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의 기묘한 여행 - 엘머 맥커디의 모험 :: 2011/05/30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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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머 맥커디
1911년 10월 7일 오세이지 언덕에서 보안관의 총에 맞다.
로스 앤젤레스에서 오클라호마 거스리로 돌아와
1977년 4월 22일 묻히다.
하필이면 제 생일 이틀 뒤에 묻히는 바람에 블로깅까지 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누가 봐도 기묘한 이 묘비명의 주인공은 1880년 태어난 한 무법자였습니다.
이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군인 노릇을 했지만, 결국 일개 강도가 되어 떠돌았지요. 1900년대 초만 해도 '무법자'란 절대 '옛날 사람'이나 '소설에나 나오는 악당들'이 아니었습니다. 엄연히 당대의 범죄자들이었고, 이런 무법자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열차나 은행을 습격하거나 축산 농장 등을 털어서 먹고 살았습니다.
엘머 맥커디 또한 오클라호마로 이주하여 당시의 무법자들 중 하나가 되어 열차와 은행 강도질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크게 한 몫 잡을 기회가 생깁니다. 정부 자금으로 은화 4천달러 정도를 실은 기차가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이 당시 금 1 온스의 가격이 35달러였던 점을 생각하면(지금은 1온스당 1500달러입니다.), 4인 강도단이 4천달러를 나누면 1인당 천 달러. 대략 서부시대 기준으로는 일생동안 먹고 살 돈이 나옵니다. 마치 서부 영화에 나오는 금괴 실은 기차를 덮치는 강도처럼, 맥커디와 강도단은 그 열차를 털어 한몫 크게 챙길 생각을 하고 특급열차를 노리게 됩니다.
다만, 당연히 영화처럼 일이 잘 풀리진(?) 않았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서부 영화처럼 금괴 가득 실은 기차에 명 보안관이나 정의의 총잡이가 타고 있던 것도 아닙니다.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기차에 올라탄 맥커디와 동료들은 그만 자신들이 멍청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차를 멈추기 위해 폭발물을 사용한 것은 좋았지만 폭약을 너무 많이 준비했던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차가 터져버린 건 물론이고, 가득 실려 있던 은화들은 그만 지나친 열에 녹아서 숯이 되어버린 열차 잔해에 박혀 버리죠.
당황한 맥커디는 추적자들이 오기 전 최선을 다해 벽에 박힌 은 잔해를 긁어내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주워갈 수 있는 은화를 모아본 것이 450달러. 참 엉터리 계산법이지만 위의 금 가격을 참고하여 추산하면 대략 오늘날의 환율로 2만달러쯤 되는 돈이군요. 일당이 넷이었으니 한 사람당 가질 수 있는 돈은 지금 환율로 대강 500만 원 정도 되겠습니다. 물론 이걸로 대강 진탕 놀아볼 수야 있지만, 처음 노렸던 것에 비하면 택도 없는 돈이네요.
당연히 이 일로 엘머는 지명수배를 당하게 되었고, 숨기 위해 그는 함께 해 왔던 동료들과 헤어지게 됩니다. 은화야 당연히 금방 탕진해 버렸지요. 아무튼 숨고 싶었던 엘머 맥커디는 이름을 바꾸고 적당히 건설 회사에 취직해 숨어사는데, 이 때 회사 동료라는 놈이 - 은행 강도를 같이 해 보자고 부추깁니다.(......)
동료의 이름은 에이머스 헤이스. 은행 강도를 하려는 이유는? - 대출을 거절당한데 대해 앙심을 품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골때리는 이유로 은행 강도를 결심한 에이머스는 엘머 맥커디에게 함께 강도질을 한 다음 돈을 나누자고 제안했고, 한번 기차 강도를 성공 - 반쪽짜리 성공이지만 아무튼 - 해 본 적이 있던 엘머는 함께 은행을 털기로 작심합니다.
1911년 9월, 엘머와 에이머스, 그리고 히긴스라는 또다른 동료는 은행의 벽을 폭약으로 직접 부수고 곧장 금고실로 들어가는 대담한 범행을 저지릅니다. 금고실의 강철 문은 니트로글리세린의 위력에 홀랑 부서져 버렸고 그래서 강도들은 아무 장애 없이 금고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만...
아뿔싸, 진짜배기 자금이 들어 있을 금고 내실 문은 굳건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중 문을 파악하지 못한 데 대해 당황한 엘머는 지참하고 있던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내실 문을 폭파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은행의 강철 문이 홀랑 날아갈 정도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놓고 사람들이 모르길 바라는 건 무리죠. 어느새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당황한 강도떼는 일단 긁어모을 수 있는 금은화를 다 긁어모아 도주합니다만... 그들의 소득은 기껏해야 15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열차 때보다도 처참한 결과죠.
아무튼 간신히 도망친 엘머에게 에이머스는 지치지도 않고 제안합니다(......) 인디언들에게 돈을 좀 주면 길을 안내해 줄 테니 그 쪽 철도에서 또 열차를 털자고 말이죠. 어렸을 때부터 기차 화통 삶아먹는 태몽이라도 붙들고 나온 건지, 아무튼 이 지칠 줄 모르는 강도들은 또 계획을 세웁니다.
나름 사람 끌어들이는 재주라도 있는 건지 에이머스는 시어스라는 남자를 또 끌어들여 엘머와 함께 3인 강도단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기운차게, 꽤 부유한 승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23호 열차를 털러 가죠.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대강 감이 오시겠습니다만... 슬프게도 엘머와 운 없는 친구들이 붙든 것은 가난한 승객들이 들어찬 29호 열차였습니다.(......) 23호 열차는 - 당시로서는 흔한 상황으로 - 몇시간 연착해 버린 것입니다.
23호 열차의 금고칸에 들어 있는 것은 고작해야 40달러 가치밖에 없는 동전 무더기였습니다. 강도들은 부유한 승객의 코트에서 25달러를, 아마도 철도 직원의 비상금이었을 또다른 25달러를 빼앗고 위스키 두 병을 가져간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습니다만 그거야 이 부실한 무법자들 시점의 얘기고, 이미 폭약을 사용해 상습적으로 범행한 유명 강도가 되어 있던 엘머와 동료들은 연방 경찰관까지 포함된 50여명의 경관에게 쫓기게 됩니다.
엘머 맥커디는 예전에 하던 대로 이름을 바꿉니다. '프랭크 에이머스'라고 이름을 바꾼 엘머는 농장 고용인들에게 부탁해서 돈을 주고 헛간에 숨어들어 깊이 잠듭니다만, 그의 흔적을 추적한 수사관들이 이미 오세이지 언덕에 도착해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다음날 아침, 경찰관들을 발견한 엘머의 사격으로 총격적이 시작되었습니다. 세 명의 경관을 혼자 상대하는 것은 역시 역부족이었고 결국 엘머는 별반 유언도 영웅적 활약도 없이 죽어버리고 맙니다. 당시 풍습대로 사람들은 총에 맞은 엘머의 시신을 관에 집어넣고 사진을 찍었지요.
흑백사진이고 화질도 좋지 않아 별로 처참한 사진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눈은 뜨고 죽었으니 보실 분들만 클릭하세요.
시체 사진이니 주의하시고 클릭하세요...

실로 불운했던 강도 엘머 맥커디, 1911년 10월 7일 사망.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끝날 일입니다. 빌리 더 키드가 그랬듯 무법자의 시신은 이렇게 전리품으로 사진을 찍는 수모를 당한 다음 땅에 묻히게 되지요.
하지만 운명은 절대 엘머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불운한 엘머의 여행은 오히려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당연히 엘머의 시신을 유족들이 곧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그렇게 풀리질 않았습니다. 방부처리 이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엘머의 시신을 찾아러 오질 않았죠. 의외로 깨끗하게 방부처리가 된 시신은 완전히 굳어버렸고, 어느새 시신 밑의 받침대를 제거한 뒤에도 꼿꼿이 서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훌륭하게 미라화 된 시신은 점차 "명물"이 되어 가죠.
별반 유언도 없이 죽은 강도였건만 어느새인가 "너희들은 결코 날 생포하지 못할 거다!"라는 말이 맥커디의 유언으로 퍼져가고 있었고, "절대 포기하지 않은 강도" 라는 명예로운(?) 칭호까지 생긴 맥커디의 입에 사람들은 구경값으로 50센트 동전을 채워넣었다고 합니다. 물론 밤이 되면 장의사가 입에 물려 있는 동전을 수거해 갔지요. 혹자는 '맥커디는 살아서 번 돈보다 죽어서 번 돈이 더 많았다"고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5년간 엘머 맥커디는, 아니 그의 시신은 장의사의 구경거리가 되어 서 있었습니다.(......)
워낙 명물이 되어 각종 카니발에서 맥커디의 시신을 사들이겠다고 나섰지만 장의사는 그들의 제안을 모두 거부했습니다. 맥커디의 시신이 워낙 짭잘하게 돈을 벌어다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만 명목상으로는 '유족이 요구하지 않는 이상 함부로 팔거나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916년, 드디어 두명의 남자가 맥커디의 시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패터슨 형제라는 사람들로, 이들은 보안관에게 그들이 바로 맥커디의 형제이며 캔자스에 계시는 늙으신 어머니가 아들의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병든 채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보안관은 즉시 장의사를 불러 시신을 내 주라고 명령했고, 형제의 독촉 전화를 받은 장의사는 마지못해 시신을 그들의 요구대로 알칸서스로 보냅니다.
잠깐, 어머니는 캔자스 주의 캔자스 시티에 있다는데 어째서 시신은 알칸서스 주로 갔을까요?!
그렇습니다. 당연하게도 패터슨 형제는 엘머 맥커디와 단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남남이었던 것입니다. 이 골때리는 형제는 사실 한 명은 석유회사의 세일즈맨, 다른 한 명은... "패터슨 카니발"의 주인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정중히 제대로 장례를 치러 주겠다고 가져가 놓고 달랑 2주 후 자랑스럽게 카니발에 전시해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1916년부터 1922년까지 6년간 엘머의 시신은 카니발에서 돈을 벌어들였고, 단물 다 빨아먹은 패터슨 형제는 "범죄 박물관"이라는 밀랍인형 전시관에 엘머 맥커디의 시신을 팔아넘깁니다. 분명 그 곳은 밀랍인형 전시관이었고 다른 범죄자들은 모두 밀랍인형으로서 전시되었지만, 맥커디만은 "진짜 시신"으로 사람들에게 특별한 구경거리가 됩니다.
그나마 여기서는 좀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1922년부터 71년까지 엘머의 시신은 밀랍인형 전시관의 명물이 되었고, 그 뒤로 팔려간 곳에서도 전시되는 신세가 됩니다. 헌데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꽤나 유명했던 강도의 시신은 이제 "누구도 그 정체를 모르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네, 고작해야 오싹한 전시관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오싹한 인형 취급을 당하게 된 것이지요.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부서지고 말라붙은 엘머의 시신은 "사람의 시체"보다는 "부서진 인형"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 시신을 작은 상자에 대강 넣어두기까지 했습니다.
한술 더 떠서, 1971년도에 엘머의 시신을 인수한 사람은 그를 "1000년 전 사람"으로 분류해 전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포함하여, 엘머의 시신을 인수하여 76년도까지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유령의 집(funhouse)'에 "목매달린 남자"로 전시해 둔 사람들은(......) 그 시신을 "잘 만들어진 마네킹"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유령의 집 특집화를 찍을때까지, 맥커디는 "목매달린 남자 인형"이 되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관람객들은 아주 잘 만들어진 인형이라고 믿으며 맥커디의 시신을 구경했습니다.
네, 그래요. 이것이 바로 엘머 맥커디의 사연입니다.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더 돈을 많이 번 사나이, 1976년 세간에 발견된 후 다시 오클라호마의 서부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며 결국 신원이 밝혀진 사나이. 그는 1977년 4월 22일 간신히 오클라호마 거스리 묘지에 묻히게 됩니다. 검시관은 사람들이 또다니 엘머 맥커디의 시신을 파내어 안식을 방해하는 일 없도록 아예 콘크리트를 부어 그의 무덤을 굳히라고 명령했고, 이로서 죽은지 66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땅에 묻히지 못했던 엘머 맥커디는 가까스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으스스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이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허나 실로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맥커디 같은 서부의 열차/은행 강도들은 이후 수많은 서부 영화에서 악당으로, 가끔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우리의 흥미를 자아냅니다만, 아마도 완전히 전업 강도가 되기 직전에 군인 신분으로 강도 혐의(......) 재판을 받을 때 즈음 하여 찍혔을 이 사진을 보다 보면 이 사람도 참으로 피곤하게 살았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이 땅에 묻힐 때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을 줄을 이 강도는 알았을까요? 만일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사람의 시체까지 쇼비즈에 이용하는 그들도 자신과 별반 다를 것 없다고 한숨짓지는 않았을까요? 아니, 이런 것을 굳이 블로그 포스팅으로 남기는 저더러 너도 마찬가지라며 쓴웃음을 지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맥커디의 거의 유일한 사진을 붙이며 포스팅을 끝냅니다.

RIP 엘머 맥커디, 참으로 불운해 보이는 얼굴입니다 그려.
2011/05/30 21:17
2011/05/30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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