네나의 노말슈트를 열어젖힌다. 다만 가슴이 전부 드러나지는 않도록, 그저 노말슈트 속에 입은 티셔츠를 약간 찢어 가슴골이 보일 정도로만 풀어헤쳐 놓는다. 다시 한번 이 쪽을 노려보는 네나의 눈에 어이없는 물건이 들어왔다.
"너...그, 그게 뭐?!"
무려 그것은, 눈부신 흰 장미.
가시를 전혀 제거하지 않은 장미꽃을 든 남자는, 그것을 네나의 가슴골에 꽂아넣었다. 예민하고 부드러운 가슴에 느껴지는 가시의 따가움에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리는데, 이마에 남자의 수염, 그리고 입술이 와닿는다.
"훗 처음 만난 내게 대뜸 총을 겨누다니,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니가 첨이거든?"
"...뭐야?!"
"넌 내 이상형이야. 겨론하자♡."
"이 씹새끼가!!!!!!!!!!!!!!!!"
우주로 울려퍼진 절규는 뇌양자파 사용자 외엔 아무도 듣지 못했다.
-끗
아직 욕설을 능숙하게 쓰진 못하겠다는 걸 확 느꼈네요. 황금숲토끼
[더블오] 잔흔 200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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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오] 화장실이라니 너무해 200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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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오] 본격 정줄을 놓은 드림소설 (2) 2009.09.06 :: 2009/11/30 14:56
- 모 님이 쓴 1편을 이어 써 봤던 2편
- 보존용 저장이라 중단입니다만 나중에 잇고 싶어요.
본격 정줄을 놓은 드림소설 (2)
"어떻습니까."
"완전히 회복됐어. 원래부터도 3주 진단이었고, 지금은 한달이 넘었다고 티에리아. 두달은 무리야."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티에리아는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눈도?"
"응, 다행히 구할 수 있었어. 안구소실이 사실 가장 큰 부상이었다고. 늑골이라던가 전체 부상은 이미 회복됐고, 각 신체 기능 및 맥박 혈압 호흡수, 각종 바이탈사인도 완벽해. 자, 보라니까!"
3주면 되는 환자를 6주나 집어넣어 놓고도 티에리아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이안에게 환자의 용태를 묻고 또 물었다. 반복되는 질문에 견디다 못해 차트 디스플레이를 떠올리자, 날카로운 붉은 눈이 차트를 훑어내린다.
"그렇군요, 회복되었군요."
"그래, 오히려 너무 오래 있으면 근육이 약화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이젠 깨울 때가 됐다는 얘기야."
"...알겠습니다.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제서야 떨어진 인정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깊이 잠들어 있던 남자를 깨우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깊은 수면, 사실상 마취 상태에 달해있던 환자가 깨어나는 광경을 바라보며 티에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재생캡슐에 들어가 있는 동안 환자는 일종의 마취 상태에 놓이게 된다. 말 그대로 꿈 없는 잠을 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랄까. 꿈 없는 잠이 늘 그렇듯, 의식없는 순간은 그저 순간으로 지나가고 잠시 눈 감았다 뜨는 사이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5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순간이 닐에게 있어서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사실 5년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분명 필사의 한 방을 사셰스가 탄 쓰로네에 박아넣고 떨어져내리던 중 유폭에 휩쓸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눈부신 빛이 온 몸을 둘러싸더니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닐, 닐?]
"...나...죽은 건가..."
[닐 디란디, 당신은 이렇게 죽어선 안돼요. 제가 내기를 했기 때문에 당신은 살아야 해요.]
"...너....뭐야......"
[나는 위대한 대 우주의 의지. 계약에 따라 당신을 5년 뒤의 세계로 보내드리겠어요.]
꽤나 구시대적인 안드로메다인지 우리은하인지가 눈에 아른거리더니 다음 순간 알 수 없는 거대 우주선 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아마 '5년'이라는 말의 의미를 처음 깨달았던 것은 분명 세츠나임에 틀림없지만 자신이 알던 꼬마와는 전혀 다른 청년의 얼굴을 보았을 때였으리라. 좀더 성숙해진 느낌의 알렐루야도 그렇다. 티에리아는 전혀 변하지 않았었고, 그리고...
자신의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분명 라일 디란디라고밖에 할 수 없는 남자가 거기 있었다.
적어도 CB가 자신과 똑같은 인조인간이라도 만들어낸 게 아니라면 말이지.
그렇게 5년 전으로부터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에 도달해 마침내 의식을 되찾은 1대 록온 스트라토스, 닐 디란디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티에리아의 이상한 옷차림이었다.
"의식이 돌아왔습니까?"
"어...티에리아...맞지? 그 괴상한 옷은 뭐야?"
"...록온 스트라토스, 아니, 닐 디란디. 절 알아볼 수 있습니까?"
"그거야 물론이지. 잠시만...움직일 수 있나 모르겠네..."
천천히 팔을 들어올리자 의외로 통증이나 어색함 없이 순순히 딸려올라온다. 허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자, 역시 갓 회복된 몸이라 그런가 약간 움직임이 어색했다. 하지만 기능에 이상이 없는 건 확실했다.
"확실히 눈도 돌아왔군요."
그제서야 오른쪽 눈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닐은 손을 들어 눈꺼풀을 만져보았다. 눈꺼풀과 안의 안구 모두 무사하다. 믿겨지지 않아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 얼마 전만 해도 죽어가는 몸이었는데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다리에 천천히 힘을 주고 일어나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펴 보이며 닐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컨디션 백프로라고 하긴 뭐해도 완전히 돌아온 건 틀림없어."
"정말로요?"
날카롭게 추궁하듯 확인하는 티에리아를, 닐은 의아함을 담아 바라보았다.
"응, 일단 아픈 데도 없고."
반쯤은 보여주기 위해 부러 발을 굴러본다.
"다리도 팔도, 늑골도 전부 멀쩡한걸."
"그렇군요, 완전히 회복되었군요."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안도의 숨을 쉬는 걸 보니 걱정을 많이 했나 보다.
"왠 걱정을 그렇게 해, 별로 그럴...!"
'별로 그럴 필요는 없어'라고 말하려 했지만 끝까지 잇질 못했던 것은, 각도 경로 힘 모두에 있어 완벽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펀치가 배에 작렬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닐 디란디의 전투 실력이라면 반사적으로라도 방어동작을 취했겠지만,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누워 6주를 보낸 몸은 그렇게 호락호락 듯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도, 펀치가 날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혼신의 일격에 그대로 무릎을 꿇은 닐이 경악한 눈으로 쳐다본 끝에서, 티에리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찬찬히 주먹을 다시 쥐고 있었다.
"완전히 회복되었다면 거리낄 것이 없군요."
"어이...티, 티에리아?"
"각오하십시오. 암호코드를 억지로 풀고 혼자 가서 그렇게 개죽음 했던 값은 톡톡히 쳐 드리겠습니다."
"무, 무슨 얘기야, 내가 죽으러 간 것도 아닌데!"
"그 상황에서!"
사정없이 얼굴을 후려쳐 버리는 바람에 1대 록온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채 잠시동안 타격의 데미지를 눅이느라 배를 안고 끙끙대는 모습을 바라보며 티에리아는 가차없이 그를 책망했다.
"그 상황에서 출격하는 건 그저 무모한 자살행위였습니다!"
"하지만 쓰로네가 나온 이상!"
"그 놈의 쓰로네!"
한쪽 무릎을 꿇은 티에리아가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자 억울함 가득한 초록빛 눈동자가 이 쪽을 향한다. 동생의 그것과는 다른, 5년간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그 눈동자다. 새파랗게 날선, 그럼에도 부드러운, 그리고 이제서야 보이듯 치기어린. 그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에는 분노와 통한이 뒤죽박죽 뒤섞여 끓어오르고 있다.
"티에리아! 록온?!"
티에리아와 눈을 마주하고 있던 닐은 간신히 속으로만 안도했다. 이 정도로 소란을 부렸으면 반응이 없을 수야 없지. 간신히 문이 열리고 알렐루야가 뛰어들어왔다.
"알렐루야, 이 녀석 좀 말려줘. 대체 티에리아가 왜,"
"당신은 왜 살 생각 따위 하지 않았던 겁니까!"
날카롭게 터져나온 티에리아의 일갈에 어느덧 한쪽 턱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얼굴이 서느라니 굳었다.
"CB의 대의가! 우리가!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나는-"
"...티에리아."
"나는- 우리는 당신이 필요했어, 록온 스트라토스!"
다시 한번 매서운 펀치가 공기를 갈랐다. 다른 쪽 턱도 분명 얼마 뒤면 처참히 부어오르리라. 록온은 이를 악물고 - 그나마 이가 나가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 그간 티에리아의 체술에 대해 내려왔던 평가를 확실히 교정했다. 분명 기계에 능할 뿐 육박전에서 강한 타입은 아니었는데 알렐루야와 특훈이라도 한 것일까. 그 대우주의 의지인가뭔가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은 원래는 죽어버렸다고 하니, 분명 이렇게 화낼만도 하겠지만-
그래도 갓 회복해서 쌩쌩하게나왔는데 이 펀치는 너무하지 않은가. 이 쪽은 반격할 힘도 없는데!
"알렐루야...도와줘..."
그나마 원래 막역한 사이였고 이런 폭력사태는 별로 좋아하지않는 알렐루야라면 티에리아를 말려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간신히 구원 요청을 했으나,
"음, 확실히 티에리아가 심하네요. 그러니 전 안 때릴게요."
제법 상냥한 표정으로, 그러나 개운하다는 듯 말하는 알렐루야를 보며, 록온은 절망했다. 두 번 절망했다.
- 너희들, 언제 이렇게 팀플레이 좋아진 거야!
"염려 말아요. 때릴만큼 때리고 나면 하루 정도만 재생캡슐에 들어가 있으면 될 겁니다. 뼈는 안 건드릴 테니."
다시 한번 조명발에 티에리아의 안경이 번쩍 빛났고, 록온은 등 뒤로 천천히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계속
황금숲토끼
[더블오] 옛날옛적 서울에서 200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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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오] Morning Kiss :: 2009/11/20 11:09
- .....우와 갓 글을 쓰기 시작한 중1~3아이들이 지을 법한 제목
- 원래 이렇게 단 한 컷의 장면으로 된 글은 거의 쓰지 않지만 가끔 나올 때도 있긴 해요.
- 쉬어가는 기분으로 어쩌다 보니.
새벽 바람이 차가와졌다. 알렐루야는 반사적으로 잠에서 깨 버린 자신을 깨닫고는 어깨를 움츠리며 이불 속으로 몸을 좀더 들이밀었다. 통기를 위해 약간 창문을 열어둔 것이 문득 후회되었다. 게다가 오늘은 오프 둘째날 아침이었고, 일어나 창을 닫고 잠에서 완전히 깨 버리느니 차라리 따뜻한 이불 속에 좀더 몸을 묻고 잠들어 있고 싶었다.
Morning Kiss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팔을 뻗어 바로 옆에 잠든 세츠나의 등에 팔을 둘렀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기분 좋게 감겨온다. 평소에 세츠나는 알렐루야가 그보다 큰 것에 대해 약간 못마땅해 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왔고, 그래서 이런 식으로 품에 폭 안기도록 끌어안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무엇보다도 경계심이 너무 강해서 살짝이라도 껴안을라 치면 어김없이 눈을 뜨고 기묘하게도 약간은 책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엄격한 시선으로 알렐루야를 쳐다보는 것이다. 마치 자기를 고양이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어덯게 교육시켜줄고 고민하는 표범처럼 말이다.
그런 세츠나가 지금은 알렐루야의 팔이 등에 닿아오고 있는데도 세상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다. 누군가 들어온다 해도 모를 것처럼 자고 있다. 툭하면 기를 쓰고 기어올라 알렐루야와 얼굴을 마주보도록 해 두더니 지금은 알렐루야의 팔을 베개삼아 품에 안긴 채 색색 소리가 들리도록 자고 있다.
이럴 때 이런 감상은 곤란하겠지만, 뭔가 뿌듯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몹시 피곤했던 나날, 회의실에서 벽에 기대어 아주 잠깐 잠들었다가도 누군가 기척만 내면 마치 경계하는 야수처럼 재빨리 반응하던 세츠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더우기 이 곳은 세츠나의 집도 아니고 알렐루야의 집이다. 가끔씩 왔다고는 해도 세츠나 자신의 집보다는 훨씬 낯선 곳일 텐데.
평소에는 머리 자를 때 외엔 남의 손끝이 닿을 듯한 느낌만 나도 얼른 피하곤 해서 만져볼 기회가 없던 검은 고수머리를 이번에는 만져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알렐루야는 세츠나의 머리를 받치고 있지 않은 왼팔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살며시 머리카락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뻣뻣한 건지 부드러워 보이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는 머리카락에 손이 닿기 직전, 눈꺼풀이 흔들리더니 잠에서 덜 깬붉은 눈동자가 알렐루야를 바라본다.
"......무슨 일이지?"
"깼어, 세츠나?"
아쉽게 손을 치우며 알렐루야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자신을 옆에 두고도 깊이, 거의 깨지 못할정도로 잠들어 준 것은 기뻤지만 그래도 머리만은 아직 마지노 선이라는 건가. 물론 만져봐도 돼? 라고 말한다면 분명 허락이 떨어지겠지만 지금 그걸 원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쉽지만 이제 조금씩 얼굴을 어지럽히는 찬 공기에도 익숙해졌으니 슬슬 일어나 볼까. 몸을 일으키려는데 마디진 갈색 손이 어깨를 붙든다.
"세츠나?"
"모닝 키스."
"......어?"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하니 반문했지만, 세츠나의 눈동자에서는 이제 아까까지 자리잡고 있던 졸음마저 사라져 버렸다. 명확한 맑은 정신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 다른 말을 배제한 체, 목표하는 것 하나만을 입밖에 내며 무뚝뚝하게 말하고 있었다.
"모닝 키스."
"어....모닝 키스...라면, 일어나자마자? 키스 하는 거?"
따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사실인 듯 싶다. 간만에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 해야 하나 바라보던 알렐루야에게, 이번에는 약간 역정이 난 듯한 볼멘소리가 와 닿았다.
"그저께 록온이 말해줬다. 연인끼리는 모닝 키스를 하는 거라고."
이래저래 로맨스 영화나 연인들 사이의 절차 같은 것을 알 리 없는 알렐루야다. 그래도 알렐루야는 최대한 빈약한 상상력을 동원해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츠나의 어깨를 잡고 뒤통수를 쓸어주며 천천히 키스했다. 시작은 쪼는듯이 부드러운 키스였지만 끝에는 혀를 섞고 있을 만큼 진한 키스였다.
'아, 이런...머리에 손 대는 거 싫어할 텐데'
생각보다 약간 뻣뻣한 고수머리를 손바닥에 느끼며 알렐루야는 생각했다. 그나마 세츠나의 태도가 담담한 듯 해 한숨 놓았다고 할까.
'......생각만큼 좋군.'
커다란 품에 감싸여 깊이 키스받은 세츠나는 뒤통수에 얹혀 있는 부드럽고 든든한 손을 느끼며 생각했다. 알렐루야가 이전부터 세츠나의 생활습관에 대해 이런 저런 걱정을 하던 딱 그만큼, 세츠나 또한 알렐루야에 대해 그래 왔던 것이다. 어째서인지 눈을 마주 쳐다보는 일이 드문 것도 걸렸지만 무엇보다 알렐루야는 의식적으로 피하려는 것처럼 세츠나의 머리 관련으로는 입 박에도 잘 내려고 하지 않고 행동거지는 더더욱 조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츠나는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더 편하게 자신을 대해줬으면 한다. 혹여라도 세츠나가 화내는 건 아닌지, 세츠나가 불쾌하지는 않을런지 그런건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반응해 주면 안되는 걸까. 사실은 알렐루야의 손, 좋아하는데.
한동안 키스하면서 알렐루야는 세츠나의 머리카락 촉감을 블길 수 있었고, 세츠나는 바로 그 커다란 손이 뒤통수를 슬슬 쓰다듬는 것이 묘하게 마음에 들어 눈을 감았다. 마음은 조금 엇갈렸지만 결국 원하는 행동은 같다. 이러니 연인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겠지.
"그럼 먹을 거 만들어올 테니 여기 좀 누워 있어."
세츠나는 끄덕이며 눈을 감았고, 알렐루야는 신이 나서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서로 맞지 않는 듯 하면서도 잘 맞는 둘이 자아낸, 어느 한가한 낮의 풍경이었다.
-END
황금숲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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