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나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정작 읽어야 할 인간들은 알아듣지도 못할텐데 제가 뭔 헛수고인가 싶어서요.
모 님의 부탁으로 어딘가에는 가 있으니까 거기서도 읽으실 수 있을 테니 비공개로 해도 되지 싶습니다.
뭔가 가벼운 것을 읽고 싶어져서 전 감자밭에서 글 하나 퍼 왔습니다 <= 자기글을 펌질하는 놈
세츠나의 안가는 굉장히 살벌한 곳이다. 그럼에도 알렐루야는 늘 오프때면 세츠나네 안가에 와서 눌러앉고는 했다. 어찌되건 좋은데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그게 꽤 편한 세츠나였지만, 한 번은 알렐루야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영국이 싫은가?"
"어? 아니? 별로 싫어하지는 않아."
그런데 그건 왜 물어? 하는 알렐루야에게 세츠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런던에 머물지 않고 늘 여기 오는 이유가 궁금하다."
알렐루야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진 것을 세츠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무언가 굉장히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린 것처럼 보여 대체 왜 그러나 물어보려고 했을 때.
"아니 뭐....난 세츠나가 있는 쪽으로 오는게 좋아서 그래. 세츠나는 그거 싫어? 싫으면 세츠나가 이 쪽으로 오던가."
세츠나의 야수적 직감은 뭔가 이게 답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어쨌건 그 때에는 대강 그렇게 넘어갔다.
그리고 바로 어제.
갑작스레 벨조차 울리지 않고 누군가 단순한 완력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보통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대체 얼마나 괴력으로 열어젖혔는지 단단한 일제 철문이 그대로 휘어졌다. 반사적으로 손목 안에 숨겨둔 나이프를 꺼내 던지려던 세츠나는 상대의 실루엣을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알아보고 멈칫 했다.
"...알렐루야?"
당장 세츠나의 냉장고 쪽으로 달려간 그 그림자는 바로 건담 큐리오스의 마이스터 알렐루야 합티즘이었다.
"대체 무슨..."
"꼬꼬마 샛기가 냉장고 안에 넣어 놓은 게 없구나! 당장 유부초밥이라도 만들지 못할까!"
금빛 시선이 번쩍였고, 세츠나는 그 눈빛을 보자마자 엄청난 살기에 문답 무용으로 나이프를 던졌다. 상대는 즉시 몸을 돌려 나이프를 피하며 그대로 세츠나의 간격 안으로 들어왔다. 기본적으로는 맨손이지만 저 주먹에 제대로 맞으면 아무리 제대로 체술을 훈련한 세츠나라 해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원 투 내지르는 훅을 피해 뒤로 몸을 던진 세츠나는 몸을 숙이며 재빨리 상대의 다리를 걸었다.
'...젠장!'
세츠나의 킥은 나름 혼신을 다한 것이었지만, 이 경우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그대로 세츠나의 발목을 잡아올린 상대방은 마치 영화속의 한장면처럼 세츠나를 들어올려 침대 위에 던져버렸고, 다행히 매트리스 덕에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던 세츠나는 즉시 전투태세를 갖추며 침대에서 굴러내리려고 했지만,
"꼬마야, 어디 가려고?"
이미 야수의 팔이 양 어깨를 짚고 내리누른 상태다. 금빛 눈을 직시한 세츠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어깨를 힘껏 뿌리치며 왼손으로 알렐루야 - 아니, 정확히는 할렐루야의 눈을 찔러들어갔다. 간발의 차로 - 대체 어떻게 세츠나의 공격을 즉각 저렇게 예측하듯 피해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 머리를 피한 할렐루야는 그대로 오른쪽 주먹을 세츠나의 몸에 꽂아왔고-
세츠나의 배가 파열상을 일으키기 직전, 피부 하나 차이를 두고 딱 멈췄다.
"어이, 꼬마. 제법인데? 괜히 이 녀석을 깔아뭉개는 게 아니었군?"
찌르기를 실패했던 세츠나의 손에는 어느새 손목 안에서 털어낸 뾰족한 암기가 들어 있었고,
"별로."
그 암기는 정확히 할렐루야의 관자놀이 바로 옆에서 멎어 있었다. 그와함께,
- 꼬로로로로로로로록-
낭랑한 배 곯는 소리가 세츠나의 안가에 울려퍼졌다.
"......용건은?"
"......아무거나 내놔라. 사람 먹을만한 걸로. 안 그러면 이 녀석은 죽어버릴 거야."
과연 할렐루야 합티즘. 알렐루야가 위기 상황일 때 나타나는 것이었다.
일단 한 번에 3끼니분을 지어놓고 먹는 습관 덕에 밥통에 밥은 들어 있었다. 급한대로 거기 계란 두개를 깨 넣고 간장을 넣어 신나게 비벼주자 할렐루야는 기세좋게 그 계란밥을 '마셨다.'
"마실 거"
목이 메이도록 목구멍에 음식을 넣고 하는 말이라 잘 들리지 않았지만, 용케 알아들은 세츠나가 수도물을 정수해주는 급수 장치에서 물을 한잔 따라주자 마치 천상의 맥주라도 마신 듯 "크아~" 하는 탄성을 발하며 들이킨다. 말 그대로 보통 기세가 아니었다.
"다른 반찬은 없냐."
"없다."
"거 되게 팍팍하게 사네. 알렐루야가 있을 땐 안 그러지 않았어?"
"넌 알렐루야가 아니다."
"아 네 그러세요."
그러더니 냉장고로 뛰어가 다시 제대로 냉장실을 뒤지기 시작한다. 세츠나가 말리기도 전, 어제 사지 크로스로드가 주고 간 닭 볶음을 쟁취해낸 할렐루야는 환성을 올린 뒤 신나게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말해라, 할렐루야 합티즘."
"알렐루야 그 놈이 내 이름까지 나불나불 불었나 보지?"
"넌 대체 왜 여기까지 나타난 건가?"
한창 밥을 먹던 할렐루야가 마지막 한 숟갈까지 싹싹 비벼먹은 후 세츠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시 숨막힐듯한 침묵이 감돌고, 할렐루야가 입을 열었다.
"밥값은 이 놈이 떡으로 대신할테니, 난 간다."
"......야."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 세츠나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할렐루야'는 그대로 눈 초점을 흐리더니 뒤로 풀썩 넘어가 버렸다. 깜짝 놀란 세츠나가 다가가 일으키는 순간
"어...여긴 어디야? 어? 세츠나?"
"......알렐루야인가."
입가에 덕지덕지 계란 묻은 밥풀을 묻힌 채 이 쪽을 바라보는 진지한 회색 눈동자는 분명 알렐루야 합티즘의 것이었다.
"......세츠나? 어라, 나 '배고프다'고 생각한 것까진 기억나는데."
"방금 할렐루야가 와서 내 밥통과 냉장고를 싹 비우고 갔다."
"헉....하, 할렐루야가! 미안해 세츠나! 엄청나게 폐 끼쳤겠지 정말 미안해!"
"아니, 목숨이 한두번 정도 위험했던 것 밖에는..."
"으아악 미안해 세츠나!"
패닉에 빠진 알렐루야를 달래 얘기를 들을 때까지는 정말 한참이 걸렸다.
"런던에 대규모 정전 사태?"
"응, 태양로 동력 수송 쪽에서 뭔가 이상이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 일단 비상전력은 모두 의료 기관과 공기관 등에 보내 사회적으로는 큰 이상이 없었지."
확실히 그런 뉴스라면 세츠나도 들은 적 있다.
"그런데, 그것과 식량은?"
"그러니까...전기쪽이 완전히 마비되는 바람에, 돈을 뽑을 수가 없었어."
"그래도 슈퍼마켓이라던가도 있었을 텐데."
알렐루야라면 이해된다. 그러나 할렐루야라면 틀림없이 배가 고프다고 인식한 즉시 식량 약탈에 나섰을 것이다. 실제 뉴스를 봐도 몇몇 우범지역에서는 식량과 생필품의 약탈이 있었다고 되어 있었는데, 거기 할렐루야가 끼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으응...그게..."
한참 망설이다 말한 알렐루야의 답에는 어지간한 세츠나도 놀라고 말았다.
"세츠나아, 영국은 단지 인스턴트 식품조차도 맛이 없어......ㅠㅜ"
잊고 있었다. 톨레미에서도 알렐루야는 음식 불평은 안 하는 타입이었지만, 맛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아예 음식을 먹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톨레미의 전투식량은 이오리아의 특제 비법으로 보존된 싱싱한 재료를 6성 호텔급 조리사 레시피로 조리용 하로가 직접 만드는 것이었기에 알렐루야가 음식을 남길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즉, 가끔은 무려 일어났다!)
요리가 맛없기로 소문난 영국 런던에서, 알렐루야는 그나마 요리 좀 되는 아일랜드에 사는 록온에게 빌붙거나 자신이 최고급 재료를 구입해 - 알렐루야의 앵겔지수는 늘 톨레미의 화제거리였다 - 직접 만들어 먹곤 하며 버티고 있었는데, 이번의 대규모 정전사태로 신선한 식품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기아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물론, 위기를 맞아 생각해 내 준 것이 세츠나라는 건 솔직히 말해 기쁜 일이었지만,
"그래도, 보통의 계란밥보다는 그쪽 인스턴트가 맛있지 않았을까."
"아냐! 세츠나가 몰라서 그래. MSG에다가 인공향신료에 인공색소가 범벅된 것들 뿐이란 말야!"
"그, 그런가"
그런 것 따위, 전혀 인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먹을 수 있고 목숨이 부지되면 그 외는 상관없지 않냐는 것이 세츠나의 식사관이었기에.
"그나마 일본 사람들이 먹을거엔 예민하다고. 인혁련 쪽은 어떤지 알아? 거긴 아직도 폴리카본으로 가짜 계란을 만들 지경이야!"
...예가 좀 극단적인 듯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세츠나는 대강 사태를 이해한 즉시, 알렐루야에게 차분히 용건만 말했다.
"알렐루야 합티즘."
"엉?"
"사안은 이해했다. 그리고 정전 사태가 해소되고 신선한 식재료가 보급되기까지 여기 있어도 좋다."
"고, 고마와 세츠나! 걱정 마, 타고 온 큐리오스는 안전한데 숨겨놨으니까 아무도 모른다고!"
"그 대신. 할렐루야 합티즘이 한 계약을 지켜야 한다."
"......계약?"
"알렐루야 합티즘, 너의 앵겔계수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 있다."
알렐루야는 엄습해 오는 불길함에 등을 바짝 벽에 붙였다.
"할렐루야 합티즘이 그랬다. 밥값은 떡으로 지불하겠다고."
"그, 그게 무슨 얘기야? 떡이라니? 먹을 게 어디 있다고 떡을"
이미 때는 늦었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세츠나는 불안에 떠는 알렐루야의 양 어깨를 잡고, 실로 야수처럼 눈을 빛내며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얘기했다.
"나도 굶주렸었다."
"뭐? 굶? 그럼 같이 식사라도, 세, 세츠나, 그게 이게 아닌 ...우와아아아아아아악!!!!!!!!!!"
그리하여 한동안, 건담 마이스터 세츠나.F. 세이에이의 도쿄 안가에서는 낮에는 쌀 씻는 소리가, 밤에는 떡 찧는 소리가 울려퍼지게 되었다는 얘기다.
- 끗